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홍두의와 박범석의 파인앤코 — 이제는 새로움보다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2020년 문을 연 파인앤코는 새로운 칵테일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룩과 빙수, 불고기처럼 익숙한 한국의 음식과 일상의 경험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칵테일에 풀어내며 파인앤코만의 색을 만들어왔다. 6년간의 실험을 거친 지금, 두 사람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새로움 자체보다 손님이 기분 좋게 머물다 돌아가는 ‘즐거운 경험’이다.
1990년대 서울 내 주택에 들어서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파인앤코 입구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의 파인앤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주택에서 볼 법한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1980~90년대 서울의 주택가를 떠올리게 하는 낡은 대문과 문패, 오락기까지 놓인 입구는 그 시대 누군가의 집을 찾아온 듯 꾸며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어두운 색조의 벽과 금속 소재, 길게 뻗은 바가 만드는 내부는 입구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시간과 손님의 분위기에 따라 조명과 음악도 달라진다. 이른 시간에는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음악과 조명 역시 조금씩 속도를 높인다.
그 날의 시간대와 무드에 따라 달라지는 조명과 공간
서로의 빈틈을 채운 두 바텐더
홍두의는 군 복무 당시 영화감독을 꿈꾸던 후임을 보며 무엇인가를 위해 몰두하고 도전하는 사람의 태도에 자극을 받았는데, 때마침 한 영화에서 삶을 포기하려던 주인공이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바텐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플레어 바와 클럽, 클래식 바를 두루 경험한 홍두의 오너 바텐더
제대 후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2009년 병과 셰이커를 던지고 돌리는 플레어 바텐딩을 선보이는 바에서 주니어 바텐더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바 업계에서 한 시대를 이루고 있던 플레어 바텐딩의 끝자락이었다. 경쟁심이 강했던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대회에도 출전했다. 이후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이태원 B One으로 자리를 옮겼고, District 등을 거치며 클럽과 라운지, 플레어 바 등 서로 다른 형태의 바를 경험했다. 2014년에는 르챔버의 오프닝 멤버로 합류해 바 매니저까지 맡았고, World Class Korea에서는 2015년 준우승, 2017년 우승을 기록했다.
박범석은 처음부터 바텐더가 될 생각이 없었다. 번역가를 꿈꾸며 영문학을 공부하던 그는 형과 함께 창원에서 가스트로바를 운영하면서 이 세계에 들어왔다. 이후 바텐딩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2016년 호주로 향했다. 멜버른에서는 일을 구하기 위해 여러 바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Boilermaker House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박범석은 당시를 바텐더라는 직업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하게 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는다.
자신만의 방식, 그의 영어 이름 Pat 스타일을 추구하는 박범석 오너 바텐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7년 르챔버에 시니어 바텐더로 합류했다. 레시피를 만들고 팀을 운영하면서 당시 매니저였던 홍두의와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서로 잘하는 것은 달랐다. 홍두의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면 박범석은 레시피나 그림을 비롯한 다른 방식으로 이를 구체화했다. 홍두의는 자신이 보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해준 사람이 박범석이었다고 말한다.
바텐딩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두 사람의 성격은 다르다. 홍두의는 좋은 바텐더를 ‘카멜레온’에 비유한다. 바텐딩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으며, 손님과 공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교한 재패니즈 스타일의 바텐딩도 좋지만, 그것이 모든 공간의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조명과 플레이리스트가 그날의 무드에 따라 달라지는 파인앤코에서는 바텐딩의 템포 역시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 플레어 바와 클럽, 클래식 바를 두루 경험한 그의 생각이다.
반면 박범석은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가 표현하는 ‘Pat 스타일’이다.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보다는 아직 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데 더 끌린다.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변하려는 홍두의와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려는 박범석. 접근법은 다르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새로운 것을 보여 주는 바
두 사람이 독립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무렵이다. 당시 서울의 바들이 클래식 칵테일과 위스키를 중심으로 비슷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해외 게스트 바텐딩을 다니며 증류기나 원심분리기 등 새로운 장비와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바들을 접했던 두 사람은 당시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방식의 바를 만들기로 했다.
“아예 다른 바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름을 정하는 데에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Pine’을 정하고, 언젠가 하나의 바를 넘어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 Co’를 붙였다. Pine에는 한국에서 익숙한 소나무와 바텐더의 환대를 상징하는 파인애플이라는 두 가지 의미도 담았다. 바 카운터의 형태 역시 ‘파인앤코’의 첫 글자인 한글 ‘ㅍ’에서 가져왔다.
파인앤코의 첫 글자인 'ㅍ’에서 가져온 바 배치
서울에서 찾은 칵테일
초기 파인앤코의 실험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에서 두드러졌다. 한국 재료를 칵테일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주변에 흔히 있는 재료를 보며 ‘왜 칵테일에는 이런 것을 쓰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누룩과 오미자, 김밥, 불고기, 빙수처럼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익숙한 맛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메뉴 안으로 들어왔다.
위스키에 누룩과 현미차, 코지, 볶은 보리를 조합한 하이볼 ‘누룩’(좌), 오미자 풍미의 화채를 연상시키는 펀치 칵테일 '오미자'(우)
메뉴를 개발할 때 큰 주제는 늘 ‘Born from wild ideas and little moments in life’. 특별한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아이디어를 칵테일로 발전시킨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빙수(Bingsu)'는 한국의 빙수를 진토닉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코리앤더 진과 토닉워터에 만다린 소르베와 라임을 더해 스푼으로 떠먹는 형태의 칵테일이다. '누룩(Nuruk)'은 위스키의 원료인 곡물에서 생각을 확장했다. 위스키에 누룩과 현미차, 코지, 볶은 보리를 조합한 하이볼이다. '불고기(Bulgogi)'는 타코와 팔로마의 조합에서 다시 불고기를 연결했다. 테킬라에 칼라만시, 자몽, 콜라 시럽과 토닉워터를 사용한다.
떠먹는 칵테일 '빙수'(좌), 데킬라를 베이스의 팔로마에 불고기 풍미를 더한 '불고기'(우)
익숙한 한국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음식에 얽힌 맛과 기억을 클래식 칵테일의 구조 안에 넣는 방식이다.
메뉴를 보여주는 방법 역시 파인앤코답다. 종이 메뉴와 함께 레트로 게임 형식의 디지털 메뉴를 운영한다. 바 내부의 어두운 환경에서도 메뉴를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면서, 메뉴를 고르는 과정 자체에 놀이의 요소를 더하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다.
레트로 게임 형식의 디지털 메뉴
새로운 것보다 중요한 것
파인앤코가 문을 연 지 6년. 지금 홍두의가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처음과 반대편에 있다.
“처음에는 ‘너 이런 거 처음 봤지?’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를 많이 생각해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홍두의 오너 바텐더
그 사이 한국의 바 씬에서도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빠르게 늘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일수록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손님이 기분 좋게 들어와 웃고, 기분 좋게 나가는 것. 지금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바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즐거움을 주는 바죠.”
박범석 역시 매달 팀 미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손님은 칵테일 한 잔만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파인앤코에서 보내는 전체 경험에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주문, 음악, 조명, 바텐더의 표정과 작은 서비스까지 어느 한 부분이 어긋나면 경험 전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태도 역시 화려한 테크닉보다 ‘미소’다.
화려한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미소'임을 강조하는 박범석 오너 바텐더
이러한 생각은 두 사람이 팀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이어졌다. 홍두의는 과거처럼 선배의 방식을 후배가 그대로 배우는 도제식 구조만으로는 앞으로의 바 업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신 함께 성장하고 함께 채워나갈 수 있는 새로운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지금 파인앤코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놀이터’다.
누군가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면 시도할 수 있고, 메뉴를 바꾸고 싶다면 직접 바꿀 수 있는 곳. 처음부터 메뉴 시스템 역시 누구나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플랫폼에 가깝게 만들었다. 팀원이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먼저 제안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 실험은 이제 파인앤코 밖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크리켓 서울과 팀 카이트를 통해 브랜드 행사와 바 컨설팅, 칵테일 프로그램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에는 여전히 파인앤코가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바. 여러 기술과 재료를 실험한 끝에 두 사람이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의외로 가장 기본적인 바의 역할이다. 좋은 술을 만들고, 사람을 반갑게 맞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