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서울에서 만났던 세 사람이 각자의 레스토랑을 이끌게 된 지금, 다시 하나의 카운터 앞에 섰다. 일본 교토의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와 카와무라 쇼타 셰프, 그리고 서울의 김진혁 셰프가 존경과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단 하루의 저녁.
8월 26일 저녁, 서울 논현동 '알라프리마(alla prima)'의 오픈 키친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섰다. 교토 '신몬젠 요네무라(新門前 米村)'의 요네무라 마사야스(米村昌泰) 오너 셰프, 교토 '모네(måne)'의 카와무라 쇼타(河村昭多) 셰프, 그리고 이곳을 이끄는 김진혁 셰프다. 세 사람의 레스토랑은 문을 연 해도, 도시도, 요리의 결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이 구도는 17년 전 서울에서 이미 한 번 만들어진 적이 있다. 당시 요네무라 셰프는 SPC그룹의 레스토랑 '퀸즈파크'의 메뉴를 총괄했고, 카와무라 셰프는 교토에서 건너와 그 자리를 대신 지키는 수셰프였으며, 김진혁 셰프는 같은 주방에서 함께 일하던 요리사였다.
함께 요리하고 있는 요네무라 셰프와 카와무라 셰프
서울과 교토, 세 셰프의 레스토랑
신몬젠 요네무라는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가 2019년 교토 히가시야마에 연 레스토랑이다.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기온 오쿠무라에서 약 10년을 일한 뒤 1993년 독립해 레스토랑 요네무라를 열었고, 교토와 도쿄 긴자 두 곳을 운영하며 양쪽 모두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 프렌치와 일식, 어느 쪽으로도 묶이지 않는 그의 요리는 일본에서 장르의 경계를 지운 첫 세대로 꼽힌다. 2018년 순조롭게 돌아가던 두 곳을 모두 닫은 그는 이듬해 좌석을 줄여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의 집대성으로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네는 카와무라 쇼타 셰프가 2016년 교토 근교 교타나베에 연 레스토랑이다. 채소가 좋은 고장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택했고, 8년을 보낸 뒤 2024년 교토 니조로 옮겨왔다. 스칸디나비아어로 달을 뜻하는 ‘모네’의 의미대로, 달빛 아래 사람이 모여 편히 쉬어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마음을 담았다. 김진혁 셰프와 동갑이기도 한 그는 교토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요리의 즐거움을 처음 알았다. 요네무라에서 10년간 경력을 쌓고,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교토의 일 기오토네를 거쳐 독립했다. 고급 식재료에 기대는 대신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조합으로 묶는 것이 그가 세운 기준이다.
알라프리마는 김진혁 셰프가 2015년 서울 논현동에 연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어로 즉흥적으로라는 뜻을 담아 계절의 재료를 자유롭게 활용한 요리를 선보인다. 문을 연 지 오래지 않아 미쉐린 스타를 받았고, 지금은 2스타를 지키고 있다. 김진혁 셰프는 일본에서 요리를 시작했지만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계절을 읽는다. 재료를 직관적으로 쓰되 의외의 조합에서 오는 균형을 찾는다.
콜라보레이션 디너만을 위한 메뉴 표지
2009년, 세 사람이 만나다
당시 요네무라 셰프는 서울 SPC그룹의 레스토랑 '퀸즈파크'를 총괄하고 있었다. 교토에서 매일 건너올 수는 없으니, 그 요리를 현장에서 재현하고 주방 스태프를 가르치는 일은 수셰프였던 카와무라 셰프의 몫이었다. 카와무라 셰프는 이 시기를 통해 본인이 크게 성장했다고 회상한다.
"요리 기술이나 예술적인 감각도 그렇고, 정신적인 부분까지 전부 단련됐어요. 지금은 제 방식으로, 제 표현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바탕은 결국 거기서 나온 겁니다."
그 주방에 통역을 겸한 요리사로 일하던 청년이 김진혁 셰프였다. 김진혁 셰프는 카와무라 셰프와 매일 일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부쩍 가까워졌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매년 교류를 이어왔다.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서울, 교토에서도 만난다. 같이 밥을 먹고 요리 이야기를 하게 된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협업을 통해 마주한 시간 : 세 셰프와의 인터뷰
의견을 나누고 있는 요네무라 셰프, 카와무라 셰프, 김진혁 셰프
이번 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진혁 셰프 올해 1월에 쇼타 셰프가 서울에 왔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술 한잔을 하다가 요네무라 선생님 책 이야기가 나왔어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함께 다시 요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바쁘게 지내면서 눈앞의 흐름에 매여 있었는데, 그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잊고 있던 그때의 소중한 열정이 떠올랐어요. 그날, 바로 쇼타 셰프의 의견을 물으니 그도 좋다고 해서 이번 협업이 시작됐습니다.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저는 협업을 잘 하지 않습니다. 번거롭기도 하고, 하더라도 한 번으로 끝내자는 쪽이에요. 대개는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래전 한국에서 함께 고생했던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 해볼까 싶었습니다. 그 시절의 요리를 함께 해달라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이번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셰프들이 각자 스타일이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이 부딪친다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나의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 가지가 교차하는 것, 그 점이 기대됐습니다.
카와무라 쇼타 셰프 이번 협업은 기본적으로 요네무라 셰프가 중심이 되는 자리입니다. 코스의 축은 요네무라 셰프의 요리이고, 그 위에 저희 두 사람의 감각이 곳곳에 스며드는 구성이에요. 요네무라 셰프는 대단히 개성 있고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있는 요리를 만드는 분입니다. 그 점만큼은 저희가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김진혁 셰프 요네무라 셰프님은 몇 해 전 교토에서 규모를 줄여 자리를 옮기셨어요. 그런데 지금 봐도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세요. 무와 푸아그라, 장어 같은 조합을 제일 처음 하신 분인데, 그런 특이한 조합들은 여전히 유효하거든요. 그 감각을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게 한번 같이 하고 싶었어요.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디너를 준비하고 있는 알라프리마 팀과 요네무라 셰프, 쇼타 셰프
협업을 준비하면서 메뉴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완성해 나갔나요?
김진혁 셰프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계절에 맞는 재료를 같이 논의했어요. 아무래도 일본은 계절 재료를 요리에 많이 투영하니까요. 제가 제안을 드리기도 하고, 이건 어떻겠냐, 요네무라 셰프님 스타일이라면 어떻겠냐 하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카와무라 쇼타 셰프 오기 전에 교토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워낙 자주 메시지를 보내며 소통해 온 덕에 한국에 와서는 밑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수정하는 정도였습니다.
코스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요리를 꼽는다면요?
김진혁 셰프 여름 막바지에 지친 몸을 데우는 탕 요리입니다. 요네무라에서 끓인 자라 콘소메를 받아 그것을 베이스로 건어물을 불려 더했습니다. 자라와 프로슈토, 동충하초, 용안, 건관자, 건해삼, 건전복, 모렐, 샥스핀, 마, 순채, 연자육, 동과, 사슴 아킬레스건, 건조 생선부레, 생강, 닭날개, 프레사, 무화과까지 열아홉 가지 재료가 들어가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입니다.
셰프들의 시선이 고루 담긴, 특별한 불도장
카와무라 쇼타 셰프 차가운 소멘입니다. 한국에 자주 오고 좋아하다 보니, 한 번쯤 한국 식재료로 제 나름의 요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한국 식재료로 중심을 잡았습니다. 들깨, 댑싸리열매 같은 재료들로요. 위에 생단새우와 캐비아가 올라가지만 그것들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두 재료의 끈적한 식감만 소멘에 더하고 싶었어요. 고급 재료라서 캐비아를 쓴 것이 아니라, 그 텍스처가 필요했던 겁니다.
들깨와 두유로 만든 소스에 생단새우와 캐비아를 올린 차가운 소멘
그 들깨는 어떻게 이번 요리로 이어졌나요?
김진혁 셰프 저희 장인 장모님이 서울에 사시다가 은퇴하시고 양평으로 가셨습니다. 그쪽 들깨가 좋아서 시골 방앗간에서 직접 짠 들기름을 쇼타 셰프에게 자주 보내드렸어요. 일본에는 들깨가 흔치 않거든요. 그 재료에서 영감을 받아 일본의 면, 소멘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오늘 디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를 한 가지 꼽는다면요?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오늘은 갯장어입니다. 한국 갯장어는 부드러워요. 뼈도 부드럽고 껍질도 부드럽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한국산 갯장어가 가장 비싸요. 일본 것의 두 배쯤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쓰지 못했어요. 모처럼 한국에 왔으니 한국 갯장어를 쓰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갯장어가 가장 맛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내는 곳은 좀처럼 없을 겁니다. 특히 차갑게, 생으로 낸 쪽이요.
여름철 갯장어회를 모티브로 갯장어를 차갑게 조리하고, 스미소 소스와 일본식 참나물, 아오우리, 크레송 무침, 양하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히든 메뉴였던 카레는 세 분 모두에게 오래된 요리라고 들었습니다.
카와무라 쇼타 셰프 제가 일을 시작하고 몇 해쯤 지났을 때부터 하게 된 메뉴입니다. 처음 그 밑준비를 맡은 사람이 저라서 애착이 있어요. 교토에서는 늘 락교를 곁들이는데, 이번에 함께 낸 츠케모노는 김 셰프가 한국식으로 고쳐 낸 것입니다.
일본식 카레 옆에 놓인 것은 알라프리마의 김치 파우더와 참기름을 뿌린 단무지, 그리고 지난해부터 유산 발효시킨 갓이었다. 교토에서 늘 락교가 놓이던 자리에 ‘알라프리마’의 색깔이 들어선 셈이다.
히든 메뉴였던, 카레와 츠케모노
서로의 요리를 보며 인상 깊었던 점이 있나요?
김진혁 셰프 요네무라 셰프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타고난 감각을 지녔습니다. 골동품과 서양, 일본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기물과 인테리어, 패션만 봐도 특이합니다. 그리고 쇼타 셰프는 인간적으로 저와 무척 가깝고, 요리를 보는 시선이 굉장히 비슷해요.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그건 물론이죠. 김 셰프는 계속 새로운 걸 해나가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불도장처럼, 저희의 자라 콘소메를 가져가서 두 셰프가 자기 나름의 아이디어로 여러 가지를 더했는데, 그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카와무라 쇼타 셰프 17년 전과 비교하면 식재료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채소나 허브도 이번에 꽤 썼는데 향이 훨씬 좋아졌어요. 일하는 스태프들의 의식도 다르고, 요리의 수준 자체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요네무라 셰프님의 요리를 직접 소개해 주신다면요.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요네무라 셰프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가게를 시작하던 당시에는 남들과 다른 것을 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올해로 33년째인데, 지금은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쯤 돌아서 예전에 하던 것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서랍에서 꺼내고, 거기에 새로 생각한 것을 조합하는, 그런 요리입니다.
쇼타 셰프님의 요리를 직접 소개해 주신다면요.
카와무라 쇼타 셰프 저희는 그렇게 고급 식재료를 쓰지는 않습니다. 여러 기술을 쓰기는 하지만, 식재료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제철 재료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조합으로 묶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희 요리의 핵심입니다.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교토의 ‘모네’
이번 협업을 마친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손님 한 분 한 분을 직접 찾아가, 안부를 묻는 세 셰프
카와무라 쇼타 셰프 이번 협업은 저에게 배움이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두 분 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가게잖아요. 가깝게 지낸다고 해도 제게는 존경하는 사람이고 가게입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공부가 됐고요. 차가운 소멘 요리처럼 지금까지 만들어본 적 없는 요리를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김진혁 셰프 앞으로도 계속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이벤트를 열기만 했지 밖으로 나가는 건 잘 안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을 계기로 올해 하반기에 일본에서 두 번 이벤트를 하게 됐습니다.
요네무라 마사야스 셰프 이 나이에 앞으로의 포부라니, 곤란한 질문인데요. (웃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건강한 한 계속 해나가자, 그 정도예요. 요리를 할 수 있는 한은 해나가고 싶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마치고 모인 셰프들
2009년 세 셰프가 나누던 시간이 2026년 알라프리마에서 다시 만났다. 그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 온 세 셰프의 관점이 하나의 코스로 어우러진 저녁. 서로 다른 스타일이 만나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말하는 요네무라 셰프의 말처럼, 각자의 생각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새로운 맛이 생겨났다. 17년이라는 시간이 서로가 쌓아 온 차이를 존경과 배움으로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