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리 셰프는 디저트 다이닝’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세계라는 무대까지 누비고 있다.
한남동 골목 어귀에 자리한 'JL 디저트 바'의 문을 열면, 세련되고 차분히 정돈 되어있는 손님의 공간인 바 테이블, 그리고 그 너머엔 하나의 정밀한 실험실에 가까운 저스틴 리 셰프의 주방이 있다. 0.1g 단위의 저울, 초콜릿 분사 장비, 은행 수준의 에어컨 시스템, 내부에 갖춰진 세탁기까지.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셰프가 손님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디저트를 완성해 선보이는, 소위 '올 라이브 플레이팅'이다. 저스틴 리 셰프는 삼성동의 첫 매장, 이태원의 챕터 2를 거쳐 지금의 한남동에 자리를 잡고 그의 세번째 챕터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던 자리에서 시작해 길을 열기까지
저스틴 리 셰프가 ‘디저트 다이닝’을 시작한 건 국내에 그 개념 자체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원래 요리사로 20대를 국내 주방에서 보내며 묵묵히 칼을 잡았던 그는, 29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해외 땅을 밟았다. 뉴질랜드와 호주. 늦은 출발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세상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저스틴 리 셰프는 ‘디저트 다이닝’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며 서울의 JL 디저트 바를 넘어, 최근 오사카에 ‘무대(MUDAE) by Justin Lee’를 오픈하며 해외까지 저변을 넓혔다.
"29살까지 해외에 한 번도 안 나가봤어요. 그러다 보니까 세상이 한꺼번에 열린 거죠. 하나를 알고 해외에 나가는 것과 열을 알고 나가는 건 좀 달라요. 국내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니, 시너지가 100이 돼버린 거예요."
열을 알고 나갔더니 100이 됐다는 말. 그게 곧 지금의 JL 디저트 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뉴질랜드에서 그는 디저트와 음료, 발효, 커피가 하나로 녹아드는 공간을 처음 마주했다. '나는 이거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 셰프의 오픈 팀으로 합류해 일하며, 그 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모든 F&B의 집합체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남동 매장, 챕터 3는 단순한 확장이 아니다. 챕터 1과 2에서 쌓아온 고민을 풀어내고, ‘라이브 플레이팅 디저트 바’의 해답이자 그 증명이다.
귀국 후 그가 선택한 JL 디저트바의 첫번째 챕터는 바 테이블 형태였다. 셰프가 손님과 직접 마주 앉아 디저트를 만들어 건네는 공간. 서버가 없으니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셰프가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신뢰가 생기고, 청결이 눈앞에서 증명되는 구조. 하지만 국내 시장은 냉정했다. 디저트를 먹는 사람과 술을 마시는 사람이 공존하는 이 낯선 공간을 대중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 손님이 딱 둘로 나눠졌어요. 디저트 먹는 사람, 하드 리커 먹는 사람. 정확한 컨셉이 없다 보니까 혼란이 있었던 거죠." 낮선 대중에게 그의 방식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윽고 그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다양한 콜라보를 통한 새로운 컨셉의 소개였다.
'매니아의 취향'에서 '대중의 일상'으로 넘어가는, 한국 디저트 시장의 과도기. 저스틴 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세대로 만들며 이 시기를 채워가고 있다.
"저는 정확히 구분지어지는 장르가 아닌만큼, 아예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바꾸고 업계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로 결심한거죠."
그 결심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1억 5천만 원으로 시작한 첫 매장은 결국 1,500만 원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첫번째 보증금을 까먹고 남은 돈으로 JL 스튜디오 챕터 2의 자리였던 이태원 건물 2층에 보증금을 넣고, 900만 원을 대출해 인테리어를 했다.
"돈 벌어서 이거 하나 바꾸고, 테이블 하나 바꾸고, 이런 식으로 운영하던 상황이었죠." 그렇게 다락방 같던 공간은 서서히 저스틴 리만의 개성을 갖추어가며 JL 챕터 2의 모습을 갖추는 토대가 되었다.
셰프로서 20대의 커리어를 보낸 저스틴 리 셰프는 스물아홉, 처음 해외로 떠난길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았다. 늦었다고 여겼던 출발이 오히려 그가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한꺼번에 열어버린 것이다.
전환점은 2021년에 찾아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버버리가 제주도 감자밭 자리에 브랜드 팝업 공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저스틴리 셰프의 디저트와 당시 신생이었던 바 제스트가 콜라보 현장과 연결되며 디저트와 음료를 함께 책임질 기회가 생긴것이다. 제주도 산골 속에 100명의 웨이팅이 걸렸고, 그 뜨거운 반응이 곧 신호탄이 됐다. 이후 지미추, 발렌시아가, 구찌 등 럭셔리 하우스의 케이터링 제안이 줄줄이 이어졌다.
정확히 구분되는 장르 안에 있지 않았던 그는, 그 모호함을 약점이 아니라 업계와 사람들을 잇는 다리의 자리로 받아들였다.
럭셔리 하우스들이 저스틴 리를 찾는 이유는 명확했다. 정교함을 갖추었으면서도 불을 쓰지 않아 냄새가 없고, 무엇보다 '에고'를 고집하지 않았다. 시즌 컬렉션을 받아 그 세계관을 그만의 방식을 더한 '맛'으로 번역해내되, 브랜드만의 무드를 가득 채웠다. 이런 유연함이 지금의 콜라보 씬에서 저스틴리의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었다.
공간을 소비하는 시대, 챕터 3의 설계
이전의 이태원 매장의 면적은 17평이었다. 나무가 많고 코지한, 다락 같은 느낌, 그 자체만의 매력이 있었지만 시대가 변했다. 고객이 공간을 소비하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0.1g의 저울과 1~2도의 서빙 온도, 기준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커피 한 잔, 매일 아침 다림질되는 흰 유니폼까지. 이 모든 철저함은 신뢰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있다.
그리하여 현재의 공간이 탄생했다. 50평 규모의 챕터 3는 설비들만 커진 게 아니다. 공간 설계의 의도가 달라졌다. 주방이 곧 홀이고, 홀이 곧 무대가 되는 구조. 직원들은 흰 유니폼을 입고, 매일 아침 다림질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신뢰'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위한 장치다. 그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켜켜이 쌓인 것을 증명하듯, 디저트를 둘러싼 문화의 두께와 고객층도 달라졌다.
JL 디저트 바의 로고이자, 저스틴 리 셰프 자신을 닮은 픽토그램 모양의 JL 디시. 딸기와 자스민 무스케이크, 바닐라가 이 작은 갸또 안에 겹겹이 자리한다. 이름이자 얼굴이자, 그가 10년간 쌓아온 정체성 그 자체다.
0.1g과 1도 사이, 올 라이브 플레이팅의 세계
JL 디저트 바의 가장 독보적인 요소는 모든 디저트가 손님 눈앞에서 완성된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셰프에게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동시에, 청결과 신뢰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도구가 된다.
그가 메뉴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향도, 온도도 아닌 '식감'이다. 이를 테면 딸기만으로 9가지 식감을 낸 ‘딸기’ 디저트는 한 가지 재료로 다른 식감과 맛을 층위를 낸다는데 의미가 있다. 하나의 디저트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 그가 집착하는 세계다.
딸기라는 하나의 식재료를 아홉 가지 방법으로 조리해 식감으로 쓴 한 편의 변주곡같이 다른 결을 빚어낸 '딸기' 디시
그가 주방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가혹할 만큼 엄격하다. 0.1g 단위의 저울, 1~2도의 서빙 온도. 커피 한 잔을 내릴 때도 추출 시간이 기준치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버린다. 정밀하게 정량화된 시스템이, 그가 자리를 비웠을때도 매장의 퀄리티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다.
요리로만 인식되는 까르보나라를 저스틴리 셰프는 베이컨과 양파, 후추, 파마산을 사용해 디저트 안으로 옮겨왔다. 애플 사이다의 청량함이 짠맛과 감칠맛 사이를 가로지르며, 디저트와 식사의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영감은 일상에서, 메뉴는 문득 찾아온다
저스틴 리 셰프의 레시피 구상은 기획이라기보다 포착에 가깝다. 아버지는 그림을 그렸고, 어머니는 요리사였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던 그에게 영감의 원천은 특정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먼저 천장을 본다.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보고, 듣고, 맛보는 경험이 쌓인다. 어느 순간 문득 튀어나온다.
"뭔가 탁 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영감은 어떻게 계획을 할 수가 없어요."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남다르다. 손님의 반응에 메뉴를 바꾸지 않는다. "51 대 49라고 생각해요.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고, 내가 이 사람 말을 듣고 이렇게 바꾸고 이 사람 말을 듣고 이렇게 바꾼다면 저의 중심이 좀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JL의 계절 시그니처 ‘토마토’ 디시. 마리네이드한 토마토 위로 올리브 크럼블의 거친 결과 바질 소스의 푸른 향이 겹치며 짠맛과 단맛이 한 접시 위에서 어우러진다.
그의 기준은 오직 하나, 자신이 맛있는 것. 대중이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다. 그 명료한 기준이 10년을 흔들리지 않게 했다.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억지스러운 전통의 주입 대신, 좋은 재료가 자연스럽게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식재료를 다루는 올바른 태도다.
무대(MUDAE) by Justin Lee, 오사카에 서다
작년 6월, 오사카 콘래드 호텔 측으로부터 한통의 메세지가 왔다.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제안뿐만 아니라, 역오퍼까지 오갔지만, 그는 공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했다.
그림을 그렸던 아버지와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그에게, 메뉴는 계획되는 것이 아닌 레스토랑의 천장에서, 호텔의 하룻밤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순간과 그 포착이다.
이렇게 탄생한 '무대(MUDAE) by Justin Lee'는 국내 개인 디저트 브랜드 최초의 해외 단독 진출이자, 자신의 IP를 연간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첫 사례로 알려졌다. 이름이 하나의 자산이 됐다는 뜻이다.
메뉴의 방향은 명확했다. 한국 셰프의 시선으로 일본 식재료를 해석하는 것. 홋카이도산 생크림, 현지 제철 과일. 언어도 문화도 다른 스태프들을 직접 한국으로 불러들여 트레이닝했고, 모든 레시피를 정량화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입가심 문화를 바꾸고 싶다
저스틴 리 셰프는 현재의 한국 디저트 시장을 '과도기'라는 말로 진단한다. 매니아 중심의 소비에서 일반 대중이 인지하고 즐기는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아메리카노도, 믹스 커피도 결국은 입가심이다. 그 입가심이 스위트로 넘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20대, 30대들이 먹잖아요. 그 사람들이 40대, 50대가 되면 자기 자식들도 그걸 먹게 될 거란 말이죠. 시간이 필요한 거고, 우리는 그거를 계속 푸시해야 되는 거예요." 변화는 세대를 통해 온다. 그는 그 긴 호흡을 믿는 사람이다.
정교하면서도 에고를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으로 브랜드의 세계관을 맛으로 번역해내는 JL의 디저트는 그 자체로 수많은 럭셔리 하우스가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가 된다.
그는 후배 파티시에들에게 "디저트에만 갇혀 있지 말고, F&B라는 큰 식문화로 보고,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며 바운더리가 넓어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기회도 많아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얇고 길게, 그러나 충분히 깊게
업계와 미식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고인물." 그러다 웃으며 덧붙였다. "23년 했는데, 앞으로 35년을 더 해야 하잖아요. 나이 들어도 건강하게 오래 하는, 그냥 디저트 하는 셰프로 남는 게 제 꿈입니다."
저스틴 리 셰프는 후배들에게 바운더리를 넓힐수록 기회도 넓어진다고 말한다. 디저트라는 틀에 갇히지 말고, F&B라는 더 큰 식문화로 시야를 넓히라는 조언이다.
파티시에가 아니다. 케이크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디저트 하는 셰프. 그 말 안에 10년의 고집이 다 들어 있다. JL의 챕터 3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사카의 ‘무대’는 이제 막 문을 열었고, 다음 콜라보 목록은 이미 머릿속에 가득하다. '얇고 길게 가겠다'는 말을 하며 그는 웃었다. 이미 충분히 두껍고, 충분히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