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클래식의 이름으로, 프레드므아 윤화영 셰프

윤화영 셰프는 클래식 프렌치의 경험과, 그를 믿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베이커리 셰프로서 새로운 막을 열어가고 있다.

한국 파인다이닝의 역사 속, 윤화영 셰프의 여정과 지금을 수식하는 말은 ‘성실함’이다.

메르씨엘을 거쳐 프레드므아까지, 그 모든 다이닝 업계의 시간 속에서 윤화영 셰프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단어는 '성실함'일 것이다. 1만 3천 원짜리 주문서를 바라보며 묵묵히 빵을 썰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윤 셰프의 삶을 이끌어 온 원동력의 핵심을 찾았다.

격류 같은 시대 속, 셰프가 되기까지

윤화영 셰프는 업계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유명인이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서 활약하던 시기에 이미 싸이월드를 비롯한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한국에서 진지하게 회자되었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한국인들이 일하고 좋은 경력을 쌓는 걸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고, 현대적 의미의 서양식 미식의 ‘본토’인 파리에서 그가 겪는 일상은 큰 화제였다.

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천하제빵> 방영 이후다. 논현동에 있는 그의 빵집은 ‘파리 어느 골목에서 마주치는 현지인 빵집’과는 사뭇 다른 기능적인 매장, 작업장처럼 보인다. 2026년 청담동에서 현재 위치인 논현동으로 이전하며 매장을 넓힌 결과다.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긴 후 찬찬히 자리를 잡고 있는 프레드므아 매장.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필요하니 서빙도 하고 주방 보조도 했죠. 군대에서 취사 지원을 하다 보니 또 음식에 손을 대게 되고. 제대하고 나서는 사진은 완전히 내려놓은 상태였어요. 디지털카메라가 막 나오던 시절이었는데, 이제 기술자들이 필요 없겠구나 싶어 중단했어요."

그는 1995년 불문학과에 입학했다가 그만뒀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프랑스로 떠났는데, 외삼촌이 주불 한국대사관에서 근무 중이어서 조언을 해줬다. 파리의 어학원에 두어 달 다니다가 우연한 계기로 미술사를 포기하게 됐다.

프랑스 유학 중 우연찮게 접한 알랭 뒤카스의 요리가 학생 윤화영을 셰프의 길로 이끌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어학원에서 친해진 일본 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가기로 했던 본인의 지인이 사정이 생겨 참석할 수가 없어 자리가 하나 생겼다고 같이 식당에 가자는 거예요.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갔는데, 알랑 뒤카스(Alain Ducasse)라는 식당이었어요. 당시 플라자 아테네로 이전하기 며칠 전이었을 거예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주눅이 들 만큼 화려했는데, 거기서 일하는 분들이 보여주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너무 놀라웠어요. 나오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하나 있었던 거예요. 하긴 미슐랑 3 스타였으니…”

윤화영 셰프의 새로운 일터이자 작업실, 새로운 계획의 장이 될 프레드므아의 매장 전경

그날 나온 음식 중에 아스파라거스가 있었다. 한국에서 냉동으로만 먹어왔던 것과는 달랐다. 식재료도 달랐지만 재료를 조합해 접시에 올리는 발상 자체가 낯선 충격이었다. 25살이었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설득했고, 이태리에서 패션을 공부한 오너가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한식과 양식을 접목한 식당에서 일하며 한식도 익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한 음식이었다고 윤화영 셰프는 회고하지만, 이렇게 요리에 다시 발을 들인 뒤 프랑스로 돌아가서 코르동 블루와 ESCF에서 요리를 배우고 졸업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경력을 쌓았다.

프랑스 정통 빵부터, 한국인에게 익숙한 메뉴들까지 프레드므아의 빵 라인업에는 오랜 기간의 고민과 기획과 고민이 담겨있다. 

돌이키면 당시의 노동 강도가 높았다고 볼 수 있지만, 윤 셰프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도 주 6일 일하던 시절이었고, 다들 그렇게 일하며 사는 것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기였다.  “오히려 그렇게 보낸 시간 덕분에 제가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매트릭스처럼 다운로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시간이 답인 것들이 있어요. 아주 호되게 일했으니까 더 빨리 익힐 수 있었을 거예요.”

그는 지금은 근무 시간이 줄고, 레시피는 유튜브에 넘쳐나지만, 이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고 덧붙인다. “유튜브 보고 음식 만든 사람의 음식에서는 유튜브 음식 맛이 나요. 직접 만들어서 몇 년을 반복한 사람의 그 묵은 맛과는 차이가 있어요. 레시피를 받았다고 다 배운 게 아닌데, 손에 레시피가 쥐어지는 순간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픈이 빨라지는 거고.”

오랜 기간 업계에 몸 담아온 만큼, 윤화영 셰프가 가진 다이닝에 관한 인사이트는 날카로우면서도 깊다.

선배, 스승, 그리고 어른의 시선

윤화영 셰프는 요리에 있어 ‘보수’다. 언젠가 그는 “6년 차 요리사가 2,30만 원짜리 코스 음식을 내는 것이 온당한가”하고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다.

“고객들이 식재료 원가 계산을 하잖아요. 하지만 음식에는 원재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직원들 급여, 전기/물/가스 요금, 인테리어 비용, 임차료, 발렛 주차비용, 은행 이자,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은 그 셰프가  투자한 시간이에요. 시간을 살 수는 없잖아요. 30년 요리한 사람이 만든 음식과 6년 차가 만든 음식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미용실도 그렇잖아요. 원장님이 깎을 때와 디자이너가 깎을 때 가격이 다른 것처럼.”

장르에 상관 없이, 요리를 향하는 윤화영 셰프의 시선과 그 주안점은 ‘근본’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다. 

한국 파인다이닝 씬에 미쉐린이 들어온 이후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긍정적인 면도 있어요. 대중에게 공신력 있게 ‘이 집은 잘하는 집’이라고 알려주는 건 의미가 있죠. 근데 문제는, 미쉐린이 원하는 방향이 너무 명확하다 보니 파인다이닝을 하는 셰프들이 다 한식으로 수렴하고 있어요. 미쉐린이 처음부터 밝힌 대로 지역의 음식 문화가 느껴져야 한다 보니까 말이죠. 좋게 말하면 지역 특색을 살리는 거지만 결과적으로 예전에 말하던 소위 '퓨전음식'이 나오고 있어요.”

“이 말이 인터뷰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한식이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음식이냐는 거예요. 한식 비전공 셰프가 1~2년 하면 한식이 나와요? 그럼 30년 한식 한 사람은 바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한식은 한식대로 있어야 되고, 양식은 양식대로 있어야죠.”

프레드므아의 대표 메뉴는 샌드위치들이다. 각기 다르게 구워낸 빵 사이 절묘하게 층위를 이루는 ‘파인 다이닝’식 재료 문법이 돋보인다. 

윤 셰프는, 이런 환경 속에도 프렌치다운 프렌치 레스토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장명식 셰프님의 라미띠에가 그런 집이라고 생각해요. 캐비어도 트러플도 없이 감동적인 음식을 하고 있어요. 왜 모두들 트러플과 캐비어를 쓰는 것일까요? 프랑스에서 원스타 정도에서는 캐비어를 잘 쓰지 않아요. 한국은 원스타도 아닌 데서도 다 나와요. 그게 음식에 맞게 쓰이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어요. (비싸니까 많이 줄 수도 없어서) 그 양으로는 손님이 드셔도 감흥이 없는 양인데, 그걸 올림으로써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장치처럼 쓰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파인다이닝이 카테고리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이야기도 했다. 예전에는 프렌치 안에 비스트로가 있고 브라스리가 있고 그랑 레스토랑이 있었다. 일식 안에 덮밥집과 라멘집, 가이세키가 있듯이. 가격대, 그리고 셰프의 업력에 따른 카테고리였다. 기초부터 배워서 올라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식-일식-중식-양식-파인다이닝의 분류처럼 장르가 됐다. 누군가의 주방일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파인다이닝이 된다. 

“트렌드라는 게 생겼어요. 노르딕이 유행하고, 분자 요리가 유행하고, 우드파이어가 유행하고. 패션처럼 시즌마다 새로운 게 나오는 거예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힙한 장소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된 거죠. 저는 그 유행에 민감한 장르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요.”

유행하는 장르가 아닌 클래식을 따르고, 또 지켜가고 싶다고 말하는 윤화영 셰프

언제나 당신의 곁에, 프레드므아

그는 부산에서 메르씨엘을 열고 요리했다. 놀랍게도 미쉐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상당수 직원들이 서울로 떠났다. 미쉐린 이력서를 원하는 젊은 요리사들이었다. 어려움을 거치며 그는 한국과 부산이란 시장에서 단련되었다. 여러 해 운영한 메르씨엘의 문을 닫은 뒤, 회원제 멤버스 클럽인 양양 카펠라 호텔 컨설팅을 2년 반동안 맡아 운영하다가 깨달았다.

“고가의 회원제 프라이빗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만들며 고객이 그리웠어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양식 영역에서 제일 대중적인 걸 하면 샌드위치인데, 마음에 드는 빵이 없어서 직접 만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빵집을 열었어요.”

부드러운 포카치아에 모르타델라 햄, 토마토, 바질이 들어가 산뜻한 풍미를 자아내는 ‘이탈리안 샌드위치’. 여기에 리코타 치즈의 맛과 텍스쳐가 더해져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업계에서는 이 소식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왜 갑자기 빵이야?’. 이런 의문이었다.

“프랑스 식당을 하고 싶으면 그 음식에 맞는 빵이 필요해요. 서울에 양식 잘하는 셰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원하는 빵을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와 그분들을 위해서 연 것이죠.”

그는 일찍이 파리에서 에릭 카이제르(Eric Kayser)의 업장에서 스타주했다. 파리 포시즌스 호텔에서 근무할 때 빵을 배우고 싶어 총괄이었던 에릭 브리파(Eric Briffard) 셰프에게 부탁을 하니 본인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프렌치 샌드위치’는 루꼴라와 양파, 홀그레인 머스터드, 그리고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를 블렌딩해서 만든 홈메이드 떼린(terrine)이 들어갔다. 한국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정통 프렌치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메뉴

빵을 배우면서 요리와 다르다고 느끼셨습니까?

“전혀 다른 영역이에요. 요리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빵은 빵이 저를 컨트롤해요. 제가 원한다고 발효가 되는 게 아니고, 발효가 됐다고 냉동실에 넣어서 멈출 수도 없어요. 효모가 하는 거니까. 생물이잖아요. 그래서 제 삶을 빵에 맞춰야 해요. 이건 어려운 영역이구나 싶었어요.”

파리에 가면 꼭 찾는 빵집이 있다.  뒤빵에데지데(Du pain et des idées). 쌍마르땅 운하(canal Saint Martin) 옆에 있다. 늦은 나이에 빵을 시작한 주인이 만든다. 윤셰프의 친구이자 알랑 뒤카스의 총주방장이었던 크리스토프 쌍따뉴(Christophe Saintagne) 셰프가 아침저녁으로 직접 빵을 공수해 가는 집으로 유명했다.  배달을 안 해줬기 때문이다. 여러 3스타 주방이 납품을 요청했지만, 주인은 거절했다. 찾아오면 팔고, 아니면 말고. 

“저도 그분한테 가서 스타주하고 싶다고 했죠. 미안하대요. 자리가 없다고요. 그래서 에릭 카이저를 소개받아서 스타주를 하게 됐어요. 지금도 파리 가면 그 집 근처에 호텔을 잡아서 매일 아침을 사 먹어요.”

프레드므아의 토마토 수프는 샌드위치는 물론, 다른 어느 빵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사이드 역할을 한다. 적절한 농도와 산미의 밸런스가 일품. 

뒤빵에데지데의 ‘그’ 빵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지만, 밀가루가 달라 완전히 같은 맛은 안 나왔다. 국내산 밀로 유사하게는 만들 수 있다. 프랑스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이 낮아 글루텐이 약하다. 탱탱하지 않지만, 그 특유의 풍미와 질감이 있다.

에릭 카이저르에서 빵을 만들 때의 일이다.

“에어컨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바게트 800개를 셋이서 만드는데, 빠르게 안 하면 과발효되어 납품을 못하게 돼요. 바게트는 손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또 빠르게 하기 어려워요. 에릭 카이제르의 프랑소와 미테랑 도서관 지점에서 배운 기술이에요.”

그 빵이 지금 프레드므아에서 만들어지고 팔린다.

프레드므아의 시그니처 메뉴 ‘루벤 샌드위치’. 통밀 깜빠뉴 사이 홈메이드 샤퀴테리 콘드 비프와 직접 염장하고 발효한 슈쿠르트(사우어 크라우트)의 식감과 맛, 블루 치즈와 에멘탈 치즈의 적절한 혼용이 입 안 가득 여운을 남기는 맛이다.

파리나 도쿄랑 비교해서 한국 빵이 비싸다는 말이 많습니다.

“프랑스는 나라에서 바게트 값을 통제해요. 생산 원가 자체도 달라요. 프랑스에서는 좋은 오븐을 연 1%대 이자 조건으로 사서 평생 갚아가요. 한국은 선금, 중도금을 일시에 내야 하고, 은행 이자가 7% 이상이에요. 장비값부터 달라요. 일학습 병행제로 근무하는 견승생도 있고, 인건비도 달라요. (프랑스 빵집과 달리 한국은) 인테리어도 해야 하고요. 쇼핑백도 제대로 만들면 2~3천 원 나오고, 발렛파킹 할인도 해줘야 하고. 그게 다 빵 값에 녹아들어 가는 거예요.”

클래식의 힘으로 영원히 나아가는 방법

다른 얘기를 해보지요. 한 인터뷰에서 소리 지르고 호통치는 셰프들에 대해 ‘내공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하, 저도 소리 질러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근데 그렇게 안 해도 따라오게 할 수 있더라고요. 결과도 더 좋고. 직원들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오래 일하면 음식의 질이 올라가요. 그렇게 선순환이 돼야지 원하는 레벨까지 갈 수 있어요.”

깔끔하고 정갈한 베이지 톤 마감에, 월넛 우드 가구들이 어우러진 프레드므아의 인테리어.

한국 파인다이닝에 노장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50대 후반까지 주방 라인에 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두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새 걸 되게 좋아하잖아요. 새로운 사람, 비주얼도 좋고 이런 셰프를 처음에 더 밀어주지. 주름살 있는 사람에게는 인기가 덜 가는 것 같고(웃음). 또 하나는, 한국 요리사들의 가장 큰 목표가 자영업이에요. 조직 안에서 크는 것보다 자기 걸 하고 싶어 해요. 어느 정도 성장시키면 퇴사하는 시나리오가 무한 반복이 되지요. 그러면 어느 순간 허리를 받쳐줄 사람이 없어지고, 막내들과 헤드 셰프만 존재하는 주방 구조가 돼요. 그러다 체력적 한계에 봉착하죠.”

그에게 나이 들면서 스스로 달라진 게 있냐고 물었더니 잠깐 웃었다.

“눈이 안 보여요. 오래 보고 있으면 초점이 안 맞아. 할아버지 셰프들이 돋보기 끼고 일하는 거 보면서 '왜 저러지' 싶었는데. 이제 이해가 돼요.”

올해 7월 새롭게 다이닝 메뉴 '오트르멍'의 서비스를 준비 중인 프레드므아의 주방

앞으로 어떤 식당을 하고 싶으십니까?

“예순이 되어서라도 파인다이닝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근데 지금 같은 형태는 아니에요. 한식이 섞이지 않은 ‘잘 만든’ 프렌치를 하고 싶어요. 아메리칸-프렌치가 아닌, 프렌치-프렌치를요. 한국에서는 이 둘의 차이를 잘 모르시지만, 미국 현지에서 조차도 이 둘을 구분하고, 도쿄나 홍콩에서는 완전히 분리하고 있거든요. 한입거리로 수많은 접시가 나가지 않아 SNS에 올릴 수 있는 수많은 사진이 있지는 않겠지만, 내방한 고객들의 인생의, 일상 삶 속의 한 무대가 될 수 있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에요. 요새 오픈하면 30억, 40억 들어가잖아요. 그렇게 투자하면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서 고객에게 막 퍼드릴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식당은 말 그대로 호스피탈리티고, 고객과 서로 늙어가는 과정이잖아요. 돈벌이에 올인하는 순간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의 관점에서 전통(traditional)은 시간의 흐름 속에 이어져 내려온 방식이고, 정통(authentic)은 원래의 것을 말한다. 곧 전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만, 정통은 고문서에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정통이 바뀌고 진화하면 전통이 되는데, 그런 전통과 정통을 아우르는, 누구나 아는 ‘클래식’을 ‘제대로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월광 소나타처럼. 누구나 아는 곡인데, 진짜 잘 치는 사람 앞에 앉았을 때 오는 전율이 있잖아요. 팝그룹 신곡은 ‘좋아’ 하고 끝나지만, 그 소나타는 닭살이 돋는 느낌이 있잖아요. 저는 거기서 흥분하는 거예요. 누구나 아는 걸 맛있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워요. 김치찌개 맛있게 하기 진짜 어렵잖아요. 하지만 잘 만든 김치찌개를 만났을 때의 감동… 그게 클래식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것들은 드시는 분의 미식적, 인문학적,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클래식의 멋과 미덕을 아는 윤화영 셰프는, 그 힘을 믿고 오늘도 나아가는 중이다. 

그는 이 공간에서 7월부터 디너를 시작한다고 한다. 카운터 너머 보이는 주방이 상당히 큰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프레드므아의 바삭한 바게트 크러스트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뛰어난 품질을 추구하는 윤화영 셰프의 다음 발걸음이 궁금해진다.

단락

Writer 박찬일(Chanil Park)
Editor 이정윤(Julia Lee), 손준우(Junu Son)
Photographer 정준택(Joon-taek Jeong)_ Fun & Benefi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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