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레스토랑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 박민혁 셰프의 관심은 이제 ‘좋은 요리, 행복한 삶’으로 향한다. 요리사의 경계를 스스로 넓혀온 그의 무대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된다.
셰프의 커리어에는 오랫동안 비교적 명확한 궤도가 있었다. 치열한 주방에서 배우고, 더 높은 수준의 레스토랑으로 옮겨 경험을 쌓은 뒤,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간에서 요리를 완성하는 것. 미쉐린 가이드 등의 평가는 그 과정에서 성취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박민혁 셰프는 호텔과 해외 주방, 파인다이닝을 거쳐 여러 외식 브랜드의 론칭과 총괄 운영을 맡았으며, 동시에 대학에서는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형적인 길’을 충분히 걸을 경력을 갖췄지만 어느 순간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금 그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작은 와인바와 유튜브 촬영장, 책상 그리고 자신이 만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다. 최근에는 음식보다 오히려 집과 주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박민혁 셰프의 커리어가 흥미로운 것은 셰프라는 직업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정체성을 유지한 채 그 직업이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을 계속 넓혀왔기 때문이다.
W서울에서 시작해 두바이 버즈 알 아랍, 랩24 등 여러 레스토랑과 외식 브랜드의 출범에 참여했고, 사운즈 한남에서는 F&B 업장 5곳을 아우르는 총괄 셰프를 맡았다.
쉴새없이 달려온 셰프의 삶
박민혁 셰프의 일대기는 책 한 권처럼 촘촘하다. 그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 피자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손질된 채 주방에 들어오는 식재료를 보며 음식이 만들어지는 이전 과정에 호기심을 품었다. 직업교육기관에서 조리를 배우다 김지응 교수의 소개로 조우현 조리명장이 운영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한그린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처음 전문 주방을 경험했다. 영업이 끝난 뒤에도 연습을 이어가는 선배들과 음식을 손님에게 내는 일 자체를 즐기던 셰프의 모습을 보며 요리가 자신에게도 직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W서울의 주방을 거쳐 두바이 버즈 알 아랍에서 일했고, 이곳에서 에드워드 권 셰프를 만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여러 레스토랑과 외식 브랜드의 출범에 참여했고, 사운즈 한남에서는 F&B 업장 5곳을 아우르는 총괄 셰프를 맡으며 조직과 사람, 공간과 운영을 이해하는 쪽으로 영역이 확장됐다. 이와 함께 약 10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외식업을 경험했다.
하지만 자연스레, 그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20대의 박민혁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더 좋은 레스토랑에 가야 했고, 더 오래 일하고 더 어려운 요리를 해야 훌륭한 셰프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무언가 더 높은 목표를 위해 하루 15시간에서 18시간씩 일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날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만, 문득 남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제 속도로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지 묻게 되더라고요.” 목표대로 되지 않은 일을 실패로 규정하는 일도 줄었다. “저는 제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실패가 없었던 게 아니라 실패를 과정으로 생각하게 된 것에 더 가깝습니다.”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 ‘공격수셰프’는 4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다.
레스토랑의 홀을 넘어, 미디어 플랫폼에서 요리를 하는 셰프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 ‘공격수셰프’는 이후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전문 주방에서 익힌 조리 원리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고, 익숙한 식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며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다. 2026년 현재 채널은 약 40만 명의 구독자와 1억 회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한다. 『공격수셰프의 킥』에서는 전문적인 조리의 아이디어를 가정의 레시피로 전하고, 금융 플랫폼 토스와 함께 제작한 『미식경제학』에서는 음식에서 한 걸음 물러나 소비와 취향, 공간과 산업을 바라본다. 최근 『잇 슬로우, 에이지 슬로우』에서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박민혁 셰프에게는 모두 요리에서 출발한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박민혁 셰프.
이제 셰프보다 유튜버냐는 질문에 답은 간단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셰프라고 생각합니다.” 대표, 작가, 크리에이터라는 이름도 모두 맞지만 그는 셰프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하루 대부분을 레스토랑 주방에서 보냈다면 지금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와인바 KICK에서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공부하는 동시에 책을 쓰고 영상을 제작하며 브랜드와 공간을 고민한다. 일의 종류는 훨씬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는 셰프라는 걸 결과로 증명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나는 어떤 셰프이고 싶은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더 가까워요.” 각각의 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요리와 주방이라는 한 장소에서 다시 만난다.
와인바 Kick의 대표 메뉴들. 참기름 파우더, 초고추장 등 한국적인 요소와 양식 조리 기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와인과 함께 할 때 더욱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이를 위해 스스로의 태도를 엄격하게 다잡는다. 재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기본적인 조리를 정확하게 하며, 자신이 만든 음식이 손님에게 도착하는 순간까지 책임지는 것.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주방에서 동료를 존중하는 것도 같은 범주다. “시대가 바뀌면서 셰프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졌지만 결국 요리 앞에서는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콘텐츠와 브랜드, 사업은 셰프의 활동 범위를 넓혀주지만 그 기반에 실제 요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오래 갈 수 없어요.” 박민혁 셰프의 여러 활동을 하나로 묶는 것도, 결국 한 번도 주방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거의 중심, 주방
요즘 그의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관심사는 의외로 ‘주거’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집의 중심에 있는 주방이다. 파인다이닝은 셰프의 기술과 생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형식이지만 그곳에서 식사할 수 있는 사람과 횟수는 제한적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집에서 매일 식사를 한다. 특히 그는 주방을 단순히 조리하기 편하도록 설계된 기능적인 장소로 보지 않는다. 가족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한 집의 식습관이 형성되는 공간으로 본다. 이제 셰프는 사람들의 식탁을 넘어 ‘식문화가 만들어지는 환경’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AUCHOIX HOUSE’의 내부. 박 셰프는 이곳이 누군가의 가정집 부엌 같은 느낌이며, 동시에 자신의 아지트라고 소개한다.
‘AUCHOIX HOUSE’에서 요리 중인 박민혁 셰프.
그 그림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 ‘AUCHOIX HOUSE’다. 현재 그는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오슈와에서 음식과 조리도구, 생활용품을 소개하고, 궁극적으로는 ‘집’으로 그 대상을 확장해가는 것이 박 셰프의 비전이다. 음식과 주방, 가전과 가구, 식기, 조명과 음악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연결된 공간. 올해 밀라노 디자인 페어를 찾은 것도 이 관심의 연장선이었다. “요리를 오래 할수록 오히려 음식 바깥의 것들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주방에서 요리하며, 무엇을 매일 손에 쥐고 오래 사용하는지, 그리고 또한 제 취향은 무엇인지 탐구하며 얻은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유튜브 촬영 중인 박민혁 셰프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삶을 나누다
유튜브 채널 ‘공격수셰프’도 비슷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박민혁 셰프의 레시피와 기술, 생각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동료 셰프와 요리사의 삶을 듣는 시간이 늘었다. 그는 애초 유튜브를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의 긴 커리어를 짧은 영상 몇 분으로 소비하기보다 당시의 생각과 고민까지 남겨두는 기록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10년 뒤 그분이 자신의 영상을 다시 봤을 때 ‘내가 저때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꽤 열심히 살았구나’ 하고 힘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시청자가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어갈 작은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변화한 것은 박 셰프 자신이다. “예전에는 제가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면 요즘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점점 좋아져요.”
많은 후배 셰프를 만나며 ‘좋은 셰프’에 대한 그의 기준도 달라졌다. 10년 전에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는 지금도 변함없지만, 이제 그가 눈여겨보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가’다. 젊은 셰프들이 유튜브와 SNS, 책이나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어떤 표현 방식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삶이라는 게 사실 대단한 순간보다 별일 없는 날들이 훨씬 많이 반복되잖아요.” 빠른 인정과 즉각적인 보상이 사라진 뒤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유명해지는 속도보다 자기 일을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는지가 그가 지금 생각하는 좋은 셰프의 조건이다.
와인바 Kick의 요리.
더욱 일상과 가깝게
앞으로 셰프의 무대는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까? 박민혁 셰프의 대답은 ‘일상’을 향한다. 매일의 식사와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삶을 함께 큐레이팅하는 역할. 건강함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가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식사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더 좋은 재료, 더 나은 요리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습관이 된다면, 사람들의 삶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어요.”
어느덧 오픈 6년차에 접어든 KICK은 조만간 리뉴얼을 앞두고 있다. 방향은 오히려 더욱 집 같은 공간이다. 상업적인 장치를 최대한 지우고, 자신의 집에 손님을 불러 요리하고 와인을 나누듯 주방과 가구, 조명, 식기와 음악까지 가정의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울 생각이다. 처음 요리를 시작한 스물한 살의 박민혁에게 가장 선명했던 꿈은 ‘언젠가 내 작은 가게 하나를 갖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도 욕심도 커졌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이미 그 꿈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7평짜리 와인바가 충분히 행복한 이유다.
한국의 주방 문화를 조금 바꾸는 데 역할을 하는 것이, 지금 박민혁 셰프의 꿈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박민혁이 그래도 한국의 주방 문화를 조금 바꾸는 데 역할을 했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큰 성공이나 화려한 결과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며, 이미 얻은 경험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삶에 더 마음이 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요리를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돌려주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건강한 한 끼를 직접 만들어보고, 요리를 통해 작은 자신감을 얻고,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는 시간이 조금 더 좋아지는 변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결국 사람을 먹이는 일이 셰프의 역할이니까요.” 성공했다는 이야기보다 자신이 하는 일 덕분에 누군가의 삶이 조금 좋아졌다는 이야기. 박민혁 세프는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며,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음식의 기쁨에 명료하게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