

정관 스님은 시장에서 직접 고른 식재료로 비화낙원에서 채식 선연을 수행하며, 요리로 불법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전했다.
정관 스님은 화려한 식재료 없이 오로지 채소와 전통 장으로 정갈한 사찰 음식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그녀의 요리에 담긴 절제의 미학과 인생 철학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해외 유명 셰프를 깊은 산사까지 찾아오게 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식재료(자연)에 대한 해석과 존중, 이해 등에서 비롯된 그녀의 요리는 속세의 그것과는 다르게, 불법을 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수행’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정관 스님은 ‘비화낙원’의 초청으로 ‘채식 미학 다이닝’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다. 비화낙원(飛花落院)은 대만 타이중 신사의 자연 속에 자리한 일본식 정원 레스토랑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공간미와 계절 요리가 조화를 이루는 선(禪) 스타일 다이닝이다.

정관 스님은 비화낙원 웨이싱이 대표와 함께 타이중의 시장과 재료 산지 곳곳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먼저 그녀는 타이중에 도착하자마자, ‘비화낙원’ 다이닝 팀과 함께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현지 곳곳을 누볐다. 신사 지역의 비파 농장(비파 나무 재배지), 버섯 농장(백고장), 그리고 타이중을 대표하는 전통 재래 시장인 건국 시장 등을 돌며 최상의 식재료를 선별하려 애썼다.
비화낙원 창립자 웨이싱이 대표는 “시장에서 스님은 무슨 레이더가 작동하듯, 필요한 식재료를 귀신 같이 찾아내시더라고요. 저희는 오히려 쫓아다니기 바빴죠” 라며 당시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녀가 언급한 ‘레이더’는 바로 정관 스님의 후각. 눈에 띄는 식재료가 나타나면 곧장 집어 향을 맡고, 한입을 맛본 뒤, 어떤 요리에 쓸지 그 자리에서 팀원들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요리에 쓸 식재료를 모두 구한 정관 스님팀(7명)과 비화낙원 다이닝팀(10명)은 행사장으로 이동해 주방에 모였다. 활기로 가득해진 공간은 요리 준비로 점점 더 분주해졌다. 이번 다이닝 코스는 비화낙원의 일본식 정원 분위기에 맞춰 가이세키 스타일로 진행되었다. 총 8가지 메뉴가 차례로 이어졌는데, 정관 스님의 디시와 비화낙원 수석 셰프의 디시가 나란히 담겨 하나를 이루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수행
풋콩과 물밤(올방개), 갓김치, 흑임자죽으로 구성된 스타터 메뉴, ‘사찰 3품’
첫 번째 메뉴로 ‘사찰 3품(三品)’이 등장해 코스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풋콩과 물밤(올방개), 갓김치, 흑임자죽으로 이뤄진 세 가지 요리는 온화한 밸런스를 선보이며 식욕을 돋구었는데, 그중 배처럼 아삭하고 은은한 단맛을 지닌 물밤(올방개)의 풍미가 단연 돋보였다. 이처럼 이번 컬래버레이션 다이닝은 채소와 곡물 등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전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정관 스님의 시그니처인 표고버섯 디시도 코스에서 빠지지 않았다. 특히 이 요리는 단순히 음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인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그녀는 이때 인생이 무상함을 느꼈고, 결국 가족과의 연을 끊어야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출가를 감행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가족들과 아버지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절로 찾아왔고, 아버지는 홀로 끝까지 남아 절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고행 같은 수행을 비롯해, 생선이나 고기를 일체 먹을 수 없는 사찰 음식 등 절에서의 생활을 여러 모로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는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스님들의 고기로 불리는 표고버섯을 잔뜩 따 조림을 만들어 정성껏 대접했다.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그녀의 요리에 탄복한 아버지는 삼배를 올리고, 그녀의 깊고 따뜻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 홀가분하게 절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요리에 쓰인 표고버섯은 타이중 신사 지역에 있는 버섯 농장에서 정관 스님팀이 한 송이씩 일일이 손으로 따 모은 것이었다. 여기에 정관 스님은 늘 해온 방식대로 간장과 조청, 들기름 등 최소한의 재료만으로 양념해 표고버섯 고유의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또한 이번 컬래버레이션 다이닝 행사에선 정관 스님이 직접 나서, 상차림 직전 연꽃 씨앗(연자)을 한 알씩 손님의 접시에 올리며 축복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관 스님의 시그니처 요리인 ‘표고버섯 조림’엔 그녀의 인생사가 깊이 스며들어 그윽하고 고고한 풍미를 낸다.
다음 식사로는 연꽃 씨앗(연자)과 황제콩(리마콩, 특히 버터콩으로 불릴 만큼 크리미한 질감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 어우러진 밥, 다채로운 반찬이 곁들여지며, 사찰 음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발우 공양’이 이어졌다.
정관 스님은 대만에서 구한 신선한 식재료에 한국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발효 장으로 양념을 더하며, 양국 식문화의 조화로움을 인상 깊게 표현했다. 비파 열매(기본적으로는 새콤하지만 잘 익은 제철엔 파파야 같은 식감에 신맛이 없는 망고와 비슷한 맛)와 산나물, 오크라는 된장으로 버무렸고, 곶감은 말린 과일처럼 질감 있게 다듬어 곱게 내놓았다. 또 손으로 으깬 두부를 얹은 애호박 반찬을 비롯해 포르치니 버섯과 고수, 파프리카를 넣은 만두, 도토리묵 등으로 그녀가 재해석한 사찰 음식의 색깔을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발우 공양에 사용된 검은색 나무 그릇은 300년 된 은행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식사의 품격과 깊이를 더해 주었다. 이어 그녀는 “절에서는 식사 후 그릇에 물을 붓고 이를 깨끗하게 헹궈 마시며 정갈하게 마무리한 후, 그릇을 크기에 따라 순서대로 포개어 정리합니다”라며 발우 공양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렇게 ‘발우 공양’은 차린 음식뿐 아니라 식사 방식 자체에도 수행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관 스님이 재해석한 사찰 음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 상 차림, ‘발우 공양’
채식의 정수, 접시에 깃든 봄의 풍미
바삭하게 튀긴 두부 완자와 은전 소스, 산초, 순채의 하모니가 일품인 ‘은전 백화’
비화낙원에선 평소에도 채식 코스를 제공하는데, 수석 셰프는 이번 컬래버레이션 다이닝 메뉴를 준비하며 가이세키 요리와 채식을 접목한 스페셜 디시를 내놓았다. 그중 ‘은전 백화(銀芡白和)’는 바삭하게 튀긴 두부 완자에 전분을 풀어 만든 부드러운 은전 소스를 얹은 요리로, 향긋하면서도 매운 풍미를 내는 산초를 더해 감칠맛을 높였다. 또한 버블티의 타피오카처럼 탱글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지닌 순채를 그릇 바닥에 깔아 함께 씹을수록 어우러지는 식감의 재미까지 완성해냈다.
다음으로 수석 셰프가 선보인 디시는‘벚꽃놀이 불수과(花見隼人瓜)’로, 산초의 얼얼함과 머귀 나무(대만 원주민 요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통 향신채)의 상큼한 감귤 향이 어우러진 옥수수 육수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플레이팅에서는 봄날의 꽃 구경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삭한 식감을 내는 불수과(열대 원산지의 박과 식물)가 꽃잎처럼 겹겹이 놓여 있고, 중앙엔 소금에 절인 벚꽃을 꽃술처럼 올려 흡사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이어진 ‘죽순 산초 조림(波串山椒煮)’은 봄 죽순과 우엉, 새송이 버섯, 연근을 산초와 함께 졸인 것으로, 채소 고유의 아삭함과 쫄깃함, 부드러움을 리드미컬한 하모니로 맛볼 수 있었다.
(좌) 불수과를 봄꽃처럼 우아하게 펼친 ‘벚꽃놀이 불수과’ (우) 채소의 아삭함과 쫄깃함, 부드러움 등 다양한 식감이 느껴지는 ‘죽순 산초 조림’
이번 컬래버레이션 다이닝 행사를 마치면서, 정관 스님은 “사찰 음식은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복잡합니다. 식재료 사용이나 조리법이 까다롭다는 뜻이 아니예요. 요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죠. 식재료에 대한 존중, 자연에 대한 경외 역시 담겨 있습니다”라며 사찰 음식의 철학을 강조했다.
음식이 곧 사람을 길러내고, 사람이 택하는 방식이 환경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순환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식재료의 출처를 기억하고 재배 방식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또 맑고 정갈한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자연에 결코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 정관 스님은 K-식문화 홍보 대사처럼 세계 곳곳을 돌며 사찰 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식으로는 마음을 나눌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요리는 불법과 평온한 마음을 전하는 또 다른 수행이다. “제 마음이 평안하면, 온 세상이 평안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길을 택했어요”라고 답하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수행의 의미와 다이닝이 나아갈 내일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