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무대로 삼다, 솔잎 박웅철·기보미 셰프

사계절 푸른 소나무에서 가져온 ‘솔잎’이라는 이름처럼, 두 셰프가 지키고 싶은 것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보다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다. 런던에서 한국의 맛을 전하는 박웅철, 기보미 부부 셰프의 이야기.

런던 브리지 남쪽 멜리어 스트리트에 자리한 솔잎(Sollip)은 박웅철·기보미 셰프가 함께 운영하는 25석 규모의 레스토랑이다. 2020년 문을 연 뒤 2022년 처음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2026년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박 셰프가 세이보리 메뉴와 주방을 이끌고 기 셰프가 페이스트리를 맡으며, 두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의 레스토랑을 완성한다.

 

2026 미쉐린 가이드 영국·아일랜드 시상식에서의 박웅철·기보미 셰프

 

솔잎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업이 미뤄지고 세 차례의 봉쇄를 겪었지만, 정식으로 손님을 받기 시작한 지 약 1년 반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박웅철 셰프는 “원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것을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면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 스타는 두 사람에게 자신들이 만들고자 한 음식과 레스토랑의 방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은 프렌치 요리와 페이스트리를 공부하고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경험을 쌓은 뒤 자신들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한국인 부부 셰프가 운영하고 한국의 재료와 풍미를 사용하지만, 솔잎을 전통 한식이나 모던 한식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곳의 음식과 공간, 서비스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쌓아온 경험과 함께 만들어온 기준에서 출발한다.

솔잎의 다이닝 룸 전경

 

런던에서 만나 한국을 거쳐 다시 런던으로

박웅철과 기보미 셰프는 르 코르동 블루 런던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지인의 소개로 짧게 인사를 나눈 정도였지만, 각자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천안의 한 레스토랑 개업을 돕던 박 셰프가 디저트 메뉴 개발자를 찾던 중 기 셰프가 운영하던 파티스리 블로그를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기 셰프는 약 2주 동안 천안을 오가며 메뉴 개발을 도왔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며 서로의 음식과 일하는 방식을 알아갔다.

이후 박 셰프는 한국과 미국을 거쳐 런던의 더 레드버리(The Ledbury), 코프만스(Koffmann’s) 등에서 프렌치와 유러피안 요리를 경험했고, 기 셰프는 런던에서 프렌치 페이스트리와 전문 주방의 작업 방식을 익혔다. 결혼 후에는 제주 해비치의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개업을 위해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초 1년 정도로 예상했던 제주 생활은 6년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메뉴 개발부터 업장 개업과 운영, 베이커리와 디저트 카페 컨설팅까지 경험하며 훗날 자신들의 레스토랑을 준비할 기반을 쌓았다.

처음부터 자신의 레스토랑을 갖는 것이 박 셰프의 목표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며 음식과 레스토랑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음식을 직접 결정하고, 공간과 서비스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레스토랑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무대로 선택한 곳이 런던이었다. 처음 만난 도시이자 다양한 음식 문화와 새로운 표현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음식을 선보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2019년 박 셰프가 먼저 런던으로 건너가 자리를 알아봤고, 가족이 합류한 뒤 버몬지의 작은 공간을 계약했다. 그러나 2020년 3월 예정했던 개업을 앞두고 코로나19 봉쇄가 시작됐다. 레스토랑을 열 수 없는 동안에는 직접 만든 김치와 피클, 쿠키 등을 판매했고, 그해 8월 말부터 정식으로 손님을 받았다. 이후에도 두 차례의 봉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작은 팀으로 영업을 이어갔다.

 

솔잎의 박웅철 셰프

역할은 나누고 레스토랑은 함께 이끌다

솔잎에서 두 셰프의 역할은 명확하다. 박웅철 셰프는 세이보리 메뉴와 주방을 중심으로 팀 관리와 재정, 비즈니스 미팅 등 레스토랑 운영을 맡고, 기보미 셰프는 페이스트리를 비롯해 브랜드 디렉팅과 디자인, 마케팅을 담당한다. 각자의 전문 영역을 중심으로 역할을 나누되, 메뉴와 그릇, 공간, 서비스부터 향후 프로젝트까지 솔잎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대부분 함께 논의한다. 세이보리와 디저트 역시 서로 맛을 보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완성도를 함께 조율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쌓아온 신뢰도 이러한 협업의 바탕이다.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스토랑이 나아갈 방향을 공유하고 있어, 한쪽의 판단이 흔들릴 때 다른 한쪽이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협업은 팀 전체의 운영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두 셰프는 솔잎의 음식과 서비스를 지속하려면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오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본다.

 

‘솔잎’이라는 이름에 담은 기준

레스토랑을 준비하며 두 셰프는 자신들의 방향을 담을 이름을 고민했고, 여러 후보 끝에 ‘솔잎’을 선택했다. 계절이 바뀌어도 푸른색을 유지하는 소나무처럼 유행이나 환경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정성을 많이 들이는 음식을 만들 때 솔잎으로 불과 연기를 조절했다는 이야기도 이름에 영향을 주었다. 영어 표기 ‘Sollip’은 한국어의 의미를 살리면서 런던에서도 쉽게 발음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이름에 담은 방향은 공간에도 이어진다. 한국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밝은 목재와 옅은 색조로 정리한 다이닝룸에 한국의 목공예품과 도자기, 옹기를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큰 창에는 일반적인 커튼 대신 모시와 옥사로 만든 가림막을 사용했다. 한국적인 요소를 하나의 장식적 콘셉트로 강조하기보다 두 사람이 익숙하게 여기는 재료와 미감을 공간 곳곳에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방식이다.

 

밝은 목재와 옅은 색조에 한국적 미감을 자연스럽게 녹인 다이닝룸.

음식에서도 같은 태도가 이어진다. 접시 위의 모든 요소에는 맛이나 식감에서 분명한 역할이 있어야 하며, 시각적인 효과만을 위한 장식은 덜어낸다. 기보미 셰프가 자신의 작업을 ‘정교함과 명확함, 의도’라는 말로 설명하는 이유다.

 

장르보다 두 사람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음식

솔잎은 한국의 재료와 풍미를 사용하지만, 두 셰프는 이곳을 한식당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전문적으로 익힌 프렌치 요리와 페이스트리, 한국에서 자라며 형성된 미각, 런던과 제주를 비롯한 여러 주방의 경험이 함께 음식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거나 의도적으로 결합하기보다 두 사람이 살아오며 익힌 맛과 기술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박웅철 셰프는 이를 “그냥 있는 대로, 할 줄 아는 대로 한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요리는 한국에서의 기억에서 시작하고, 어떤 요리는 영국의 제철 식재료에서 출발한다. 한국산 재료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얽매이기보다 영국과 유럽에서 좋은 상태로 구할 수 있는 채소와 육류, 해산물의 성질을 이해하고 자신들이 익힌 조리법과 맛을 적용한다. 한국의 맛과 프랑스의 기술, 영국의 식재료를 일정한 비율로 조합하는 공식도 없다. 두 셰프가 함께 맛보고 논의하며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한 접시를 만드는 것이 ‘솔잎다운 음식’에 더 가깝다.

 

솔잎에서 요리 중인 박웅철 셰프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모던 한식’이라는 표현 역시 솔잎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비슷한 범주로 불리는 레스토랑이라도 셰프가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맛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음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장르의 이름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경험과 기준이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런던에서 한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솔잎을 연 이후 분명 달라졌다. 과거 김치나 불고기 정도에 머물렀던 관심이 발효와 장류, 한국 채소의 향과 쓰임으로 구체화됐고, 한국의 음식과 식문화를 직접 경험하려는 손님도 늘었다. 이는 두 셰프가 더 다양한 한국의 맛을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그 흐름에 맞춰 솔잎을 의도적으로 더 ‘한국적인’ 레스토랑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넓어진 환경은 반갑게 받아들이되, 무엇을 어떻게 요리할지는 두 사람이 쌓아온 경험과 현재의 식재료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익숙한 것을 솔잎의 방식으로 풀어내다

이러한 솔잎의 음식관은 대표 메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개업 때부터 이어온 무 타르트 타탕과 가을에 주로 선보이는 몽블랑은 두 사람의 경험과 조리 방식을 각각 세이보리와 디저트에서 보여주는 메뉴다. 개업 때부터 이어온 무 타르트 타탕과 가을에 주로 선보이는 몽블랑은 이러한 솔잎의 방향을 각각 세이보리와 디저트에서 보여주는 메뉴다.

무 타르트 타탕은 박웅철 셰프가 좋아하는 클래식 프렌치 디저트 타르트 타탕을 세이보리 요리로 바꾸는 데서 출발했다. 사과 대신 한국에서 친숙한 무를 사용하고, 숙성한 김치의 맛을 입힌 무에 퍼프 페이스트리와 마늘 페이스트, 볶은 통보리와 코리앤더 씨드, 술지게미를 넣은 수비즈 크림을 더한다. 박 셰프가 요리의 방향과 세이보리 구성을 잡고 기보미 셰프가 페이스트리의 구조와 식감을 보완하며 완성했다. 2020년 개업 이후에도 조리법과 비율을 계속 수정해온 이 메뉴에는 두 셰프의 협업 방식과 솔잎이 음식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함께 담겨 있다.

 

김치 풍미의 무로 완성한 타르트 타탱과 술지게미 수비스 크림

디저트 코스로 선보이는 몽블랑 역시 클래식 프렌치 페이스트리를 완전히 해체하기보다 솔잎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밤 크림에 한국의 잣으로 만든 프랄린과 라이스 크리스피, 통카빈 샹티이와 위스키 소스를 더해 여러 향과 질감을 겹치되 어느 하나가 다른 맛을 압도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토림도예의 골든 브라운 컵과 절제된 파이핑 역시 장식을 과하게 더하기보다 필요한 요소만으로 완성하려는 두 셰프의 태도를 보여준다.

 

밤 크림에 잣 프랄린과 바삭한 라이스 크리스피, 향긋한 통카 샹티이를 겹겹이 쌓은 몽블랑

두 메뉴는 새로운 조합이나 한국적인 요소 자체를 앞세우기보다, 각자의 경험에서 나온 재료와 기술을 설득력 있는 맛으로 완성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무 타르트 타탕과 몽블랑은 솔잎이 말하는 ‘두 사람다운 음식’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요리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박웅철 셰프.

외부의 평가보다 매일의 완성도를 지키다

두 셰프는 미쉐린 스타를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를 목표로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첫 스타는 큰 성취였고 솔잎을 알리고 팀을 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됐지만, 두 사람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일 찾아오는 손님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맛과 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하는 일이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개업 초기에는 코스 대부분을 약 3개월마다 바꿀 만큼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6년이 지난 지금은 변화 자체보다 계절과 식재료의 상태에 맞춰 메뉴를 조정하고 기존의 요리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 두 사람에게 발전은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만들어온 솔잎의 기준을 매일 조금씩 높여가는 일에 가깝다.

두 셰프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중요하게 기억하는 순간 역시 손님에게서 나온다. 박웅철 셰프에게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메인으로 낸 오리 요리를 먹고 눈물을 흘린 한 손님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거듭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만든 요리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두 셰프가 솔잎을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단단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들에게 한국적인 정서는 특정 재료나 장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고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찾아온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태도에도 있다. 한 접시의 완성도와 그 음식을 건네는 방식까지 함께 기억되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이 솔잎에서 만들고 싶은 경험이다.

 

밝은 목재와 옅은 색조에 한국적 미감을 자연스럽게 녹인 다이닝룸.

지금의 기준 위에서 다음을 준비하다

박웅철·기보미 셰프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솔잎을 더 분명하게 다듬는 일이다. 팀이 안정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운영 기반을 만들고, 오랫동안 선보인 메뉴를 계속 보완하며 영국의 제철 식재료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가고자 한다.

동시에 두 사람은 솔잎과는 다른 형태로 한국의 음식과 환대 문화를 보여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형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 자란 기억과 여러 나라의 주방에서 익힌 기술을 현재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음식과 사람을 세심하게 대하는 태도는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에서 가져온 ‘솔잎’이라는 이름처럼, 두 셰프가 지키고 싶은 것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보다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다. 메뉴도 팀도 계속 달라지겠지만 재료와 접시의 모든 요소에 분명한 이유를 두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찾아오는 손님을 세심하게 대하는 것. 두 사람에게 솔잎의 다음은 지금까지의 모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온 경험 위에서 자신들의 음식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단락

Writer 윤샛별 (Stellar Yoon)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Sol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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