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아카데미'와 함께, 바다의 맛을 품은 기장 미역의 생태와 산업을 들여다봤다.
미역은 한국인의 생애 전반을 걸쳐 가장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식재료다. 출산 후 삼칠일 동안 매일 끓여 먹는 미역국으로 시작해, 해마다 생일이면 어김없이 밥상에 오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해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의례 속에 미역은 언제나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 식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긴 시간과 노동을 들여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일까.
올해 초, MINGCHU는 겨울 바다의 중심에서 미역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부산 기장으로 내려갔다. 사단법인 난로 학원의 ‘난로 아카데미’를 통해 서울과 부산의 셰프들, 미식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기장 미역의 생태와 산업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대변항에서 출발한 어선을 타고 미역 양식장을 직접 둘러보며, 씨드의 박혜라 대표로부터 기장 해조류 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파도 위에 서서 로프에 매달린 미역을 갓 건져 손으로 쥐던 순간, 늘 당연하게 여겨왔던 한 그릇의 무게가 새롭게 느껴졌다.
기장 바다가 만드는 것
기장은 예로부터 전통적인 미역의 특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난로회에서는 기장 미역이 어떻게 우수해지는지, 그 환경과 기원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장 앞바다는 지도상으로는 한반도 남동쪽 끝자락의 작은 해안선에 불과하지만, 바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동해와 남해가 맞닿아 끊임없이 충돌하는 역동적인 세계다. 따뜻한 난류와 차가운 한류가 교차하는 이 길목에서는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맑고 깨끗한 심층수가 위로 솟구치는 용승 현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이 덕분에 바다 표면에는 미역이 먹고 자랄 풍부한 영양염류와 플랑크톤이 쉴 새 없이 공급된다.
땅에 뿌리를 박고 흙 속의 양분을 빨아들이는 육상 식물과 달리, 미역은 바위에 몸을 고정만 할 뿐 잎과 줄기를 포함한 온 몸의 표면을 통해 바닷속 영양분을 직접 흡수한다. 영양이 풍부한 기장의 바다는 그 자체로 미역에게 거대한 천연 영양실이 되어 주는 셈이다.
기장 바다의 수류와 수질, 기후 환경 등이 만나 미역을 위한 최적의 생장 조건이 완성된다.
여기에 기장 바다 특유의 깊은 수심과 거친 물살이 더해지면서 기장 미역만의 독보적인 품질이 완성된다. 물살이 세고 조류가 빠를수록 미역은 거센 파도에 찢기거나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 이 강한 저항 속에서 미역은 세포 조직을 아주 촘촘하고 밀도 있게 채우며 자라고, 중심을 잡는 줄기를 두껍고 단단하게 키워낸다. 현장에서 미역을 키우는 어민들이 "기장 미역은 바닷속에서 온종일 거친 운동을 하며 자란다"고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일 혹독한 트레이닝을 견뎌낸 스포츠 선수처럼, 기장 미역은 얇고 나약하게 퍼지는 대신 탄탄한 '근육질 체형'으로 자라난다. 조직이 꽉 차 있어 빛깔 역시 깊고 짙은 검은색을 띤다.
또한 기장의 바다 밑바닥은 수많은 돌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의 거센 파도가 이 바위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는데, 이 현상을 '파랑(波浪)'이라 부른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생기는 수많은 천연 거품들은 바닷속 산소를 극도로 활발하게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활발한 산소 순환 덕분에 미역 표면에 원치 않는 잡초나 이물질, 패류 등이 달라붙지 못한다. 부착 생물이 적으니 미역은 영양분을 온전히 독점하며 유독 깨끗하고 깨끗한 모양새로 자라나게 된다. 거친 물살과 깊은 청수(淸水)가 만나 미역에게 최고의 생장 조건을 선물하는 것이다.
'쫄쫄이'와 '넓데기', 다른 바다 다른 미역
한국에서 유통되는 미역은 자라온 바다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완도와 고흥 등 잔잔한 남해 연근해에서 자라는 남방형 미역과, 기장을 중심으로 거친 동해안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북방형 미역이다. 비록 같은 미역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르지만, 두 미역은 형태와 식감, 그리고 쓰임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남해안에서 주로 생산되는 미역은 시장에서 보통 '넓데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잎이 넓고 평평하며 전체적으로 얇고 줄기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물살이 비교적 완만하고 수온이 따뜻한 바다에서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식감이 아주 연하다. 부피 대비 생산성이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대량 생산과 가공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접하는 부드러운 자른 미역이나 염장 미역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높은 밀도로 오래 끓여도 식감이 살아 있고, 특유의 진한 국물 맛까지 우러나는 것이 기장 미역의 특장점이다.
반면 기장의 미역은 '쫄쫄이'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통한다. 거친 물살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잎을 옆으로 넓게 펼치지 않고, 폭을 좁고 길게 늘어뜨리며 두께를 도톰하게 키운다. 영양분을 흡수하는 미역귀와 잎의 간격이 매우 촘촘하고, 중심 줄기가 단단한 기둥처럼 발달한다. 섬유질이 워낙 치밀하고 밀도가 높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넣고 아무리 오래 끓여도 잎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지지 않고 특유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응집력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여기서 기장 미역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적 이유가 드러난다. 남해안 미역이 연하고 부드러운 특성을 살려 대량 가공과 유통의 효율성에 집중한다면, 기장 미역은 원물 자체의 독보적인 식감과 요리했을 때 우러나오는 깊은 풍미에 가치를 둔다. 특히 시간을 두고 오래 닳일수록 사골을 고아낸 것처럼 뽀얗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오는 매력은 기장 미역만의 특징이다. 기장 미역의 시장 가격이 타 산지에 비해 수 배 이상 높게 유지되는 것은 단순히 공급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맛과 식문화적 측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품질을 어민들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순리 위에 세운 인간의 정성
많은 이들이 기장 미역이라고 하면 자연산 돌미역만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기장 미역은 어민들의 정교한 기술과 자연이 합작해낸 '양식 미역'이다. 기장의 미역 양식은 바다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의 생태적 메커니즘을 그대로 활용하는 가장 영리한 농사다.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미역 양식 현장의 모습. 기장의 미역 양식은 사실 자연과의 협력을 정교하게 유도해내는 친환경적이면서도 고효율적인 양식 방법으로 꼽힌다.
양식 미역의 한 해는 가을철, 정성껏 키워낸 인공 종묘를 바다에 입식하면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역 포자가 붙은 실 로프를 바다 해수면에 띄운 대형 로프에 촘촘하게 감아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때부터 미역은 거친 기장 바다의 한복판에 매달려 오직 동해의 파도와 햇빛,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영양염류만을 먹고 자란다. 인간은 그저 미역이 잘 자라도록 물줄기를 잡아주고 로프의 깊이를 조절해 줄 뿐, 성장의 몫은 온전히 기장 바다의 몫이다. 해수면 근처에서 자라는 만큼 광합성이 활발해, 양식 미역은 줄기가 튼튼하면서도 잎이 아주 깨끗하고 고르게 발달하는 매력을 지니게 된다.
반면, 이 양식장보다 더 깊은 바다 밑바닥, 거친 암초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 바로 자연산 돌미역이다. 돌미역은 바다 밑 거친 바위 자체가 자연의 양식장이 된다. 매년 가을이 되면 어민들은 다 함께 바다로 나가 쇠긁개로 바위 표면의 잡초를 긁어내는 '바위 씻기(기세작업)'를 수행한다. 바위를 하얗게 닦아내야만 바다를 떠돌던 미역 포자들이 안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내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자란 미역은, 이듬해 봄 음력 3월 초 채취 허가가 떨어지면 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직접 낫으로 베어 올린다. 옛 노동요 속 "하얗게 닦은 돌에 많이많이 달아주소"라는 구절처럼, 이는 오랜 옛날부터 바다와 인간이 맺어온 정직한 약속이다. 이렇게 거둔 기장의 미역들은 가공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낸다. 12월 겨울 초입에 건져 올린 생미역(물미역)은 데치거나 염장하지 않은 생물 상태 그대로 유통되어 싱그러운 향이 좋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 좋다.
전통적인 방식을 여전히 유지하며 생산되는 기장의 건미역. 채취부터 건조까지 긴밀하게 이뤄지는 고급품이다.
그리고 수온이 안정되는 봄철부터는 기장 미역의 꽃이라 불리는 건미역 생산이 본격화된다. 바다에서 100일 넘게 충분히 자라 맛 성분이 가득 찬 미역만을 골라 해풍과 햇볕 아래 한 가닥씩 걸어 말리는 자연건조 방식을 고수하는데, 과거의 나무 틀이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구조물로 바뀌었을 뿐 바람과 햇살로 감칠맛을 응축하는 본질은 그대로다. 봄철 수온이 너무 오르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장의 봄 바다는 언제나 좋은 미역을 말리기 위한 치열한 시간 싸움의 현장이 된다.
역사로 말하는 가치
600년 전의 역사적 기록이 증명하듯, 기장 미역의 명성은 마케팅 또는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볼수 없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에 기장 앞바다의 미역을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명확한 기록이 있듯, 이후 많은 역사 문헌에도 기장 미역의 기록이 남아있다.혹독할 정도로 까다로웠던 진상품의 기준은 전국의 물품 중 가장 뛰어난 품질의 균일성은 물론이고, 오랜 운송 기간에도 변질되지 않는 보존성, 그리고 수라간 가마솥에 오랜 시간 은근하게 끓여내도 흐물흐물하게 풀어지지 않는 조리 적합성을 모두 만족해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까다로운 조건들이 오늘날 셰프들과 미식가들이 기장 미역을 좋은 식재료로 꼽는 이유와 일치한다.
조선시대 때 단순한 반찬을 넘어, 국가 재정 자산으로서 국가에서 관청을 설치하여 귀하게 관리하던 미역은 현대에 와서 양식이 시작되면서 더욱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1966년 기장 학리 앞바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역 인공 채묘 및 양식 시험에 성공하기 전까지, 미역은 자연산 채취에만 의존해 미역이 귀하고 비싼 재료였다. 로프에 포자를 붙여 바다에서 미역을 대량으로 키워내는 양식 기술이 부산 기장을 기점으로 시작되면서, '흑색혁명(黑色革命)’이라고 불릴만큼 미역을 전국의 바다로 퍼져나가게 됐다. 왕실 진상품에서 현대 미역 양식 기술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성은 ‘기장 미역’이라는 재료를 더욱 가치있게 한다.
부산 앞바다의 거친 환경이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그 늦춰진 시간이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고 탄력을 유지하는 줄기, 국물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깊고 진한 향을 만든다는 점에서, 기장 앞바다의 물살이 강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미역에게는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미역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견디며 제 자리를 지켜온 바다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 생애를 걸쳐 건네는 가장 따뜻하고 정직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