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매일 빈틈 없이 밍글스의 흐름을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가장 낮은 곳에서 팀을 받치고, 늘 겸손하게 와인을 다뤄야 한다고 말하는 밍글스의 이현재 총괄 소믈리에다.
팀워크를 무엇보다 강조하며 1 더하기 1이 '3'이 되는 다이닝의 시너지를 믿는 사람. 익숙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며 밍글스라는 큰 그림을 완성해 가는 그가 말하는 ‘완벽한 융화’와 서비스의 본질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팀워크와 완벽한 융화를 이야기하는 밍글스의 이현재 총괄 소믈리에
1 더하기 1이 3이 되는 경험, 와인에 눈을 뜨다
이현재 소믈리에의 접객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차분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학창 시절 가수를 꿈꾸며 다듬었던 발성은 이제 손님들에게 와인의 스토리를 전하는 그만의 자연스럽고도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다이닝 씬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낭만적인 꿈보다는 치열한 현실에 가까웠다. 20대가 되기 전부터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일찍이 외식업의 생태계와 현장 감각을 몸으로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묵묵히 일을 이어가던 20대 초반, 그는 지인과 함께 나누었던 한 잔의 와인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발견한다. 와인만 마셨을 때와 달리 음식과 함께 곁들였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차이는 그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와인이나 음식, 어느 하나만으로는 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맛, 1 더하기 1이 단순한 2가 아니라 3이나 4로 증폭되는 마리아주의 시너지를 체감한 것이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와인과 서비스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연회장에서 조직 문화를 겪으며 서비스의 뼈대를 세운 그는, 전역 후 더 깊이 와인을 다루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눈을 돌린다. 손님과 한층 더 밀접하게 소통하며 와인을 다루기 위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그는 2010년 다이닝 '줄라이(July)'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소믈리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와인을 서비스하고 있는 이현재 총괄 소믈리에
‘엉덩이 싸움’과 ‘그림자 서비스’, 다이닝을 읽는 안목을 기르다
이현재 소믈리에는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일컬어 ‘엉덩이 싸움’이라 표현한다. 테이블 위에서는 누구보다 우아하게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책상 앞에 앉아 방대한 지역과 품종, 역사를 파고들어야 하는 끈기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줄라이는 현재 밍글스의 김민성 지배인을 비롯해 지금도 다이닝 씬을 주름잡는 뛰어난 동료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눈빛만으로 동료들과 완벽하게 합을 맞췄다. 서비스맨은 뒤로 물러나고, 오직 손님만을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게 만드는 훈련을 통해 ‘그림자 서비스’의 뼈대를 세운 시기였다.
이 시기 그는 일명 '와인 복'을 누리며 미각적 견문까지 넓혔다. 사람의 인연처럼 쉽게 만나기 힘든 희귀하고 훌륭한 빈티지의 와인들을 다채롭게 테이스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후 줄라이에서 오픈한 캐주얼 레스토랑 ‘더 그로브’의 총괄까지 맡으며, 그는 단순한 서비스맨의 시야를 넘어섰다. 작은 기물 하나, 의자 하나, 직원들의 동선과 메뉴의 구성까지. 백지상태에서 공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주도했다. 이 시간은 그가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의 모든 요소를 유기적으로 살피는 프로의 안목을 갖추게 된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더 그로브'의 총괄을 맡으며 공간의 모든 요소를 살피는 안목을 길렀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맞물림, 미쉐린 3스타 ‘밍글스’를 완성하다
'더 그로브'를 떠나 짧은 휴식기를 가지며 다시금 현장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김민성 지배인의 제안으로 그는 2019년 밍글스에 합류하게 된다. 이미 미쉐린 2스타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던 밍글스에 합류하는 것은 스스로 "잘해야 본전"이라고 느낄 만큼 적지 않은 중압감을 동반했다. 동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그는 밍글스의 복잡한 메뉴와 철학을 숙지하며 빠르게 현장에 녹아들었다.
이직이 잦은 다이닝 업계에서 밍글스가 오랜 시간 단단한 팀워크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강민구 셰프와 김민성 지배인의 굳건한 ‘신뢰’를 꼽는다. 주방과 홀이 분리되지 않고 유연하게 섞여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곳. 작은 톱니바퀴들이 오차 없이 맞물려 거대한 바퀴를 굴리듯, 모든 팀원이 서로를 굳게 믿고 의지하는 에너지가 지금의 밍글스를 만들었다.
미쉐린 3스타를 향해 다 함께 뜻을 모았을 때, 이현재 소믈리에는 기물의 위치, 커틀러리의 각도, 서비스 동선과 직원들의 손끝 하나까지 가장 낮은 시선에서 디테일을 집요하게 깎아나갔다. 후배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을 모시듯 서비스하라”며 편안함 속의 예의를 강조했다. "강민구 셰프가 곧 밍글스 그 자체이지만, 동시에 김민성 지배인이, 김영대 헤드 셰프가, 그리고 저 역시 밍글스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내세우기보다 밍글스라는 이름 아래 완벽하게 하나로 움직였기에, 비로소 대한민국 유일의 3스타라는 성과가 완성될 수 있었다.
기물의 위치와 커틀러리의 각도까지, 가장 낮은 시선에서 디테일을 깎아냈다
익숙함과 특별함이 교차하는 지점, ‘밍글스다운’ 페어링
소믈리에의 시선으로 바라본 밍글스의 음식은 그야말로 ‘배려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밍글스의 맛을 명쾌한 비유로 설명한다. "맛의 척도를 1부터 10까지 두고 5를 누구나 맛있다고 느끼는 기준점이라 할 때, 밍글스의 음식은 어떤 디쉬라도 최소 6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합니다." 강민구 셰프 특유의 과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스며든 장(醬)의 은은한 감칠맛은 어떤 음료와 매칭해도 충돌하지 않고 페어링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준다고.
이현재 소믈리에가 정의하는 좋은 페어링의 형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와인과 음식이 같은 궤도를 그리며 시너지를 내는 것, 둘째는 서로의 빈틈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보완하는 것, 마지막 셋째는 완전히 다른 두 요소가 만나 전혀 새로운 제3의 맛을 창조하는 마리아주다.
이러한 철학 위에서 탄생한 ‘밍글스다운 페어링’은 한 발 더 나아간다. 한국적인 감칠맛이 깊게 배인 요리에 프랑스 부르고뉴의 '뫼르소'나 '샤샤뉴-몽라셰'처럼 오랜 정통성을 인정받는 클래식 와인을 적극적으로 매칭하는 것이다. "서양의 훌륭한 와인이 한국적인 터치와도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구나"라는 느낌, 익숙함과 특별함이 만나 일으키는 폭발적인 시너지가 바로 밍글스 페어링의 묘미다.
여기에 더해 밍글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전통주 페어링까지 심도 있게 다루는데, 우리 술인 만큼 손님들이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테이블 곁에서 훨씬 더 세심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나아가 다양한 페어링 선택지를 제공하고 취향에 맞춰 기꺼이 와인의 종류까지 교체해 주는 유연함은, 밍글스가 손님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하고 적극적인 환대의 증명이다.
와인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겸손함'을 꼽는 이현재 총괄 소믈리에
와인 앞의 겸손, 가장 낮은 곳에서 팀을 받치는 리더십
이현재 소믈리에는 소믈리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주저 없이 ‘와인을 향한 겸손함’을 꼽는다. 와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여지없이 실수가 발생하며, 늘 와인의 컨디션을 의심하고 재차 확인하는 집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매니저로서 그는 ‘팀의 가장 낮은 곳에 서는 리더십’을 실천한다. 총괄 소믈리에로서 책임과 역할이 무거운 자리에 있지만, 그는 오히려 후배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가장 낮은 곳에서 든든히 바닥을 받쳐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후배가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아, 내가 해결해 줄게”라며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선배의 모습은 홀 전체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든다.
이처럼 팀원들을 품어내는 배려와 여유는 손님을 맞이하는 무대 위에서도 고스란히 빛을 발한다. 그는 테이블에 다가가 첫인사를 건넬 때 되돌아오는 짧은 대답의 톤만으로도 그날의 무드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춘 유연한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향후 20년은 더 손님들 앞에 서서 현장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제가 겪었던 수많은 실패와 성공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후배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교육자가 되는 것이 더 큰 목표입니다.”
밍글스가 차곡차곡 쌓아온 12년의 역사, 그 단단하게 맞물린 톱니바퀴 속에서 변하지 않는 열정과 배려로 무장한 이현재 소믈리에. 그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테이블 위에서 가장 훌륭한 마리아주를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