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셰프 다니엘 칼버트가 화려하게 떠난 자리. 바통을 이어받은 스티븐 랭커스터는 시간과 발효, 그리고 일본의 계절을 통해 ‘SÉZANNE 2.0’을 만들어간다.
도쿄의 파인 프렌치 레스토랑 SÉZANNE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첫날, 미쉐린이 3스타를 거둬들였다는 소식을 접한 스티븐 랭커스터(Stephen Lancaster)는 놀라움과 동시에 안도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 기뻤습니다. 정말, 정말 기뻤어요.”
도쿄 마루노우치 포시즌스 호텔에 자리한 SÉZANNE은 영국인 셰프 다니엘 칼버트(Daniel Calvert)가 2021년 처음부터 만들어낸 전설적인 레스토랑이다. 오픈 반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획득했고, 2024년 말에는 최고 영예인 3스타에 올랐다. 같은 해 SÉZANNE은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올해 4월 다니엘 칼버트가 세간의 주목 속에 레스토랑을 떠났고, 뒤이어 미쉐린 가이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정을 내렸다. SÉZANNE의 3스타를 모두 거둬들인 것이다.
미쉐린의 입장은 언제나 명확했다. 별은 셰프가 아닌 레스토랑에 수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이드가 별을 회수하면서, 오랫동안 거듭 강조해온 스스로의 원칙을 뒤집었다.
랭커스터는 이렇게 밝혔다. “계약할 당시에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곳에 출근한 첫날이 되어서야 총지배인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마음속 첫 반응은 ‘정말 기쁘다’였어요. 오히려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SÉZANNE은 원래 3스타 레스토랑이었지만, 이제는 깨끗한 백지 한 장과 같아졌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되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다시 쟁취한 것이지 물려받은 것이 아니니까요…… 물론 잃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결정이 정말,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계속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죠.”
그는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3스타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도, 칼버트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아갈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SÉZANNE 2.0’에 걸맞은 영예를 쟁취할 수 있게 됐다.
도쿄 마루노우치 포시즌스 호텔에 자리한 SÉZANNE은 전임 총괄 셰프 다니엘 칼버트(Daniel Calvert)가 세간의 주목 속에 떠난 직후 미쉐린 3스타의 영예를 내려놓게 됐다. 그렇게 아무런 성취도, 짊어져야 할 부담도 없는 한 장의 백지가 후임 스티븐 랭커스터(Stephen Lancaster)에게 남겨졌다.
두 다리에 힘이 풀린, 놀라운 제안
싱가포르의 레스토랑 Poise를 닫은 뒤, 랭커스터는 한때 호찌민으로 향해 베트남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당시 더없이 좋은 장소를 찾아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에도 베트남에서 계속 장소를 물색했지만 끝내 레스토랑을 열 만한 이상적인 공간을 찾지 못했다.
“바로 그때 다니엘 칼버트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도쿄에서 레스토랑을 열려는 친구가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죠.” 랭커스터는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랭커스터와 칼버트는 가까운 사이도, 서로를 제대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몇 년 전 홍콩의 Belon에서 칼버트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칼버트는 그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다. 2025년 초 랭커스터가 처음 도쿄를 찾았을 때 SÉZANNE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마침 칼버트는 리옹에서 열린 폴 보퀴즈 요리 대회의 명예 심사위원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때까지 두 사람을 이어주던 연결고리라고는 인스타그램에서 서로를 팔로우하고 있다는 것과 몇몇 공통의 지인이 있다는 정도였다.
몇 주 뒤, 칼버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그가 ‘그 레스토랑’의 이름을 밝혔다. SÉZANNE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순간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생각이 여전히 같은지 묻더군요. 전화를 끊고 약혼녀에게 말했어요. 아마 이름난 셰프들이 여럿 후보에 올랐을 테고, 그중 한 명으로 지목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라고요. 저는 그저 후보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는 그 이상의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후 연이어 면접이 진행됐고, 비밀리에 도쿄로 날아가 5코스 메뉴를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됐다. 여기에는 비둘기 요리와 Poise에서 선보였던 그의 시그니처 치킨 요리도 포함됐다. 요리를 마친 뒤 마지막 면접까지 통과했고, 최종적으로 자리를 제안받았다. 모든 것이 결정된 순간, 오히려 망설인 것은 랭커스터였다.
‘배짱 좋은’ 셰프
랭커스터에게 SÉZANNE을 맡는다는 것은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도박판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았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를 이어받아,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총괄 셰프 자리에 앉는 겁니다.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압박감이 너무 커서 맡기가 두려웠어요! 하지만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받아들일 배짱이 없다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요.”
위험을 감수하고 압박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가 과감하게 SÉZANNE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자 그의 인스타그램은 순식간에 수많은 메시지로 뒤덮였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압박에도 굴하지 않은 채 과감하게 SÉZANNE의 지휘봉을 잡은 스티븐 랭커스터 역시 영국 출신 셰프다.
“메시지를 수백 개는 받은 것 같아요. 전부 ‘세상에, 정말 배짱이 대단하다’, ‘정말 이 일을 맡을 용기가 있다니 대단하다’ 같은 내용이었죠. 그 메시지들이 기억에 남아요. 바로 그게 압박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랭커스터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한 표를 던졌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매일 엄청난 압박과 마주하고 있지만, 지금 그는 이곳에서의 삶을 무척 좋아한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훌륭한 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어요. 다니엘이 만들어낸 모든 것, 그리고 그의 전설까지도요. 그것을 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곳은 탁월함의 기준과도 같아요. 존경받는, 대단히 훌륭한 레스토랑이죠. 바로 제가 바라던 곳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모든 디테일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실수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어떤 혹독한 비판도 가장 열린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바로 이것이 “가장 큰 압박이 있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이상, 마주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가벼움으로 깊이를 만들고, 클래식을 재구성하다
랭커스터는 SÉZANNE을 맡은 뒤 3주에 걸쳐 메뉴를 단계적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 요리를 하나씩 교체해 나갔다. 그의 요리는 겉으로는 프렌치 클래식의 골격을 갖추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볍고 경쾌한 현대성이 흐른다.
“이전의 요리는 훨씬 더 진하고 묵직했습니다. 제 스타일 역시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훨씬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훨씬 가볍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에요. 열 몇 가지 요리를 먹은 뒤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거나, 바로 잠을 자러 가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죠. 또 하나는 제 요리가 일본의 계절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그 위에 발효를 활용해 균형을 잡습니다. 이런 요리 방식 역시 제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 중요한 요소입니다.”
7월의 마지막 날 SÉZANNE에서 식사했을 때, 여름 메뉴에는 이 계절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재료들이 펼쳐졌다. 나가노현 퀸 루즈 포도를 곁들인 닭 간 무스 파이, 홋카이도 보라성게와 아이치현 흰 옥수수, 미야기현 고등어와 니가타현 가지, 훈카만 가리비, 야마나시현 복숭아, 지바현 주키니, 에히메현 흰 옥돔, 오키나와 노란 무, 홋카이도 에조 사슴, 시즈오카현 ‘텐시노오토’ 멜론까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홋카이도 에조 사슴으로 만든 피티비에(Pithiviers)였다. 숙성한 사슴고기에 숯불에 구운 붉은 피망과 차이브로 만든 속을 더하고, 이를 다시 시금치로 감싼 뒤 바삭한 파이 크러스트로 완성했다. 나가노현 블루베리는 먼저 구운 뒤 발효한 블루베리 주스로 조리했다. 스모키한 향과 과실의 산미가 교차하며, 클래식하면서도 경쾌한 인상을 남긴다.
에히메현 흰 옥돔에서는 식재료를 향한 랭커스터의 집요한 탐구가 드러난다. 생선은 숙성한 뒤 숯불에 굽는다. 소스는 클래식한 알뷔페라 소스(Sauce Albufeira)로, 생선 뼈를 베이스로 삼아 마지막에 소량의 푸아그라를 더한다. 곁들이는 오키나와산 노란 무는 발효 과정을 거친다.
닭 날개 요리에서는 그의 유희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뼈를 제거한 닭 날개를 브라인에 절인 뒤 보리새우와 지바현 주키니, 바질을 채워 넣는다. 여기에 새우 껍질을 발효해 만든 농축 소스를 곁들인다. 함께 내는 일본식 밀크 브레드는 버터 대신 닭기름으로 만들어, 직관적이면서도 농밀한 풍미를 전한다.
랭커스터는 SÉZANNE을 맡은 뒤 계절의 흐름에 맞춰 메뉴를 단계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며 요리를 하나씩 교체해 나갔다. ‘홋카이도 보라성게와 아이치현 흰 옥수수’와 같은 여름 요리를 통해 지금 이 계절,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재료를 맛볼 수 있다.
나가노현 퀸 루즈 포도를 곁들인 닭 간 무스 파이 。
설거지 담당에서 미쉐린 주방까지
이러한 요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랭커스터가 걸어온 셰프로서의 길은 한 걸음씩 이어온 탐색과 경험의 축적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특별한 가족 배경도, 이른바 ‘할머니의 비법’도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영국 데번주의 태비스톡 출신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파인 다이닝에 열광하는 그런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나 생일이면 그저 괜찮은 펍에 가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같은 아주 클래식한 펍 음식을 먹는 정도였죠. 부모님 역시 열성적인 미식가는 아니었습니다. 두 분이 평생 먹어본 유일한 테이스팅 메뉴가 제가 싱가포르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에 왔을 때 먹은 것이었으니까요.”
13세 때 그는 방과 후 한 카페에서 설거지를 담당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주방 경력의 출발점이었다. 16세에는 학교를 그만뒀고, 같은 카페에서 이미 셰프로 일하고 있었다. 18세가 되자 랭커스터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수준의 주방을 목표로 삼았고, 이후 서리주로 이주해 19세부터 처음으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혹독한 겨울이 그를 완전히 바꾸다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는 스웨덴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고, 그전까지 영국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비롯해 훌륭한 곳들에서 일했어요. 헤스턴 블루멘털(Heston Blumenthal)의 Dinner도 있었고, 호주에서 진행된 The Fat Duck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죠. 하지만 발효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분야였습니다. 책을 읽고 혼자 짐작하며 시도하는 대신,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그가 스승으로 택한 사람은 마그누스 에크(Magnus Ek)였다. 에크는 스웨덴에서 높은 명성을 지닌 셰프로, 그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Oaxen Krog는 뉴 노르딕 퀴진을 전문으로 했으며 거의 모든 식재료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조달했다. 자체 농장까지 갖추고 있어 랭커스터가 처음으로 ‘팜 투 테이블’ 방식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곳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농장에 가서 식재료를 수확했고, 모든 요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보존이나 발효의 요소가 들어가야 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지구 반대편인 그곳의 겨울은 굉장히 혹독하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농장의 작물을 수확해 저장고에 넣고, 일련의 발효와 보존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발효를 하지 않으면 메뉴에 올릴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거죠.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들리잖아요.” 그는 당시의 경험을 쉴 새 없이 풀어놓았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발효에 몰두했던 그 시기는 랭커스터의 요리 철학과 음식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전까지 저는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으로 훈련받았고, 더 진하고 묵직한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버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메인 요리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배가 너무 불러 힘들고, 디저트가 나왔을 때는 제대로 즐길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노르딕 레스토랑에서는 30가지 요리를 먹고도 레스토랑을 나설 때 여전히 편안하게 느껴져요. 저는 계속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이 그들이 식재료를 발효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스웨덴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발효에 몰두했던 경험은 랭커스터의 요리 철학과 음식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뼈를 제거한 닭 날개는 브라인에 절인 뒤 보리새우와 지바현 주키니, 바질을 채워 넣고, 새우 껍질을 발효해 만든 농축 소스를 곁들인다.
일본에 온 뒤 랭커스터의 발효 세계는 한층 더 깊어졌다. 그는 누룩(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시간’은 그의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보이지 않는 식재료가 됐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쌀을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보리에 누룩균을 접종합니다. 일본에서는 쌀에 누룩균을 접종하고, 그것으로 미소나 사케 등을 만들죠. 이 기본적인 원리에서 아주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시오코지(소금 누룩)를 만들기도 하고, 어장이나 미소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메뉴에는 누룩 타르트와 누룩 아이스크림이 등장했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탐구가 이제 도쿄에서 온전히 뿌리내린 셈이다. 단순한 기술의 이동을 넘어, 하나의 요리 철학이 제자리를 찾아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장에 나오지 않는 최상급 식재료
랭커스터가 도쿄에서 거주하는 곳은 도요스 시장에서 불과 2km 떨어져 있다. 그는 매주 한 차례 시장을 찾아 식재료를 탐색한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요. 이곳은 계절성이 강한 식재료의 종류와 양이 놀라울 정도죠. 이번 주에 봤던 것이 2~3주 뒤면 사라지기도 하고요. 정말 대단합니다. 바로 그것이 저를 이렇게 설레게 하는 이유예요.” 그는 마치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식재료의 거대한 놀이터와도 같은 이곳에서 랭커스터는 싱가포르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해온 일본인 공급업체의 도움을 받아 식재료를 선별하고 메뉴에 반영한다. 이 공급업체는 단순히 식재료를 알아보고 선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최고급 식재료를 확보할 수 있는 특별한 통로까지 열어준다. 메뉴에 등장하는 흰 옥돔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다이는 시장에서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최상급 시로아마다이(Shiro Amadai)는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 공급업체가 도야마현 히미시의 어부를 알고 있는데,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 좋은 생선을 먼저 골라낼 수 있어요. 이 생선은 아예 시장에 나오지 않고 곧바로 저희에게 배송됩니다. 멜론도 마찬가지예요. 시장을 거치지 않고 농가에서 바로 레스토랑으로 옵니다.”
호텔 그룹의 자원과 지원을 바탕으로, 랭커스터는 다이닝 경험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운영했던 곳은 작은 독립 레스토랑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포시즌스 호텔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라면 제가 원하는 어떤 식재료든 구입해 메뉴에 올릴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꿈만 꿀 뿐 결코 실현할 수 없었던 요리를 이제는 만들 수 있게 됐어요.”
랭커스터와 일본 공급업체의 긴밀한 관계 덕분에 그는 시장에 나오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직송되는 수많은 최상급 식재료를 확보할 수 있다. ‘텐시노오토 멜론, 샴페인, 민트’ 디저트에 사용하는 멜론 역시 농가에서 직접 공급받는다.
두 번째 기회는 없다
그에게 음식이 지니는 의미는 분명 과거와 달라졌다. “미식이라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수많은 층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든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그렇게 되죠. 우리와 같은 수준에서 요리하는 많은 셰프들에게 이것은 평생에 걸친 헌신과도 같습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일이죠.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주방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오랜 세월을 쏟아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자리에 서게 되면 그동안 바친 모든 것이 가치 있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랭커스터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은 한편으로는 약혼녀에게서, 또 한편으로는 확고한 의지를 지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 그는 말했다. “제가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두 번째 기회는 없으니까요.” 그는 칼버트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두 사람 사이의 닮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전임 총괄 셰프 다니엘 칼버트가 후임으로 스티븐 랭커스터를 직접 지목한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의 요리 철학과 접근 방식에서 닮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요리는 클래식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현대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제 스타일 역시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훨씬 가볍죠. 그는 그런 독특함을 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이곳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똑같이 헌신할 수 있는 후임을 원했을 겁니다. 그저 얼굴만 비추고 소스 몇 번 맛본 뒤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요. 그가 원한 것은 이곳에서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모든 일을 하는 사람, 바로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랭커스터는 칼버트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조언을 얻고 있다.
SÉZANNE의 미래에 대한 랭커스터의 바람은 단순하지만 확고하다. “이곳은 이미 정상에 올라본 레스토랑입니다. 저는 이곳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요. 저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분주하고 늘 만석인 레스토랑, 그리고 행복한 손님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게 전부예요. 물론 저에게도 원대한 목표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하고 만족한 손님들이죠.”
잉글랜드 남서부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해 스웨덴의 어두운 겨울을 지나고, 싱가포르의 독립 레스토랑을 거쳐 도쿄 포시즌스 호텔에 자리 잡기까지. 스티븐 랭커스터가 걸어온 길에서는 그 모든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를 지닌다.
미쉐린이 SÉZANNE의 세 개의 별을 거둬들이면서 랭커스터에게는 깨끗한 백지 한 장이 주어졌다. 이제 그는 그 위에 한 획 한 획, 자신만의 도쿄 전설을 그려나가고 있다. 머지않아 이 레스토랑에도 다시 별들이 반짝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