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언어로 쓰는 한식, 르도헤 김창욱 셰프

레스토랑의 홀부터 주방, 서울과 멜버른까지 수없이 흔들리고 돌아온 끝에, 김창욱 셰프는 마침내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가장 또렷하게 지역색을 담은 한식을 탐구한다.

넓게 펼쳐진 해운대 바다를 배경으로 부산만의 한식을 표방하는 르도헤(Le DORER)는 부산 출신 김창욱 셰프가 이끄는 곳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6에서 미쉐린 1스타로 승격되며 부산의 네 번째 스타 레스토랑이 되었고, 같은 해 김 셰프는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를 수상했다.

김창욱 셰프는 지금 “경상도 한식”, 더 좁게는 “부산 요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변항의 생멸치와 활고등어, 곰장어, 방아잎과 제피, 기장 미역, 경상도의 장과 젓갈처럼 고향에서 흔히 먹어왔기에 오히려 특별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재료와 음식을 오늘의 코스 안으로 옮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부산 식문화를 말하는 셰프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품어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심과 방황, 여러 번의 이탈과 재출발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가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부산 해운대의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르도헤

요리사가 될 생각이 없던 소년

김창욱 셰프는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고 대학에 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을 좋아해 막연히 호텔리어 같은 서비스 직무를 생각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뷔페와 레스토랑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설거지까지 맡으며 자연스럽게 주방 안으로 들어갔고, 어느 날 문득 '10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불안이 찾아왔다. 그는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허브 손질과 간단한 준비 작업부터 칼질과 재료 손질까지 익히며 빠르게 성장했다.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린 나이에 윤화영 셰프의 메르씨엘에 들어갔지만, 처음 경험한 파인다이닝의 엄격한 문화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사회 경험도, 경력도 부족했던 그는 결국 주방을 떠났고 곧 입대했다. 그러나 군 생활 내내 주방을 포기한 일을 후회했다. 요리책을 찾아 읽으며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전역 후에는 셰프가 되겠다는 확신보다 도망쳤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후 부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꽁띠에서 약 2년 동안 파스타, 스테이크, 디저트까지 모두 담당했다. 셰프와 둘뿐인 작은 주방이었기에 모든 업무를 빠르게 익혀야 했고, 레스토랑 전체의 흐름을 읽는 법을 배웠다. 그 무렵 한국에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며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더 제대로 배우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창문도 없는 월세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보트르 메종에 입사했지만, 다시 엄격한 주방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했고 약 세 달 동안 아무 계획 없이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다.

르도헤가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6에서 1스타로 승격됨과 동시에 김창욱 셰프는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를 받았다

홀과 주방, 호주와 서울을 오가며 배운 것

방황하던 시기, 부산에서 와인바 볼피노를 준비하던 정대영 소믈리에의 제안으로 그는 주니어 소믈리에가 됐다. 약 1년 7개월 동안 와인과 서비스를 배우며 직접 손님을 응대했고, 주방과 홀은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음식과 서비스에 담긴 마음이 손님에게 제대로 전달되는가였다.

서비스 역시 잘 맞았지만 요리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해외를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2019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건너가 다시 설거지부터 시작했고,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던 중 코로나19로 귀국했다. 이후 선배의 추천으로 비채나에 합류했다. 가장 큰 규모의 한식 파인다이닝 주방에서 치열한 경쟁과 조직 문화를 경험했고, 처음에는 텃세와 낯선 분위기에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비채나에서, 다시 초심으로

비채나에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김치를 담그고 생선과 육류를 손질하며 한식 주방의 기본을 익혔고, 막내로 입사해 약 4년 동안 여러 파트를 거쳐 수셰프까지 올라갔다. 책임이 커질수록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기준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전광식 셰프는 "속도는 좋은데 디테일이 현저히 떨어지니 동네 밥집이나 가서 일하라"며 끊임없이 지적했다. 행주를 접는 방식, 작업대의 물기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반복해서 수정받는 과정은 당시에는 스트레스였지만 결국 습관이 됐다. 그는 접시에 담기는 결과보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보관하는 모든 과정의 디테일이 요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비채나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 사이 새로운 스타일을 익히기 위해 알라프리마에서 약 6개월 동안 일하며 일식 식재료와 조리법을 배우고 다시 비채나로 돌아왔으며, 이후 이타닉 가든에서도 약 6개월을 보냈다. 레스토랑 산 오픈을 앞두고 조승현 셰프 팀에 지원했지만 합류하지 못했고, CJ와 협업을 마친 뒤 재개장을 준비하던 모수에도 메르씨엘 시절 인연이 있던 오종일 셰프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은 분명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끊임없이 탐색하던 시간이었다.

 

레스토랑 르도헤의 와인 셀러. 르도헤는 부산 최초의 돔페리뇽 소사이어티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만난 르도헤

볼피노에서 함께 일했던 정대영 소믈리에가 르도헤로 자리를 옮긴 뒤 함께 일할 셰프 소개를 그에게 부탁했다. 여러 지인을 추천했지만 잘 풀리지 않자 결국 제안은 김창욱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는 다섯 번 가까이 제안을 거절했다. 헤드 셰프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더 배워야 하는 시기에 한 레스토랑의 셰프를 맡으면 성장이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누군가의 주방에서 정해진 시스템을 따르는 것과 자신의 이름으로 메뉴와 팀을 책임지는 것 사이에는 다른 종류의 배움이 있다는 설득에, 결국 김창욱은 2024년 10월 르도헤에 합류했다.

막상 메뉴를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서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불안이 밀려왔다. 그는 르도헤에 온 뒤 1년여 동안 읽은 책의 양이 그전까지 평생 읽은 책보다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핍을 원동력 삼아 많은 이들을 만났다. 장을 담가보고 싶어 장안요를 찾아갔고, 김장을 배우고, 생산자를 찾아다녔다.

 

한식보다 구체적인 ‘부산 요리’

르도헤에 합류하고 김 셰프는 ‘맛있는 한식’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한식’이라는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다. 궁중음식, 사찰음식, 반가음식처럼 역사적·계층적 분류는 익숙했지만 지역에 따른 차이는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와 부산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부산은 바다만 있는 도시가 아니다. 동해와 남해를 접한 해산물 문화가 있고, 조금만 내륙으로 이동하면 산과 들의 식재료가 있다. 그는 부산의 재료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 지역에서 그 재료를 먹게 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고 어떤 음식과 곁들여왔는지까지 요리에 담고 싶어졌다.

 

돼지감자로 만든 칩과 잔멸치 튀김을 곁들인 봄 생멸치 쌈

봄철 생멸치 요리는 그 방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장 대변항에서 나는 생멸치는 부산에서는 친숙한 특산물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산지 수준의 신선도로 접하기 쉽지 않다. 통영에서는 여름 멸치를 좋게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 북쪽에 있는 기장에서는 봄 멸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김창욱은 부산의 멸치쌈 문화에서 출발해 생멸치와 깻잎, 크렘 프레슈, 쌀 튀밥을 한 접시에 구성했다. 원형을 지우고 전혀 다른 요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멸치와 쌈이라는 지역의 익숙한 조합을 유지하면서 산미와 질감, 온도와 형태를 조절한 것이다.

 

콩잎과 쌈장을 곁들여 낸 활고등어 요리

활고등어 요리 역시 부산의 식탁과 연결된다. 먼저 고등어 겉면을 지진 뒤 콩잎과 쌈장처럼 지역 사람들이 익숙하게 먹어온 요소를 새롭게 조합한다. 그리고 곰장어 요리도 마찬가지다. 그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곰장어는 더욱 부산다운 재료다. 세계적으로 곰장어(먹장어)를 일상적으로 먹는 지역은 많지 않으며, 부산에서는 볏짚이나 연탄불에 구워 강한 불향을 입혀 먹어왔다. 김 셰프는 곰장어 껍질을 볏짚에 구운 뒤 그 속을 새우 살로 채워 서로 다른 탄력과 감칠맛을 겹치는 방법을 시도했다. 곰장어의 살은 꼬들꼬들한 질감을 살리고, 특유의 향을 무조건 없애기보다 생양파의 단맛과 깻잎, 토마토, 일본 식재료인 적자소 등을 조합해 향의 균형을 찾는다. 곰장어가 맛있어지는 가을이 오면 이를 정규 코스 안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계속 실험하고 있다.

김 셰프에게 한식은 ‘고정된 원본’이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조리서에 기록된 요리를 재현하는 것이 가장 진정한 한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산 음식을 공부할수록 우리가 당연하게 한국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정착한 음식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짜장면과 떡볶이처럼 외부의 영향과 근현대의 생활 속에서 생겨난 음식도 이제는 한국인의 미각과 기억을 이루는 중요한 일부다. 반대로 과거 문헌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삶과 단절된 음식을 유일하게 정통적인 한식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먹고 기억하는 현대의 맛도 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부산 요리의 원형을 출발점으로 삼되 기술의 국적에는 경계를 두지 않는다. 생선을 데치고 숙성하고 칼질하는 방법에서는 일본 요리의 축적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부산 자체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에 두 지역의 음식에서 닮은 점이 발견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본다. 필요한 경우 프렌치 조리 기술도 사용한다. 핵심은 프렌치인지 일식인지 한식인지가 아니라 그 기술이 부산의 재료와 이야기를 더 정확하고 맛있게 전달하는가에 있다.

 

경상남도, 그리고 부산의 지역성

“시장과 산지, 지역 음식을 오래 만들어온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려고 해요. 울산의 오일장인 남창시장과 언양시장은 르도헤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고 제대로 보려면 새벽 6시 무렵 도착해야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능한 한 찾아가려고 합니다. 봄이면 할머니들이 노지에서 직접 뜯어온 봄나물이 나오고, 가을이면 버섯도 다양해요. 같은 종류의 허브나 봄동이라도 노지에서 자란 것은 향의 강도가 다르고요.” 김창욱 셰프는 병풍취처럼 쓴맛 속에 우아한 향을 지닌 나물, 경상도에서 폭넓게 사용하는 산초와 제피를 언급하며, 직접 다니는 과정을 통해 경상도의 맛을 탐구한다고 설명한다.

그 뿐 아니다. 도예가 신경균의 아내 임계화 선생에게서는 경상도식으로 나물을 무치는 법, 간장과 된장을 사용하는 방식, 계절별 봄나물 조리법을 배웠다. 김치와 간장, 된장을 담그는 자리에도 찾아가 어깨 너머로 일을 거들며 배웠다. 통영의 요리연구가 이상희 선생을 찾아가 지역 음식을 배우고, 기장에서는 배를 타고 미역이 생산되는 현장을 살폈다. 김장을 담그고 곶감을 만들며, 경상도의 차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하동 차에도 관심을 넓히고 있다.

지역의 제철을 다시 공부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서울에서 요리할 때는 어떤 생선이나 채소가 제철이라고 배우면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시기에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산으로 돌아온 뒤 동해와 서해, 남해의 수온과 환경에 따라 같은 어종의 제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제 그는 한국 전체를 하나의 계절표로 이해하기보다 부산과 동남해안의 제철을 별도로 찾아보고 있다. 부산과 경상도에 깊게 뿌리내린 젓갈과 액젓 문화, 발효 역시 앞으로 더 파고들 주제다.

 

팀을 이끈다는 것의 무게

헤드 셰프로 팀을 이끄는 일도 처음이다. 권위적인 문화에 상처받았던 막내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는 지금 직급에 상관없이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가 팀원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는 것도 배움에 대한 갈망이다. 궁금한 것을 묻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을 피하지 않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전한다.

헤드셰프로서 팀을 이끌고 있는 김창욱 셰프

부산은 서울보다 숙련된 외식업 인력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쉽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르도헤에서는 주방 8명, 홀 3명이 함께 일하는데 늘 일손이 부족하다. 홀 직원을 1년 7개월 가까이 찾았지만 적합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부산의 지원자는 대부분 신입이나 경력 1~2년 차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부산으로 내려오는 경우는 드문 반면, 부산의 젊은 인력은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향한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신입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요리를 가르치는 일보다 사람이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게 만드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다.

좋은 요리, 부산이 남는 요리

김창욱 셰프에게 좋은 요리는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문득 생각나고, 다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다. 르도헤의 음식도 식사를 마친 순간의 강렬함보다 시간이 지난 뒤 떠오르는 맛이기를 바란다. 손님들에게 남기고 싶은 가장 중요한 기억 역시 부산이다. 르도헤에는 부산 사람뿐 아니라 서울과 해외에서 온 손님이 다양하게 방문한다. 바다를 보고, 모모스 커피에 들르고, 해변을 걸은 뒤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을 먹는다. 김 셰프는 르도헤가 그렇게 일정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곳이기를 바란다.

 

 르도헤의 주방

30년 뒤의 꿈을 묻자 김창욱 셰프는 ‘문화’를 말한다. 통영의 향토요리 연구가 이상희 선생이 지역에서 사용해온 밥상인 ‘통영반’을 만드는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음식뿐 아니라 가구와 식기, 생활문화까지 다루고 싶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한국의 지역 문화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긴 미래의 꿈이다.

'문화'를 담는, 그리고 다음세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김창욱 셰프

“미식과 문화가 앞으로 발전하고 이어지려면 우선 우리가 가진 것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음식이든 부산의 지역 문화든,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먼저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르도헤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르도헤에서 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고향 부산을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사랑해가고 있다.

단락

Writer 이정윤 (Julia Lee)
Editor Mavis Chen
Photographer 르도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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