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미래를 찾다, 라뽀뜨 박준현 셰프

보르도와 파리에서 프렌치의 문법을 배우고 서울로 돌아온 박준현 셰프. 오래된 요리책과 소스, 수없이 반복되는 기본에서 답을 찾으며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렌치를 조금씩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 논현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라뽀뜨(La Porte)를 이끄는 박준현 셰프의 요리를 보면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직접 만든 잠봉과 브리오슈, 오랫동안 끓여 농축한 쥬, 마그레 드 카나르(Magret de canard), 연어 쿨리비악(Koulibiac), 라팽 아 라 루아얄(Lapin à la royale)까지, 프랑스 본토를 떠올리게 하는 요리들이 주를 이룬다.

라뽀뜨를 이끄는 박준현 오너셰프가 클래식을 공부하는 이유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왜 이 재료를 이렇게 조리했는지, 왜 이 소스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한 뒤 현재의 재료와 자신의 감각을 더한다. 2023년 문을 연 이후 라뽀뜨의 음식이 조금씩 더 자신다운 모습으로 변해온 과정도 그와 닮았다.

 

라뽀뜨를 이끄는 박준현 오너셰프

 

가족이 모이던 식탁에서 요리사를 꿈꾸기까지

박준현 셰프에게 음식은 ‘가족’이었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그는, 여섯 식구가 함께하던 평범한 집밥이 행복했던 식사의 기억이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난 재료로 가족의 식사를 준비했다. 어느 날 전을 부치던 할머니가 뒤집개 없이 팬을 흔들어 전을 뒤집자 어린 박준현과 동생은 신기한 마음에 박수를 쳤다. 김치찌개에는 완전히 해동되지 않은 돼지고기를 그대로 넣기도 했다. 익으면서 덩어리진 고기가 나오면 형제는 서로 그 부분을 먹겠다며 투덜거렸다.

“어릴 때 저에게 음식과 요리는 각자 생활하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시절 그의 관심은 프로그래밍 언어에 있었다. 진로가 바뀐 계기는 의외로 짧은 한마디였다. 당시 점심시간이면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도시락을 먹었는데, 어느 날 교사가 한 친구에게 “너 요리학원 간다며, 잘하고 있냐?”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요리에 호기심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에 부모님도 놀랐지만 그는 요리의 길을 선택했다.

2008년 7월 무렵 서울로 올라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객원으로 방문한 일본인 셰프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현장에서 일하는 여러 셰프를 만나면서 자신이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조리법을 더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재료를 다루는 법과 조리법, 서비스까지 체계적으로 일을 배우고 싶었다. 고민 끝에, 더 큰 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곳은 프랑스였다.

 

라뽀뜨를 이끄는 박준현 오너셰프

 

서른한 살, 연고 없는 보르도에서 프렌치의 문법을 배우다

2015년,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보르도에 도착했다. 현지에 특별한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당장 명확한 커리어를 빠르게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법한 나이였지만, 그는 다시 낯선 도시에서 도전을 시작했다. “어리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나이가 많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때였죠. 그 나이에는 좋든 안 좋든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뛸 때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무 연고도 없는 보르도에 도착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막막했다. 친구를 만들고 일을 구하며 프랑스의 주방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르도에서는 외식 운영 기업 SSP(셀렉트 서비스 파트너), 르 갸브리엘(Le Gabriel) 등을 거쳤고 그랑 호텔 드 보르도 & 스파 (Grand Hôtel)에서도 시즌 근무를 경험했다. 당시 보르도의 다이닝 신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조엘 로부숑이 관여했던 레스토랑의 변화와 그 자리를 이어받은 피에르 가니에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랑 호텔 드 보르도 & 스파에는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이 들어왔다. 그도 역시 이력서를 들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였다. 지금도 그가 보르도를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보르도에서 프랑스 주방의 시스템을 체감한 뒤 다음 목적지는 파리였다. 자신의 요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여러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알라르(Allard), 오 리요네(Aux Lyonnais), 브누아(Benoit) 같은 파리의 대표적인 클래식 비스트로를 찾았고, 장 프랑수아 피에주(Jean-François Piège)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경험했다. 이전까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이때부터는 먹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경험이 더해졌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클래식한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프렌치로 향했다.

에콜 뒤카스(École Ducasse)에서는 컬리너리 아츠 디플로마(Culinary Arts Diploma) 과정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좋은 요리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식재료가 가진 맛을 어디까지 끌어낼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끌어낸 맛을 어떤 형태로 접시에 표현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파리에서는 에릭 프레숑(Éric Frechon) 셰프가 이끄는 브라세리 라자르(Lazare)에서 근무하며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와 프랑스 전통 요리를 직접 만들었다. 겉을 강하게 태운 대파를 갈라 속을 채우는 ‘푸아로 브륄레(Poireaux brûlés)’, 에릭 프레숑 셰프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대표 디저트 ‘파리-도빌(Paris-Deauville)’, 강꼬치고기로 만드는 ‘크넬 드 브로셰, 소스 낭튀아(Quenelle de brochet, sauce Nantua)’ 등이 특히 기억에 남아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그의 요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 오픈 전 팝업으로 요리를 선보이던 시기, 국내에서 강꼬치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삼치를 사용한 크넬로 바꾸어 선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경험을 거쳤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의 박준현 셰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셰프 역시 에릭 프레숑이다. 클래식에 기반하지만 고루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박 셰프는 프랑스에서 일하고, 먹고, 여러 레스토랑을 경험하며 조금씩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육수를 만들고, 쥬를 끓이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 시간을 맞추는 반복적인 일을 잘 해내는 것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지켜지는 것이 좋은 프렌치라고 생각합니다.”

 

라뽀뜨의 다이닝 테이블

 

파리로 향하던 기차에서 다시 서울로, 라뽀뜨의 시작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고 수년을 보냈다. 어느 날 보르도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계약서를 쓴 뒤 다시 파리로 돌라가던 기차 안, 문득 그에게 질문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프랑스에서 계속 배우며 경력을 쌓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식당을 열고 싶다는 생각 역시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것을 더 이상 막연한 미래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유명 체인 호텔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까지 받았다.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지만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길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었고,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박 셰프에게는 오히려 이 시간을 준비 기간이 됐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그때 세운 기준은 명확했다. “한국에서 프렌치를 하면서 프랑스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어요. 프렌치를 조금 더 프렌치답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세운 원칙이었습니다.”

2023년 문을 열고, 클래식 프렌치를 선보이는 라뽀뜨

그렇게 2023년 라뽀뜨가 문을 열었다. ‘La Porte’는 프랑스어로 ‘문’을 뜻한다. 복잡한 서울의 도심에서 한 개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편안한 공간에서 맛있는 프렌치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뜻을 담았다.

오픈 초기에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대표적인 메뉴 가운데 하나였던 연어 쿨리비악도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러시아에서 시작해 19세기 프랑스 요리 안에서 발전한 클래식한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지금도 원하는 손님에게는 추가 메뉴로 제공한다. 하지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계속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결국 저는 클래식한 프렌치의 맛과 소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더 분명히 알게 됐어요. 지금의 라뽀뜨는 그런 제 취향이 조금씩 솔직하게 드러나는 레스토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클래식한 프렌치의 맛과 소스를 박준현 셰프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라뽀뜨

 

20리터에서 1.8리터로, 재료의 맛을 눌러담다

박준현 셰프는 소스와 쥬(jus)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는다. 라뽀뜨에서 오리 쥬(Jus de canard)를 만드는 과정에도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사용되는 재료는 오히려 단순하다. 오리뼈와 태운 채소로 만든 육수, 오리고기, 헤네시 코냑, 이즈니 버터, 마늘, 샬롯, 타임. 약 20리터 규모의 큰 동 냄비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1.8리터가 남을 때까지 졸인다. 많은 요소를 추가해 복잡한 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리라는 주재료의 맛을 응축하는 과정이다. 완성된 오리와 함께 먹었을 때 재료의 맛이 극대화되는 것이 목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준도 명확하다. 첫째는 어디까지나 주재료의 맛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언제 만들어도 일정한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현 셰프는 “클래식 프렌치는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매번 같은 수준으로 구현하는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터도 마찬가지. 라뽀뜨에서는 손님에게 빵과 함께 내는 버터와 조리용 버터에 모두 이즈니 버터를 사용한다. 제품마다 갖고 있는 풍미의 차이가 있고 그 작은 차이가 결국 완성된 음식 전체의 맛을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경험은 명확하다. 프랑스에서 식사해본 손님이 라뽀뜨의 음식을 먹었을 때 “예전에 프랑스에서 먹었던 그 맛이 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요리의 기본적인 맛과 조리법을 한국에 맞게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 대신 한국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를 해석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프랑스 재료와 다르다는 이유로 부족하다고 판단하기보다 각 식재료가 가진 맛과 질감의 특징을 먼저 이해하고, 프렌치의 틀 안에서 가장 좋은 맛이 나도록 조정한다.

잠봉과 브리오슈, 숙성육도 직접 만든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페메종(fait maison), 즉 직접 만드는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셰프가 원하는 맛과 질감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봉은 염도와 향을 라뽀뜨의 브리오슈에 맞출 수 있고, 숙성육도 원하는 상태까지 직접 관리한다. 각각은 아주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박 셰프는 이 작은 차이가 모여 결국 라뽀뜨만의 맛을 만든다고 말한다.

“손님께서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더라도 ‘여기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해요.”

박준현 셰프의 아내이자 라뽀뜨 대표인 하은혜 파티시에는 빵과 디저트를 담당한다.

이 과정에는 아내인 하은혜 대표의 역할도 크다. 하은혜 대표는 과거 울산에서 ‘베이커리 울프’라는 베이커리와 베이킹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래서 함께 논의하며, 빵이나 디저트를 전체 식사와 함께 놓고 생각한다. 박 셰프가 요리의 방향을 설명하며 어울리는 빵을 제안하기도 하고, 반대로 하 대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요소가 한 코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계속 의견을 주고받는다.

 

고전에서 미래를 찾다, 지금의 라뽀뜨

박준현 셰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여전히 오래된 프렌치 요리책과 자료를 찾아본다. 그에게 클래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오히려 미래로 나아가는 일이다. “저는 새로운 조합과 기술을 찾기 위해 클래식 프렌치를 추구해요. 오래 쌓아 온 지혜가 있는 클래식한 요리들은 오히려 가장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라뽀뜨 방식으로 재해석한 라팽 아 라 루아얄(Lapin à la royale)

대표적인 결과가 프랑스의 고전적인 겨울 요리인 라팽 아 라 루아얄(Lapin à la royale)이다. 원래 야생 산토끼를 사용하는 이 요리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박 셰프는 ‘치아가 좋지 않았던 루이 14세가 사냥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도록 산토끼를 오랫동안 부드럽게 조리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왜 오랜 시간 익혔는지, 왜 특정 소스를 사용했는지, 하나의 요리가 지금의 형태가 되기까지 어떤 필요와 기술이 있었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국내에서는 산토끼를 구하기 어려워 농장에서 사육한 토끼를 사용한다. 그래서 리에브르 아 라 루아얄(Lièvre à la royale)의 조리법과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라뽀뜨의 토끼 요리를 만들었다. 클래식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조리의 이유를 가져와 현재의 재료와 환경에 맞게 다시 표현한다.

마그레 드 카나르(Magret de canard), 오리 가슴살 요리.

지금 박준현 셰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로 그는 마그레 드 카나르(Magret de canard), 오리 가슴살 요리를 꼽는다. 프랑스 남서부, 특히 보르도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자 그가 보르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인상 깊게 먹었던 음식이다. 라뽀뜨의 오리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조리법과 가니시, 소스 구성을 여러 차례 바꾸며 계속 수정했다. 프랑스에서 자신이 경험한 클래식한 맛을 기준으로 삼되, 반복적인 수정을 거치며 라뽀뜨의 맛으로 만들어왔다. 그만큼 박 셰프 자신이 어디서 출발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음식이다.

 

라뽀뜨를 운영하며, 요리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셰프라는 역할에 대한 생각도 바꿨다. 예전에는 자신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가장 집중했다면 지금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과 이유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공유할지를 더 많이 고민한다. 손님에게도 설명을 앞세우기보다 한 접시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앞으로 라뽀뜨가 우리만의 색을 더욱 온전히 갖춘 곳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 중입니다. 라뽀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음식과 분위기, 경험이 있는 레스토랑이 되는 것이 목표죠.” 이를 위해 클래식을 벗어나는 대신 더 오래된 요리를 들여다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육수와 쥬를 만드는 데 며칠을 사용하며, 잠봉과 브리오슈를 직접 만들고, 익숙한 오리 한 접시도 계속 수정한다. 박 셰프에게 클래식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기준이다.

라뽀뜨의 프렌치는 오래된 음식을 이야기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박준현은 자신이 프랑스에서 보고 먹고 배운 맛을 지우지 않은 채 서울의 재료와 자신의 경험을 그 위에 차곡차곡 더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편안하고 맛있는 프렌치를 내겠다는 처음의 생각은 그대로다. 다만 그 문 너머의 음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깊고, 조금씩 더 박준현 셰프다운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단락

Writer 윤샛별 (Stellar Yoon)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La Porte
추천 기사
SEE ALSO
EXPLORE ALLarrow-right-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