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책》 출간을 기념해 열린 ‘김밥 난로회’에서, 우정욱 셰프가 어머니의 김밥으로부터 이어 온 김밥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소고기가 가득 든 김밥을 또 먹지?” 우정욱 셰프의 어린 시절, 김밥은 소풍날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우 셰프의 어머니는 영양을 골고루 따져 속재료마다 정성껏 따로 조리해 김밥을 싸 주셨다. 지난 9월 《김밥 책 The Gimbap Book》을 펴내며 우 셰프가 떠올린 것도 어머니의 김밥이었다. 10월 19일 열린 ‘김밥 난로회’는 책 출간을 기념해 난로학원(NANRO)과 우 셰프가 함께 마련한 자리다.
‘서울엄마의 손맛’, 우정욱 셰프의 김밥
우 셰프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에서 ‘서울엄마’로 불렸다. 서울 사람인 데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음식을 넉넉히 먹이는 모습에 붙은 이름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서울 음식을 배운 우 셰프는 1995년 대치동에서 가정요리 수업을 시작해 오랫동안 요리를 가르쳤고, 지금은 압구정에서 한식 레스토랑 수퍼판을 운영한다. 우 셰프의 음식에는 밑간과 밑손질이 많다. 손이 가면 음식이 확실히 더 맛있어지니 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라도 빼먹으면 정확한 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우 셰프의 이야기다. 그래서 속재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재료는 늘 신선한 것으로 고르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손을 본다.
김밥은 우 셰프가 가장 즐겨 먹는 한 끼이기도 하다. 요리를 가르치던 시절에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압구정과 이촌동의 단골 김밥집에 들러, 그 자리에서 갓 싼 김밥 한 줄을 사 들고 차에 올랐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하나씩 집어 먹고 아이스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든든한 한 끼가 되었던 기억들이 있다.
속재료를 하나씩 볶고 졸여 만 우 셰프의 김밥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가지가지’는 우 셰프가 김밥과 떡볶이를 내는 분식 브랜드다. 어머니가 열심히 싸 주시던 클래식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것을 원칙으로 다양한 김밥과 분식을 선보인다. 불고기 양념을 한 한우를 듬뿍 넣은 한우김밥, 직접 삶은 시래기에 잔멸치를 더한 시래기김밥 등이 대표 메뉴다. 문을 연 지 3년이 넘은 지금도 모든 재료는 하나하 직접 조리한다. 떡볶이 양념도 파인애플과 양파, 고춧가루를 갈아 숙성시킨 페이스트로 만든다.
“김밥은 움직이는 비빔밥이라고 생각해요. 이와 곁들이는 분식 또한 좋은 재료를 써야 하고,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고 속이 편해야 하죠.”
《김밥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책은 외국 손님들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흑백요리사 2〉 이후 수퍼판을 찾는 외국 손님이 늘면서, 우 셰프는 영어로 된 책은 없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오랫동안 요리를 가르치며 여러 권의 요리책을 냈지만 영어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지가지에서 선보여 온 김밥을 한국어와 영어로 담았다.
《김밥 책》은 김과 쌀, 참기름과 소금에서 시작한다. 달걀말이와 우엉조림, 오이절임 같은 속재료를 하나씩 따로 만들고, 장아찌까지 담근 뒤에 김밥을 만다. 책에는 우 셰프의 기준에서 물리지 않는 김밥의 조합들을 싣고, 떡볶이와 간단한 국수, 사라다와 같이 곁들이면 좋은 음식의 내용까지 담았다. 외국인이 봐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도록 레시피를 정리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소가 정말 많이 들어가는데 그게 다 조리법이 달라요. 하나의 요리책을 만들 만큼 쉽지 않았죠.”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쓴 《김밥 책 The Gimbap Book》
오랫동안 해외에서 ‘코리안 스시’로 설명되던 김밥은 이제 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21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반찬, 잡채와 함께 ‘kimbap’을 새 표제어로 올렸고, 미국 슈퍼마켓 냉동 코너에도 김밥이 자리를 잡았다. 올봄에는 뉴욕 웨스트빌리지에 김밥 전문점 두 곳이 잇따라 문을 여는 등 해외에서도 김밥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 셰프는 사 먹는 김밥에 익숙해지고 있는 외국인들도 정확한 레시피를 보고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책을 쓴 이유는 한국에도 있다. 세계가 한국 음식에 열광하는 사이, 정작 한국에서는 김밥을 쉽게 여긴다는 것이 우 셰프의 생각이다. 익힌 채소와 발효가 한 줄 안에 어우러진 김밥이 한국에서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한다는 취지다.
“김밥의 위상을 우리가 스스로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많아서 책을 만들었어요. 다음 세대에, 또 지금 전 세계에 김밥의 가치를 높여서 알렸으면 좋겠어요.”
최원석 프로젝트렌트 대표의 진행으로 열린 김밥 토크
김밥 벗들과 함께 차린 다섯 가지 김밥
이날 김밥은 다섯 가지였다. 세 가지는 우 셰프가, 나머지 두 가지는 우 셰프가 ‘김밥 벗’으로 초대한 '소바쥬'의 박주성 셰프와 '유용욱바베큐연구소' 유용욱 소장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흑백요리사 2〉에 함께 출연했다.
우정욱 셰프의 김밥 벗들인 유용욱바베큐연구소의 유용욱 소장와 소바쥬의 박주성 셰프
우 셰프는 서울엄마라는 이름처럼 엄마김밥을 냈다. 지단과 단무지, 우엉, 어묵, 오이, 당근을 하나씩 볶고 졸여 넣은 김밥이다. 당근과 우엉을 가늘게 채 썰지 않고 작게 깍둑 썰어 넣은 단면이 눈에 띄고, 여러 채소들이 고루 어우러진다. 가지가지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아보카도 김밥은 샌드위치에서 착안했다. 아보카도에 크래미와 오이, 지단, 단무지를 넣어, 풍성한 한 입이 된다. 서리태 마스카포네 김밥은 이날 처음 선보였다. 수퍼판의 시그니처인 서리태 마스카포네에 루꼴라와 매콤한 멸치를 더해 꼬마김밥으로 말았다.
이날 처음 선보인 우 셰프의 서리태 마스카포네 김밥
마포에서 메밀 요리를 중심으로 한 레스토랑 ‘소바쥬’를 이끄는 박 셰프는 우메보시와 오이, 시소를 넣은 매실김밥을 준비했다. 갈비와 치즈가 든 다른 김밥들 사이에서 일부러 간을 약하게 맞췄다.
“조금 더 입이 깔끔할 수 있게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준비했어요. 그냥 서포트하는 느낌, 입가심하는 느낌으로 드시길 원했어요.”
'유용욱바베큐연구소'의 유 소장은 훈연 향을 입힌 바베큐갈비 김밥을 올렸다. 바베큐라는 서양 요리를 해 온 만큼, 한국적인 느낌과 섞어 보는 쪽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소갈비살을 넣고, 무나물과 여름에 담근 두릅장아찌를 숯에 볶았다. 밥을 버무리는 참기름도 훈연했고, 태양초 고추를 태워 만든 핫소스를 마요네즈와 섞어 가운데에 짜 넣었다.
특히, 유 소장은 밥의 양을 맞추는 데 공을 들였다. 조금씩 넣어 보며 조절한 끝에 단무지 두 줄 정도의 부피로 정했다. 바베큐 양념이 밥과 잘 어울리기에, 그 조합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 두릅장아찌를 더해 맛의 균형을 잡으면서 식감을 더했다.
박주성 셰프의 매실김밥과 유용욱 소장의 바베큐갈비 김밥
김밥 한 줄, 차 한 잔이 담은 이야기
김밥 곁에는 옥인다실의 홍차에 레몬그라스와 마리골드, 라벤더, 장미 꽃봉오리를 더한 무알코올 스파클링 티가 놓였다. 김밥과 함께 먹었을 때를 고려해, 평소보다 농도를 진하게 맞추었다. 김밥 사이사이에는 우 셰프가 준비한 김치샷을 함께 마셔 보도록 했다. 한우 육수에 동치미와 김치 국물을 더해 차갑게 낸 일종의 클렌저로, 작은 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면 산미가 도드라져 다음 김밥으로 넘어가기 좋다.
김밥과 페어링된 스파클링 티와 동치미와 김치 국물을 더한 차가운 ‘김치샷’
이날 자리를 마련한 난로학원은 한식 산업의 인재를 기르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모임의 이름은 18세기 조선 사대부들이 겨울에 화로를 둘러싸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생각을 나누던 ‘난로회’에서 따왔다. 지금까지 170번 열린 난로회는 사찰음식과 전통 한식에 이어, 이번에 서울 가정식을 다뤘다.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은 "김밥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 있잖아요."라며, 김밥이 들인 정성만큼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최 의장이 이번 난로회를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셰프들이 마음과 아이디어를 모으면 김밥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변주를 더해 가치를 높이고, 해외로도 더 넓게 알리고 싶어요."
《김밥 책》 출간을 축하하러 모인 '김밥 난로회' 참석자들
한식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 최 의장은 그 관심이 잠깐의 인기가 아니라 50년, 100년 갈 수 있는 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개회사에서는 우 셰프가 업계 후배와 동료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 했다고 전하며, 이날을 엄마가 김밥을 싸 주는 날에 빗댔다.
"엄마가 김밥을 만들어 주는 날은 굉장히 특별한 날 아닌가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오늘이 사실 그런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