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름지기 기획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장(醬)’ 문화를 전통 장과 음식·도구·공예와의 조화를 통해 현대적, 미학적으로 재해석했다.
올 하반기,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7)에서 열리고 있는 2025 기획전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은 국내외 다이닝 업계가 주목할 만한 전시다. K-컬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K-푸드와 한식(Hansik)의 영향력도 커져가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글로벌 다이닝 흐름의 중심에서 한국 전통 발효식 ‘장(醬)’의 본질을 심도 깊게 탐구한다.
아름지기 재단 2025 기획전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 포스터
장(醬), 한식 대표 주자로 세계 미식 무대에 오르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소개된 정관 스님의 자연주의 한식과 사찰 음식 레시피는 세계 각국의 스타 셰프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진정한 파인 다이닝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이와 함께 한국 전통 음식에 내재된 과학적 원리와 철학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 글로벌 미식계에 전해지면서, 국내 셰프들의 해외 진출까지 이끌고 있다.
층별 주요 전시 중 1층에서 볼 수 있는 ‘열 가지 장, 열 가지 음식’
2024년 3월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주도로 공동 집필 아래, 도서 ‘장 : 한국 요리의 영혼(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 영문판이 미국 시장에 출간되면서 또 한 차례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같은 해 12월엔 우리나라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며, 장을 정성껏 빚는 기술과 지혜, 장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 공동체 정신까지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한식의 너른 도약을 예고했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이 만든 ‘장온면’. 된장의 구수하고 깊은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 면 요리다. 특히 오묘한 빛깔의 면기는 음식에 맞게 새로이 제작된 한정용 도예가의 작품이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6월, 요리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2025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장: 한국 요리의 영혼(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이 ‘올해의 도서상’을 수상하며, 글로벌 미식계의 관심은 세계적인 발효 음식의 정수, 한국 전통 ‘장’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발효된 맛의 문화, 장(醬)을 주목하다
재단법인 아름지기(Arumjigi Foundation)에서 준비한 전시는 한식의 뿌리이자 발효 식문화의 중심인 ‘장(醬)’을 키워드로, 장이 만들어 내는 맛과 형태, 그리고 식문화 속 삶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뿐 아니라 두부장, 대구장, 즙장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장의 쓰임새와 의미를 탐구하고, 오늘날의 식탁에 어울리는 조리법과 상차림으로 새로운 미식을 제안한다.
전시장 2층에선 ‘우리나라 전통 장을 담고 나누는 도구들’을 관람할 수 있다. 고운 빛깔과 곡선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우리나라 전통 장의 아름다움을 한 번 더 관망하게 한다.
그간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한국 전통 식문화를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일의 식탁으로 이어갈 가치를 발굴하고 또 대중적으로 전하려 다방면에서 애써 왔다.
물론 일본,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고유한 장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장은 ‘백가백미(百家百味)’라 부를 만큼 가정마다 각기 다른 맛을 지닌 건 물론 식생활의 중심이었고, 정주 공간에서 빠질 수 없는 ‘장독대’란 저장 방식, 그리고 마을 단위로 장을 담그고 나누던 공동체의 기억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인식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삶의 태도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층 전시 공간에 준비된 ‘여름 절기의 상추쌈 상차림’. 장에 어울리는 그릇도 함께 제작해 푸근한 소박함 속에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장(醬)의 다양성과 가치를 재조명하다
2025 기획전 <장, 식탁으로 이어진 풍경>은 ‘장과 음식’, ‘장과 도구’란 2가지 테마로 이뤄져 있다. 먼저 ‘장과 음식’을 통해선,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이 선정한 어육장, 즙장, 등겨장, 청장, 천리장, 대구장, 두부장, 약고추장, 청국장, 된장 등 전통 장 10가지와 각 장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10가지 음식을 소개한다.
메주가루, 고춧가루, 찹쌀 풀 등을 섞은 것에 갖은 채소를 함께 버무려 단기간 숙성시켜 먹는 여름장으로, ‘즙장’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정월대보름 복쌈, 여름 절기의 상추쌈, 겨울철 술안주로 즐겼던 청육장 등을 더해 계절에 어울리는 상차림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제철 식문화의 가치와 선조들의 지혜를 전하며, 우리 고유의 음식에 깊이와 감칠맛을 더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장의 면면을 세밀히 돌아보게 한다.
아름지기와 함께 이번 전시의 음식과 그릇을 기획한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은 옛 조리서와 반가의 전통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식의 근간과 미감을 탐구하는 연구 공간이다. 특히 이곳은 연계된 ‘온지음’ 레스토랑을 통해 맛공방에서 도출한 연구 결과를 오늘날의 식탁에 맞게 풀어내며 한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까지도 미쉐린 1스타를 수년째 유지 중이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잇는 실험적 미식의 장으로 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다져 나가고 있다.
‘두부’를 베 주머니에 넣어 된장이나 고추장 항아리에 박아 오래 묻어두었다가 꺼내 먹는 반찬, ‘두부장’
다음으로 ‘장과 도구’ 전시실에선 기능을 따르는 형태, 여기서 전해지는 손끝의 감각과 음식의 질감, 이러한 물성 위에 더해진 촉감과 미감을 통해, 식문화는 곧 삶의 자세임을 의미 있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발효의 미학을 완성하는 장독과 항아리, 전통 식기인 국자, 주걱 등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발효 문화의 조형성과 미감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2층에 전시된 ‘계절을 담은 전통 상차림’ 섹션. 이곳에선 상시 플레이되는 영상을 통해 상차림의 준비 과정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온지음 디자인실 이하 여러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 15인이 참여한 식기와 도구 전시는 ‘장이 오늘날의 식탁에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제안한다. 실제로 갤러리에선 목재와 금속, 유리, 흙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그릇을 통해 전통과 현대, 실용과 조형 사이의 균형을 탐색해 볼 수 있다.
‘담고 나누는 도구들’에선 우리나라 전통 장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새로운 시도를 만나 볼 수 있다.
다음 세대로, 내일의 한식을 이어갈 장(醬) 문화
‘한국의 장 문화’를 다양한 시선에서 새롭게 고찰해 보려는 이번 전시는, 전통 장 소개를 시작으로 장과 연관된 음식과 도구를 거쳐 식탁으로 이어지는 풍경까지 서사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현재 진행형인 식문화를 처음부터 다시 면밀히 돌아볼 수 있다.
시대를 거슬러 ‘계절을 담은 전통 상차림’을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공간
아름지기 홍정현 이사장은 “올해 전시는 다양한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의 해석이 더해진 시도로, 장을 다시 ‘살아 있는 문화’로 되살리려는 실천”이라며, “과거의 문화 유산이 오늘의 식탁 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라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전시 기간은 2025년 11월 15일까지로, 일반 성인 기준 관람료는 1만 원,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