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던 이지아 셰프는 파리의 제과 현장과 부산의 작은 비스퀴테리를 거쳐 서울에 새롭게 문을 열고 프랑스 전통 과자의 가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간다.
부산의 작은 과자점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부산 동래구 온천장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해 프랑스 전통 과자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의 목적지가 되었던 브리앙(Brillant)이 서울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20년 12월 문을 연 브리앙은 마들렌과 카늘레, 피낭시에 등 프랑스 구움과자를 전문으로 하는 비스퀴테리(Biscuiterie)로, 부산에서도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입지와 2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매장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오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고 준비한 제품이 오후 일찍 소진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브리앙이 부산에서의 영업을 마치고 2026년 10월 9일 서울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제과 철학을 지켜온 이지아 파티시에에게 이번 이전은 "더 다양한 프랑스 정통 과자들을 선보이고, 제가 경험해 온 많은 것들을 더 넓은 곳에서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포부를 펼쳐 보이는 도전이기도 하다.
브리앙 이지아 셰프와 봉식탁 이봉천 셰프 부부
이지아 셰프는 부산 출신이 아니다. 결혼을 계기로 처음 부산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첫 과자점을 열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었겠지만, 디저트로 지역 고객과 소통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부산과 함께 성장하며 지역의 미식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6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온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 이전을 오래전부터 고민했지만, 실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어요. 특히 오랫동안 매장을 찾아준 단골 고객들을 떠나는 일이 너무나 아쉬웠죠. 그래도 익숙한 환경에 머무르는 것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브리앙을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어요.” 이지아 셰프의 말처럼, 브리앙은 부산에서 축적한 경험과 고객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서울에서 프랑스 과자의 다양한 가능성을 더욱 깊이 탐구하려고 한다.
프랑스 문학에서 시작된 파티시에의 길
이지아 셰프는 어린 시절부터 제과 전문 교육에서 출발한 파티시에들과 이력이 다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불어학을 전공하고 석사를 마칠 무렵만 해도 제과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취미로 시작한 제과에 점차 깊이 빠져들면서 학문적 진로 대신 파티시에의 길을 선택했다.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이후 제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 중요한 자산이 됐다. 프랑스어 원서와 전문적인 제과 자료를 직접 읽을 수 있었고, 현지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기술의 의미를 원어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본교에서 전문적인 제과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파리에서는 럭셔리 호텔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Park Hyatt Paris-Vendôme)과 세계적인 파티스리 브랜드 피에르 에르메 파리(Pierre Hermé Paris)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특히 피에르 에르메는 전통적인 프랑스 제과를 바탕으로 향과 식감, 재료의 조합을 발전시켜 온 현대 파티스리의 대표 브랜드다. 당시 이 셰프는 여러 재료와 정교한 기술을 사용하는 무스 케이크를 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더 큰 매력을 느낀 대상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 달걀이라는 기본적인 재료를 오븐에서 구워 완성하는 전통 과자들이었다.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굽는 온도와 시간, 반죽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와 식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화려한 외형이나 복잡한 구성보다 오븐에서 형성되는 버터의 향과 섬세한 질감의 차이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귀국 후에는 쉐라톤 서울에서 제과 경력을 이어갔고, 인천문예실용전문학교 제과부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러 제과업체의 메뉴 개발에 참여하는 한편, 프랑스 제과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다. 『라루즈 파티세리』, 『에클레어 드 제니』, 『르 꼬르동 블루 파티시에』, 『차는 어렵지 않아』 등의 서적 번역에도 참여했다. 프랑스어에 대한 전문성과 실제 제과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호텔과 교육기관, 출판 및 메뉴 개발 등 다양한 영역을 경험한 뒤에 이 셰프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과자점을 열었다.
2026년 10월 9일 서울에 이전 오픈한 브리앙
부산 온천장, 2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탄생한 비스퀴테리
서울에서 살아온 이 셰프는 부산 출신의 이봉천 셰프와 결혼하며 부산으로 생활의 무대를 옮겼다. 이봉천 셰프는 동래구 온천장에서 가족의 오랜 외식업 역사를 이어받은 봉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과자점 오픈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곳은 봉식당 옆에 있던 작은 공간이었다.
브리앙이 처음 문을 연 2020년 12월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식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이지아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카페보다 과자를 포장해 가져가는 테이크아웃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대신 음료나 공간 경험보다 과자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했고, 폭넓은 디저트보다는 프랑스어로 비스킷과 과자류를 취급하는 전문점을 의미하는 비스퀴테리(Biscuiterie)를 표방했다. 한국에서 전문 비스퀴테리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프랑스 구움과자 특화된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브리앙의 마들렌은 버터와 달걀 풍미의 균형에 집중한다.
브리앙을 대표하는 과자는 마들렌(Madeleine), 카늘레(Canelé), 갈레트 브르통(Galette bretonne), 피낭시에(Financier), 가토 오 시트롱(Gâteau au citron)이다. 조개 모양의 마들렌은 버터와 달걀의 풍미, 보르도 지역의 전통 과자인 카늘레는 진하게 캐러멜화된 외피와 촉촉한 내부의 대비가 중요하다. 아몬드와 버터의 고소한 향을 중심으로 하는 피낭시에, 브르타뉴 지역의 버터 풍미와 부서지는 식감이 특징인 갈레트 브르통, 레몬의 산미가 풍부한 가토 오 시트롱은 서로 다른 제과 기술과 감각을 보여준다. 이지아 셰프는 기본적인 재료를 공유하면서도 각각의 과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맛과 식감을 갖도록 구성했다.
다양한 구움과자를 선보이는 브리앙
가장 맛있는 순간을 위해 지켜온 원칙
브리앙의 특별한 점은 생산과 판매 방식이다. 정오에 문을 열고 오후 5시까지 영업하는 일정이었지만, 준비된 제품이 모두 팔리는 오후 3시 무렵 문을 닫는 날도 적지 않았다. 이 셰프는 과자가 장기 보관이 아닌, 가장 맛있는 시간이 존재하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굽고 난 뒤 시간이 지나면 과자의 표면과 내부 조직,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객이 최상의 상태로 맛보는 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배송에 최소 하루가 걸리는 택배 판매도 하지 않았다.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는 일에는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매일 일정한 결과를 내는 기술도 중요했다. 버터의 풍미와 견과류의 고소함, 과일의 산미가 분명하게 살아 있어야 하지만 어느 한 재료가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이 셰프는 과자를 상자에 담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여 파리의 고급 파티스리뿐 아니라 패션과 화장품, 디자인 분야의 패키징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 제품을 구매하고 포장을 여는 순간까지 ‘디저트 경험’이라는 원칙 하에, 불어로 '빛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브리앙이라는 이름에는 자신이 만드는 과자 역시 그만큼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다.
구움과자의 패키징도 이지아 셰프가 직접 디자인했다
정통 과자를 중심으로 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도를 멈춘 것은 아니다. 브리앙에서는 산딸기가 제철일 때 산딸기 크림을 넣은 슈를 선보이고, 여름에는 프랑스식 아이스크림인 글라세(Glace)를 소개한다. 바닐라의 향에 집중한 사블레 투 바니유(Sablé tout vanille), 밸런타인데이에 한정적으로 판매한 송로버섯 트뤼프 등도 유명하다.
도산공원 옆 새롭게 둥지를 튼 브리앙
서울에서 완성한 새로운 공간, 변하지 않은 정체성
서울로 브리앙을 이전하며 달라진 큰 부분은 공간과 접근성이다. 예전보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고객들이 여러 과자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도록 매장을 구성했고, 프랑스 과자점이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프랑스풍 인테리어도 중요한 요소였다. 과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티를 준비해 매장에서 직접 디저트를 맛볼 수 있도록 한 점도 부산 매장과의 차이다. 제품을 픽업하는 구매 공간에서, 매장에 머물며 디저트를 맛보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과자점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셰프는 서울의 브리앙을 통해 더 다양한 프랑스 정통 과자를 소개하고,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다고 말한다. 국내에도 프랑스 과자를 만드는 곳은 많지만, 비슷한 레시피에 기반하면 ‘그곳만의 느낌’이 옅어진다. 이 셰프는 꾸준히 프랑스를 오가고, 연구를 거듭하며 ‘브리앙만의 맛’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한 입에도 알 수 있는 고유한 풍미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 브리앙이 예전보다 더욱 완성되었다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계절 메뉴로 새롭게 선보인 코코바난(Coco-banane)
기후의 변화까지 반영하는 제과 기술
서울은 브리앙 레시피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부산과 서울, 두 도시의 온도와 습도 차이도 과자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 이지아 셰프의 설명이다. “부산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습도가 높아요. 이런 부분을 반영해 레시피와 제조 과정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죠. 특히 마들렌과 피낭시에처럼 수분과 지방의 균형이 중요한 과자는 반죽의 상태와 굽는 과정에 따라 결과가 민감하게 달라지고, 카늘레 역시 외피와 내부의 식감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굽는 과정의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과자에요. 서울에서는 새로운 공간의 온도와 습도, 제조 환경을 고려해 기존 레시피를 다시 조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재료와 배합을 사용하더라도 작업 환경이 달라지면 완성된 과자의 식감과 풍미가 달라질 수 있기에, 새로운 공간에 맞는 레시피 조정은 필수다. 동시에 생산량이 늘어나더라도 자신이 직접 제품을 완성하고 품질을 관리한다는 기본 원칙은 유지할 예정이다. 제품에 따라 가장 맛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서로 다르기에, 새 공간에서 더 많은 손님을 만나는 것과 브리앙 특유의 맛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바삭하고 가벼운 외피와 부드럽고 달콤한 필링의 밸런스가 돋보이는 카라멜 누아제트(Caramel Noisette)
좋은 디저트란 ‘맛의 균형’
파리에서 제과를 배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지아 셰프가 생각하는 좋은 디저트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져 왔다. 처음에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과자를 만들고 다양한 고객을 만나며, “좋은 재료의 맛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각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버터의 풍미와 견과류의 고소함, 과일의 산미가 각각 살아 있어야 하고, 전체적으로는 간이 잘 맞고 균형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손님이 복잡한 기술에 감명받기보다는 결국 직관적으로 맛있고, 먹는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과자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포부다.
이 셰프에게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제법을 지키는 일과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는 일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랑스 과자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기술과 역사적인 배경을 존중하되, 셰프가 직접 경험한 맛과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브리앙에서 전통적인 다섯 가지 구움과자가 오랫동안 중심을 차지했던 것도 이러한 철학이 배경이다. 신제품을 꾸준히 개발하는 것 만큼이나 이미 만들고 있는 과자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 아래 브리앙의 과자는 매일 조금씩 발전한다.
르레 데세르(Relais Desserts)의 세미나에 참석해 교류한 이지아 셰프
프랑스 셰프들과의 교류, 새로운 가능성
최근 이지아 셰프는 세계적인 프랑스 제과 장인들의 모임인 르레 데세르(Relais Desserts)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셰프는 한국인 최초로 이 세미나에 초대되어 현지의 저명한 파티시에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다. 현지의 반응도 뜨거웠다. 본토에서 브리앙의 과자가 ‘프렌치답다’는 인정은 그녀에게 새로운 자극과 활력이 되었고, 자신의 제품이 맛과 식감, 향,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서 프랑스 과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이 현지 전문가들에게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현지에 직접 찾아가 제과 현장을 살펴보니, 구움과자는 화려한 디저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고, 앞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그만큼 많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 또한 프랑스 전통을 배우고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브리앙을 통해 새롭게 개발한 레시피와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에 새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프랑스 셰프들과의 교류를 이어가며 다양한 재료와 맛을 접목하고, 브리앙 고유의 레시피를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또한 과자가 지친 일상에 작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장시간 비행하는 승객들에게 제공할 기내식 디저트 납품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목표다. 매장이라는 공간을 넘어 더 다양한 환경에서 프랑스 과자의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프랑스 과자
이지아 셰프는 3년, 5년이 지난 뒤에도 브리앙을 통해 프랑스 전통 구움과자를 깊이 이해하고 그 본질을 충실하게 지키는 곳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자의 역사와 기술을 현재의 감각으로 전달하면서도 고객들이 매번 방문할 때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서울에서 시작한 새로운 브리앙은 기존의 마들렌과 카늘레, 피낭시에를 더욱 정교하게 완성하는 한편, 계절마다 다양한 프랑스 과자를 소개하고 그가 세계 각지에서 발견한 새로운 맛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공간이 될 예정이라고. 기내식 디저트와 해외 파티시에들과의 협업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계획들도 앞으로 탐구하고 싶은 분야다. 좋은 재료와 정확한 기술, 전통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는 과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이지아 셰프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