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커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프리미엄’과 ‘실속’의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스페셜티 커피가 확고히 자리 잡으려면 품질은 기본, 경험과 공유의 가치를 공감성 있게 확장해야 한다.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023년 기준 405잔(출처 :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전 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152잔)의 2.7배 수준이다. 즉 한국인이라면 모닝 커피부터 식후 커피까지 일평균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단 이야기다.
“2025년 국내 커피 시장 규모 약 11조 원”, ‘프리미엄’과 ‘실속’으로 양극화
2023년 기준 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 규모는 약 8조 6,000억 원(2025년 국내 커피 시장 규모 약 11조 원으로 추측),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커피 전문점 수는 2022년 말 10만 개를 돌파했다. 또한 성장 지수 면에서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 대표 10개 로스터리가 참여한 ‘스페셜티 커피 팝업 현장’의 수많은 인파
한편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국내 커피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프리미엄’과 ‘실속’을 꼽을 만큼 양극화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한잔에 5천 원이 넘는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층이 늘고 있는가 하면, 저가형 커피를 선호하는 이들도 급증해 소비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커피 문화가 진화해가고 있다. 특히 매일 두 잔 이상의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커피 애호가가 많아지면서 실속파 소비자들도 시장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원두와 에스프레소 머신, 캡슐 커피 등 커피 관련 물품을 다루는 홈 카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해, 라마르조코(la marzocco), 라바짜(Lavazza) 등 해외 프리미엄 홈 카페 브랜드의 국내 진출은 물론 제니퍼룸, 쿠쿠 등 국내 가전 업계도 홈 카페 대열에 적극 합류 중이다.
국내 커피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며 진화해가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원두들
상대적으로 대중화에 제약을 지닌 ‘스페셜티 커피’의 현재
해를 거듭할수록 커피 내수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으며, 해외에선 대한민국을 ‘커피 공화국(Coffee Republic)’이라 부를 만큼, 국내에서 커피는 대중 식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 자체가 위축되면서 저가형 커피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는 데 비해 양질의 원두를 기반으로 한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성장세는 여전히 더딘 편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원두 산지와 재배 환경, 가공 및 로스팅, 추출 과정까지 철저히 관리된 고품질 커피를 뜻한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겐 아직도 ‘비싸고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한국 시장은 커피 소비량이 많고 어느 정도 일상화가 이뤄진 만큼, 다수의 커피 애호가들이 가격과 접근성을 우선시해 스페셜티 커피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두 산지부터 재배 환경, 가공 및 로스팅, 추출까지 전 과정을 모두 철저히 관리하는 ‘스페셜티 커피’
여기에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이 특정 상권(마포구 및 강남구, 성동구 외 도심과 번화가)에만 밀집돼 있는 점도 대중화의 걸림돌이다. 또한 원두와 커피 자체 품질에 매진하다 보니, 브랜드 간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이나 접근성 높은 홍보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점도 시장 확장성 면에선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뿐이 아니다. 커피의 풍미 측면에서도 오해가 존재한다. 여전히 일부 소비자들은 스페셜티 커피를 ‘신 커피(산미가 강한 커피)’로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국내 커피 시장의 로스팅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적·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초창기 국내에 수입된 생두는 커피 문화가 이미 성숙해 있었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크 로스팅(강배전)을 통해 원두의 결점을 감추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당시 다크 로스팅은 원두 본연의 향미를 약화시키지만, 품질을 일정하게 맞출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라이트 로스팅(약배전)은 고품질 생두의 고유한 향과 맛을 살리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당시 국내 유통 생두엔 적합하지 않았다.
스페셜티 커피는 아로마와 풍미, 산미, 바디감, 밸런스에 이르기까지 평균 80점 이상을 받아야 품질 기준에 부합한다.
결과적으로 국내 커피 시장은 오랜 기간 다크 로스팅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 역시 이를 따르면서 강배전 중심의 대중적 입맛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젠 커피가 라이프스타일의 한 장르이자 미식의 한 갈래로 여겨질 만큼 성장하고 있기에, 익숙해진 맛의 기준을 재정립하면서 원두 본연의 가치를 향유하는 데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전시아(Intelligentsia Coffee)’는 “Don’t drink burnt coffee(태운 커피를 마시지 말자)”란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커피의 품질과 로스팅 철학을 바로 세우려는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각각의 스페셜티 커피가 가진 특성을 산미만으로 일원화할 순 없다. 싱글 오리진 원두만으로도 맛과 향의 복합미가 다채로운 건 물론 로스팅 방식, 커피 로스터와 바리스타의 테크닉, 물의 종류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스페셜티 커피를 즐긴다’는 건 감각과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과정이자 여정인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미식을 즐기듯 원두 본연의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음미하기 좋다.
한편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도 능동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품질의 우위를 지키는 건 기본, 커피 소비자에게 유연하게 다가가 ‘프리미엄 커피’를 경험할 기회를 직, 간접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례로 생두가 가진 스토리와 재배 농가의 철학, 커피 로스터의 기술과 바리스타의 감각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이러한 흐름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향미가 뛰어난 커피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왜 이 커피가 특별한가’를 알려 주고 설득하는 과정이야말로 스페셜티 커피 시장을 견인할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커핑 및 시음 행사, 바리스타 클래스, 팝업 카페, 투어형 콘텐츠 등 체험 중심 마케팅 활동을 확대해, 소비자가 맛과 감각으로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인지하게 만드는 노력도 더욱더 필요해 보인다.
스페셜티 커피 종합 플랫폼, ‘언스페셜티(Unspecialty)’의 등장
스페셜티 커피가 한국인의 일상 속에 단단하고도 폭 넓게 뿌리를 내리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커피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는 소규모 사업체인 경우가 많아, 대형 프랜차이즈나 글로벌 체인에 비해 마케팅 예산과 자원이 한정돼 있다.
또한 브랜드 인지도와 유통 네트워크 구축도 약한 편이다. 여기에 브랜드 및 컨셉 기획, 신제품의 스토리텔링, 온오프라인 콘텐츠 마케팅, 구독형 커피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엔 인력 구조 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더현대서울 지하 1층에서 진행한 ‘언스페셜티(Unspecialty)’ 팝업 현장
이렇게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가 겪는 문제를 일찍이 인식하고, 다각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며 신선한 시도를 이어온 전문가 집단이 있다. 바로 스페셜티 커피 전문 플랫폼, ‘언스페셜티’다. 커피 전문가이자 커피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안스타(안치훈)’를 주축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소수의 취향이 아닌, 대중의 일상에 깊이를 더하는 문화’로 만들고자 탄생한 곳이다.
국내 커피 시장에서 스페셜티 커피는 대중 속으로 빠르게 번져가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로스터리가 좋은지, 특정 커피가 왜 특별한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커피에 관한 정보나 지식 역시 부정확하거나 미흡한 내용이 많아 커피를 시작하는 바리스타나 카페 운영자들도 시행착오를 겪는 일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대중 커피 시장과 스페셜티 커피 시장 사이에 존재하던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커피 업계의 정보를 투명한 기준 아래 큐레이션해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로 소개하며, 스페셜티 커피를 향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었죠”라며 언스페셜티 대표 안스타는 스페셜티 커피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게스트 바리스타가 ‘언스페셜티(Unspecialty)’ 팝업 현장에서 선보인 커피 추출 퍼포먼스
언스페셜티 플랫폼은 크게 두 축으로 운영된다. 하나는 ‘언스페셜티 몰’로, 국내 대표 스페셜티 로스터리의 커피를 한곳에서 경험하고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 공간이다. 또 하나는 국가 대표 바리스타와 국제 대회 심사위원 등 신뢰할 만한 전문가와 함께 만든 커피 교육 플랫폼 ‘언스페셜티 에듀’다.
“언스페셜티 몰을 ‘29cm’나 ‘무신사’와 유사하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브랜드 측에 입점비를 따로 요구하진 않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진정성 있게 알리고, 성숙한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기 때문이죠”라며, 언스페셜티 신성희 디자이너는 덧붙였다.
매달 큐레이션되는 ‘커피 월픽’이 ‘언스페셜티 몰’의 대표적인 서비스로,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검증한 원두를 구독 형태로 소비자에게 소개한다. 더불어 실험성이 있거나 신생 커피 브랜드를 엄선해 열흘 간 진행하는 ‘스몰 월픽’, 커피 기구를 소개하는 ‘머신 월픽’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커피가 가진 본연의 단맛을 가장 중시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헤베 커피(HEBE Coffee)’의 원두들
“언스페셜티 에듀를 통해선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며, 소비자를 위한 스페셜티 커피 학습의 장을 마련하고 있죠. 커피에 대한 이해와 취향을 넓히는 데 가장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라며 언스페셜티 정도영 매니저는 플랫폼의 목적성을 재차 강조했다.
전국 탑 티어 로스터리 10곳과 콜라보한 ‘언스페셜티 더현대서울 팝업’
언스페셜티는 오프라인 팝업도 비중 있게 진행하고 있다. 각각의 ‘스페셜티 커피’가 가진 캐릭터와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감각을 통한 체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1회씩 시그니처 팝업 ‘언스페셜 데이(Unspecial Day)’를 기획해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간 저희는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로 팝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또한 이미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분들에겐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제공했죠. 시즌 1 때는 각 분야 국가 대표 바리스타들과 한 가지의 커피를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해 고객에게 선보였고, 시즌 2에선 유튜버 ‘천재 이승국님’을 바리스타로 만드는 과정을 온라인으로 담은 다음 바리스타로서의 이승국님을 오프라인으로 소개하는 팝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즌 3에선 가수 이상순님이 제주에서 운영하시던 카페 ‘롱플레이’를 서울에서 하루 동안 오픈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라며 정도영 매니저는 언스페셜티의 지난 행보를 소개했다.
팝업 현장에선 에티오피아 ‘마타란초 내추럴 빈’에 대한 10개 로스터리의 각기 다른 해석을 밀도 높게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도달한 시즌 4 팝업은 ‘더 바리스타(The Barista)’란 주제로 더현대서울 지하 1층에서 9월 12일부터 25일까지 약 2주 간 진행됐다.
“이번 팝업은 저희가 엄선한 국내 대표 로스터리 10곳과 함께했는데, 앞서 안스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로스터리 결정전, ‘더 바리스타’를 먼저 진행했죠. 아시아 스페셜티 커피를 이끄는 두 주역 ‘카스야 테츠(2016년 월드 브루어스 컵 우승자이자, 일본 스페셜티 커피 업계 대표 인물)’와 ‘두 지아닝(중국 출신 2019년 월드 브루어스 컵 우승자)’도 선수로 출전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경연은 동일한 생두(에티오피아 바샤 베켈레 프로듀서의 마타란초 내추럴 빈)로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한번에 완성하는 과정으로 이뤄졌는데, 최종 우승자가 나오기까지 라운드별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었죠. 이와 연계한 오프라인 콘텐츠가 바로 ‘더 바리스타’ 팝업이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향한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던 열띤 팝업 현장
실제 현장에서도 에티오피아 바샤 베켈레 프로듀서의 ‘마타란초 내추럴 빈’을 각자의 스타일로 로스팅해 소개하며, 소비자에게 스페셜티 커피의 다양성과 로스터리별 해석의 차이를 경험토록 했다. 또한 날짜별로 10개 로스터리의 정상급 바리스타를 초청해, 추출 퍼포먼스를 감상하며 커피 시음까지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스페셜티 커피가 지닌 무한한 스펙트럼을 체감케 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브랜드 콜라보 굿즈, 드립백, 한정판 원두 등을 다양하게 비치해 오픈런은 물론 연일 긴 웨이팅 행렬을 형성하며 수많은 인파를 모았다.
“트렌드의 중심 ‘더현대서울’이야말로 대중을 향한 저희의 메시지를 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고객, 유튜브 구독자 분들과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할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스페셜티는 ‘더 나은 커피 생활’을 만드는 여정을 스마트하게 리드해 가겠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내일, 지속 가능한 품질과 공유의 가치로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엔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스페셜티 커피가 요구하는 높은 품질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생산지와 농가, 가공 과정 전반에 걸친 정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빈번하게 나타나는 기상이변과 병해충 등은 생산 리스크를 높여 공급 불안정과 비용 상승을 일으킨다. 유통 면에서도 관세 부담, 보관비, 운송비 등의 제약을 떠안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요소는 결국 ‘지속 가능한 품질과 가격’을 유지하면서, ‘공유 가능한 가치’를 어떻게 전하느냐다.
이같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소규모 로스터리 간의 협업과 네트워크화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원두의 공동 구매, 협력 유통 시스템, 공동 마케팅 등으로 비용을 분담하면 가격 경쟁력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직거래 모델을 확대하고, 해외 수요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도 시장 안정화를 위한 현실적 방안이다. 더 나아가 퍼블릭 커핑, 정기 세미나, 컨퍼런스 등을 함께 준비하면서, 로스터리 간의 교류와 협업을 활성화함으로써 건강한 커피 연대 및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결국 스페셜티 커피의 내일은 ‘지속 가능한 품질’과 ‘공유 가능한 가치’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산자와 로스터, 바리스타, 소비자가 같은 언어로 커피의 가치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나눌 때, 스페셜티 커피는 더 이상 일부 취향층의 전유물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확립된 일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