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현재에는 가장 엄격하되, 변화와 도전에는 가장 수용적인 사람이 되자고 말하는 김성국 소믈리에의 이야기.
김성국 소믈리에가 처음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곳은, 바(Bar)였다. “데시벨 낮은 전쟁터”라는 그의 표현처럼 위스키와 칵테일을 서브하며 긴장감 가득한 하루를 버티던 초년 시절, 그 전쟁터 한가운데서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듯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웃으며 손님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샴페인을 아낌없이 오픈하며, 자신이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꾸던 선배 소믈리에였다. 선배를 보며, 그도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을 만드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아, 내가 되고 싶은 건 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표현하는 사람이구나.”
조선 팰리스 총괄 소믈리에인 김성국 소믈리에
현장 감각으로 성장하다
초년 시절 그의 성장을 가장 빠르게 이끈 것은 지식이나 서비스 매뉴얼이 아니라 ‘현장 감각과 약간의 망상, 그리고 자아도취’였다고 회상한다. 수십 장의 린넨을 접으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린넨을 멋지게 접는 사람”이라 여기고, 테이블을 정리할 때는 “테이블 세팅 대회가 있다면 우승자”를 유쾌하게 상상했다. 밤새 글라스를 닦을 때는 자신이 닦은 잔이 더 특별해서 VIP에게 갈 것이라 믿으며 피로를 견뎠다. 이후 약 1,000여 종의 와인을 보유한 대형 셀러를 관리하게 되었을 때도 태도는 같았다. 모든 병의 위치, 한 병이라도 빠졌을 때의 입출고 흐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집중했고, 역사와 이론은 언젠가 책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업장에서 경력을 쌓으며 그가 깨달은 소믈리에의 덕목은, ‘정답을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손님의 언어로 이야기해주는 능력’이라는 점이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사실은 소믈리에 본인이 불안하다는 신호일 때가 많아요. 오히려 툭 던진 농담에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고수죠.” 고객들과 진심으로 시간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김 소믈리에는 캘리그라피, 라떼 아트, AI 기술까지 배우며 다양한 취향을 업데이트했다. 한국어, 영어와 일본어로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미묘한 뉘앙스의 농담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재치있는 이야기도 가득 준비한다. “배고플 때 냉장고 문을 여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것들을 갖춰 놓을 필요가 있거든요.”
조선팰리스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에서 서비스 중인 김성국 소믈리에
소믈리에는 어떻게 환대 산업의 핵심 인력이 되는가
김성국 소믈리에는 현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플레이어’의 자리에서 물러나 호텔 전체 음료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총괄 소믈리에’의 역할을 맡으며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말한다. 개인의 능력을 더욱 강조하며 화려한 수상 경력과 유명세로 무대에 서는 소믈리에 역할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시스템이 주는 ‘큰 그림’에 매료됐다. 브랜드 전체가 매일 유지하는 일관된 경험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조선호텔앤리조트 총괄 소믈리에다. 와인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전체 음료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호텔 안, 다양한 사업장의 음료 전략을 구상하고, 프로모션을 기획하며, 직원들의 교육 커리큘럼 설계는 물론 제품 구매·원가·재고 관리까지 그의 관할이다. VIP 전담 서비스도 포함된다. 팀원들의 개성과 재량에 대한 존중도 필수다. 각 매장의 디테일한 표현과 해석은 현장의 소믈리에들에게 위임한다. “큰 무대의 기준과 방향은 제가 구상하지만, 연출은 각 팀이 스스로 하도록 두는 편입니다.” 이런 역할은 해외에서는 와인 디렉터에 해당하는 역할이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개척 중인 포지션이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의 가치는 어쩌면 단기간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비전이 그가 일하는 원동력이다.
김성국 소믈리에가 정의하는 자신의 강점은 ‘비즈니스적 직관을 곁들인 입체적 큐레이션’이다. 와인의 예술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 와인이 손익계산서에서 어떤 수치로 작동하는지도 함께 계산한다. 파인다이닝 한 매장이 100점짜리 예술을 지향한다면, 호텔과 그룹 단위의 디렉팅은 365일 유지되는 95점짜리 정교함을 요구한다. “이타닉 가든에 있을 때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수만 병의 와인이 물류 시스템을 타고 흐를 때 단 한 병의 오차도 없이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와인에 대한 존중을 시스템에 녹여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서비스 시작 전, 팀원들과 함께 브리핑 중인 김성국 소믈리에
시스템 위의 사람-총괄 소믈리에가 다음 세대를 만드는 방식
총괄 포지션에서 마주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재고나 원가보다 ‘사람’이다. 팀원들의 숙련도와 마인드셋, 브랜드가 요구하는 스탠다드, 그리고 대기업 조직의 업무 처리 방식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한다. 완벽하게 시스템화된 지시가 감정적 배려의 부족으로 차갑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는 오래된 관습과 충돌하기도 한다. 조직 내엔 언제나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사람 사이의 힘겨루기로 바라보면 답을 찾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경험은 그의 리더십과 교육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팀을 평가할 때 테이스팅 실력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고객 응대에 대한 대처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 와인에 관한 지식은 개인 역량이지만 만석의 현장에서 동선을 최적화하고 동료를 돕는 능력은 프로의 역량이다. 특히 고객 컴플레인을 다루는 능력은 더욱 특별한 가치다. “고객의 불만이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가, 그 사람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팀원에게 지시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방식으로 리딩한다. “이 와인은 이 온도로 서비스하세요”가 아니라, “지금 이 고객은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중인데,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멘트와 어떤 속도로 접근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술과 매뉴얼이 다룰 수 없는 현장 판단력, 사람에 대한 이해와 맥락을 읽는 능력을 갖춰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율적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기 떄문. “서비스의 주인공은 언제나 고객이에요. 소믈리에가 자기 직함을 고객에 대한 마음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기 시작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거든요.”
2022년 설립된 소믈리에 모임 쏨즈(SOMZ)
함께 성장하는 젊은 소믈리에 크루, SOMZ
그 고민에서 출발한 조직이 있다. 김성국, 조내진, 주재민 소믈리에가 주축이 되어, 2022년 설립한 소믈리에 모임 SOMZ(쏨즈)다. 이들이 쏨즈를 만든 이유는 스터디 그룹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더 전문적이고 책임있는 직업인으로 소믈리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성국 소믈리에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들보다 와인을 더 많이 안다’는 것보다 더 다양한 상황에 더 많이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고객과 고용주의 신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는 역할까지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런 비전을 가지고 성장한 인재들이 늘어나야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올바른 규범과 표준을 가진다는 문제의식으로, 쏨즈는 소믈리에의 ‘더 전문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쏨즈는 스스로를 협회가 아닌 ‘크루’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협회는 규정과 권위를 만들지만 크루는 동일한 발언권을 가진 구성원들이 빠르게 실행하고 함께 성장하며 모두의 기준을 전방위적으로 끌어올린다. 함께 와인 지식을 나누며 이것을 시장에서 어떻게 가치로 전환할 것인지,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어떻게 전문적인 컨설팅 영역으로 확장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특수 목적 연합에 가깝다. 개인의 성취보다 ‘더 나은 업계와 시장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그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선택했다.
미쉐린 소믈리에 2026으로 선정된 기와강의 이정인 소믈리에와 김성국 소믈리에
이 철학은 조직의 운영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월 1회 정기 모임, 실전형 과제, 블라인드 테이스팅, 세일즈 시연으로 구성된 포맷은 즉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설계다. 대회 준비를 위한 특별 트랙에서는 타이틀을 목표로 한 고도의 학습을 병행하지만, 쏨즈의 핵심 세미나에서는 특정 와인을 시음한 뒤 그 와인의 가격 구조를 분석해 타깃 고객을 설정한 뒤 판매 전략과 프로모션 구성, 서비스 스토리텔링 멘트까지 완성해야 한다. 소믈리에는 학자나 애호가와 다른,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는 전문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향한 사랑, 환대의 본질
쏨즈 멤버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도 ‘태도’다. 자신의 김성국 소믈리에는 선별된 정보를 모두에게 공유하며 업계 전체의 파이를 키우려는 협력적 인재를 찾는다. 이는 시간과 에너지, 피드백을 기꺼이 내어주는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예약 단계에서 리셉셔니스트의 어휘와 톤, 소믈리에의 첫 인사 이후 메뉴판이 놓이기까지의 긴장되는 시간, 온도에 따른 글라스 선택과 교체 타이밍, 와인 설명에서 사용되는 키워드의 적절성, 특수 상황에 맞는 와인 선택 방식까지 서비스의 보이지 않는 사례와 변수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제안하고 고민하는 것. 이런 팀원들 간의 상호 ‘벤치마킹’은 경쟁이나 비교가 아닌, 음료 서비스의 스탠다드를 함께 상향 평준화하는 방식이 된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의 소유자라도, 오직 개인의 목표만을 위해 공유하지 않는 태도는 리스크일 뿐이다.
레스토랑 알렌에서 진행된 컴패션 기부 행사에 쏨즈의 소믈리에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운영 구조 역시 수평적이다. 교육, 행사 기획, 사회공헌 등 모든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리더제를 따른다. 각 영역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리더가 되고, 김 소믈리에는 ‘CCO(Chief Creative/Challenge Operator)’로서 시도 가능한 아이디어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가이드 역할에 머문다. 실제 실행과 의사결정은 운영진과 프로젝트 리더들이 주도한다. 리더십을 분산시킴으로써 모든 멤버가 단순한 소속원이 아니라, 운영자의 시선으로 크루에 참여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쏨즈는 와인 지식 뿐 아니라 브랜딩, 경영, 서비스 경험까지 함께 공부한다. 소믈리에 또한 각자 고유한 서비스 철학과 개성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정의하며 개인을 브랜딩할 수 있을지, 또 경영 관점에서 재고와 마진을 설계하는 베버리지 매니지먼트, 그리고 셰프·오너·서비스팀·고객의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공감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역할까지 모두 중요하다. 이런 다양한 역량이 함께 작동해야 기업이라는 조직 안에서 실질적인 파트너가 된다. 한편, 정기적으로 봉사활동과 기부 행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소믈리에는 서비스의 본질이 존중과 환대이며,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 결여된 사람은 진심 어린 환대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믈리에의 사회적 활동은 보여지기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품격의 일부다.
조선팰리스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에서 서비스 중인 김성국 소믈리에
김성국 소믈리에가 바라는, ‘소믈리에의 미래’
지금 그는 큰 꿈을 품고 미래를 바라본다. 디렉터로써 그가 호텔 내에서 설계한 베버리지 시스템이 언젠가 한국 럭셔리 호스피탈리티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그 과정에서 함께 성장한 후배들이 업계의 리더로 자리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그 꿈의 핵심이다. 소믈리에가 술을 따르는 보조 인력이 아니라, 식음과 서비스, 나아가 비즈니스 전반에 구조적으로 기여하는 핵심 파트너로 인식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훌륭한 와인은 언제든 찾을 수 있지만, 좋은 한 잔이 매일같이 같은 품질로 반복되고 축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고객, 팀, 그리고 이 직업을 이어갈 다음 세대의 소믈리에들. 이렇게 사람을 중심에 둔 환대의 구조가 지속가능하게 이어지도록, 그는 필드를 누비며 다양한 활동을 잇는다. “뛰어난 소믈리에가 있는 매장은 매출과 고객 만족도가 함께 보장된다는 신뢰를 시장에 구축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음료 운영과 서비스 설계를 통해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수익 구조를 동시에 혁신하는, C레벨급 전략 파트너 소믈리에가 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것. 그는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다음 역할이라고 믿는다.
김성국 소믈리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후배 소믈리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자신의 현재에는 가장 엄격하되, 변화와 도전에는 가장 수용적인 사람이 되어주세요.” 지식과 기술은 언젠가 낡고 대체되지만, 고객의 마음에 남은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테이스팅 노트 대신 ‘행복한 순간’을 남기는 사람. 김성국 소믈리에가 평생에 걸쳐 그리고 있는 소믈리에의 모습은,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처음의 순간처럼, 결국 기억과 경험을 남기는 연출자의 마법 같은 손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