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의 프렌치 경험은 한이서울의 한우 한 점과 반상, 묵은 꽃게장 위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프렌치는 방법으로만 스며 있을 뿐, 상에 오르는 것은 온전한 한식, 그리고 마산의 맛과 기억이다.
1970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 2층.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안쪽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긴 창으로 광화문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장한이 셰프가 이끄는 한식 다이닝 '한이서울'이다. 오랫동안 프랑스 요리에 몸담아 온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식당에서 프렌치가 아닌 한식을, 그것도 숙성 한우를 다룬다. 큰 방향 전환처럼 보이지만, 그의 설명은 담담하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손님을 대하는 자세는 바뀌는 게 없어요. 바뀐 건 장르뿐이죠.”
한이서울의 장한이 오너셰프
다이닝 바 사브서울을 운영할 때도, 포숑 코리아를 총괄할 때도, 지금도 같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태도에 걸린 책임의 무게다. 오너 셰프가 된 뒤, 그 무게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다.
마산에서의 시작과 불타는 솔방울
장한이 셰프는 마산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와 마산 앞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배수로에 마른 솔잎과 솔방울을 주워다 불을 피워 구워 먹던 것이 그가 기억하는 첫 직화구이다. 한이서울의 로고가 불타는 솔방울 모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산의 기억은 지금의 메뉴에도 남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분 좋은 재료였던 미더덕은 마산에서 직송으로 받고 경상도 노포 고깃집의 상징 같은 시래기국은 대멸과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어 깊게 끓여 낸다. 손이 많이 가 사라져 가는 국을, 그는 자신의 기억을 다듬어 상에 올린다.
어린 시절 기억이 담긴, 한이서울의 로고(좌), 한이서울의 주방(우)
에꼴 뒤카스와 포숑에서 익힌 기본기와 조직
그의 이력은 프랑스 유학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설립한 에꼴 뒤카스(École Ducasse)를 택한 이유는 소수 정예 운영 방식과, 세계 최고로 꼽히는 셰프의 철학을 배우려는 목적이었다. 이 시기 그가 가장 깊이 내면화한 것은 '기본'이다. 어떤 난도의 요리와 시험에도 늘 기본기가 전제되었고, 그것을 완벽히 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게끔 훈련받았다.
인턴십을 앞두고 학교는 실습 과정 수석이었던 그를 다른 유명 레스토랑에 보내고자 했지만, 그는 입학 때부터 장프랑수아 피에주(Jean-François Piège) 셰프의 르 그랑 레스토랑(Le Grand Restaurant)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미쉐린 2스타인 르 그랑 레스토랑에서 그는 여섯 가지의 주(Jus)와 일곱 가지의 버터 소스를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혼자 맡았다. 하루 열여섯 시간이 기본, 휴무 전날이면 열여덟 시간까지 이어지던 시절이다. 그래도 셰프스 테이블에 앉은 어느 프랑스 노부부가 소스를 만드는 그를 불러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었을 때,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답하던 순간을 가장 보람 있던 기억으로 꼽는다.
오랜 프랑스 유학 생활을 거친 장한이 셰프
귀국 후 그는 만 스물일곱에 포숑 코리아(Fauchon Korea)의 총괄 셰프가 됐다. 이른 나이에 공장과 제품, 매장 여러 곳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처음 맡은 총괄이었던 만큼 요리 밖의 영역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처음부터 배워 나갔고, 2년 반에 걸쳐 조직을 운영하고 사람을 이끄는 법을 익혔다. 중견·대기업 규모의 조직에서 일하며 상권과 가격대, 매출 구조를 함께 읽는 훈련을 쌓았고, 그가 한이서울을 즉흥적 도전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결과라고 말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가온에서 발효와 한식의 언어를 배우다
프랑스 유학을 마친 뒤 그가 향한 곳은 또 다른 프렌치 주방이 아니라 미쉐린 3스타 한식 다이닝 '가온'이었다. 정통 한식을 제대로 익히려는 선택이었다. 가온에서 그가 맡은 일은 메뉴 개발 혹은, 소스와 같은 조리 파트가 아니라 발효를 기반으로 하는 김치, 젓갈, 반찬이었다. 관리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담가 봐야 한식 발효의 섬세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그는 김치와 젓갈을 손수 담갔다. 일주일에 깍두기 80kg, 백김치 80kg, 배추김치 20kg에 짠지까지 더해 적지 않은 양이었다. 그렇게 그는 백김치의 산미와 숙성도, 김치의 간과 식감, 최고급 젓갈의 맛을 이 시기에 몸으로 익혔다. 발효라는 한식의 핵심 영역이 그의 요리 세계에 자리 잡은 지점이다.
한이서울의 반상 — 白육회비빔밥
보이지 않는 프렌치 테크닉, 맛에는 오롯이 한식만 남긴다
한이서울의 요리를 이해하는 핵심은, 프렌치 테크닉을 한식에 적용하되 그 흔적을 맛에 남기지 않는 데 있다. 서양 식재료와 프렌치 소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퓨전 한식과 달리, 재료도 방식도 철저히 한식을 기본으로 두고 재료를 가장 잘 살려 내는 방법으로서만 그 테크닉이 조용히 사용된다.
오랜 시간 깊은 맛을 담았지만, 재료의 생동감은 살아 있는 한이서울의 '국'
시래기국과 미역국, 해물된장의 육수를 그는 프렌치의 퓌메(fumet) 뽑는 방식으로 우려낸다. 그러나 완성된 국물에서 양식의 터치는 느껴지지 않는다. 해물된장이 대표적이다. 미더덕과 바지락, 새우를 한데 넣고 끓이는 대신, 각 재료의 익힘 정도를 달리해 따로 조리하고 따로 보관한다. 육수만 오랜 시간 끓여 두었다가 손님상에 나가는 타이밍에 재료를 넣는다. 그래서 원물이 쪼그라들지 않고, 살짝 데친 상태로 진한 국물에 담겨 나간다. 반찬에도 같은 원리가 흐른다. 홍고추 피클은 피클링 방식으로 만들되 장아찌 재료를 써서, 짜게 튀지 않으면서 입안의 잔향을 산뜻하게 끊는다.
프랑스의 퓌메 방식으로 국의 깊이와 식재료의 신선한 식감을 동시에 담아냈다
바삭한 겉면부터 누룩 숙성까지, 한우를 다루는 법
서울에 한우 오마카세와 한식 다이닝이 늘어난 가운데, 한이서울이 스스로에게 세운 원칙은 명확하다. 반찬부터 소스, 식사, 후식까지 양식의 요소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성 있는 한식으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국산 재료만 쓰며, 다이닝 코스 역시 예외 없이 전부 한식이다.
최상급 한우를 사용하는 한이서울
그는 겉면을 바삭하게 하여 텍스처에 초점을 두면서도, 육즙과 본연의 육향을 온전히 살려낸다. 모든 부위를 통으로 구워낸 뒤 레스팅을 거쳐 잘라 내는데, 근섬유 사이에 열이 충분히 들어가지 않으면 근섬유가 변형되지 않아 기름이 녹지 않고 섬유질이 씹히는 느낌도 살아나지 않는다. 그만큼 굽는 과정에 세심한 정성이 요구된다. 결을 살리고 끊는 지점까지, 모든 것이 의도된 설계다.
백국균을 입힌 쌀입국으로 감싸 숙성한 채끝. 표면의 쌀알과 선명한 마블링의 단면이 드러난다
숙성에서도 그의 발효 이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백국균(白麴菌)을 입힌 쌀입국을 명인에게 직접 받아 쓴다. 입국은 양조장에서 술의 방향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료로, 백국균은 발효 과정에서 맑고 청아한 산미를 만들어 낸다. 장한이 셰프는 이 입국을 채끝 표면에 붙여 숙성시킨다. 백국균이 만들어 내는 청량한 산미가 채끝 표면에 배어들면서, 혀에 처음 닿는 순간의 느끼함을 덜어 주는 장치다.
숙성을 마친 채끝은 입국을 붙인 표면을 칼로 도려내지 않고 숟가락으로 긁어낸다. 표면에 남은 쌀알 알갱이들이 고기와 함께 기름에 구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4일간 숙성을 거친 채끝은, 백국균의 산미와 쌀알의 고소함이 육향과 함께 겹겹이 쌓인 한 점이 된다. 가온에서 김치와 젓갈로 익힌 발효의 감각이 한우라는 재료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지점이다.
꽃게부터 소금까지, 산지에서 직접 찾아낸 재료들
게장과 미더덕, 바지락과 소고기, 고춧가루와 참기름, 들기름까지 한이서울의 재료는 그가 직접 산지를 돌며 찾은 것이다. 시그니처인 묵은 꽃게장의 꽃게가 대표적이다. 여수를 여행하던 중 어느 작은 식당에서 우연히 맛본 꽃게의 맛을 잊지 못해, 그는 여수에서 좋은 품질의 게를 잡는 어부를 수소문했다. 이미 거래처가 줄 서 있다며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연락을 이어 갔고, 결국 직접 여수까지 내려가 마주 앉아 진심을 전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된 거래는 꾸준히 쌓은 신뢰 속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이서울의 게장은 그 정성 위에 담긴다.
여수 꽃게로 담근 묵은 꽃게장
겉절이의 완성도는 고춧가루에서 갈린다. 향이 옅은 수입산 대신 국산 고춧가루를 고운 것, 중간 것, 굵은 것 세 가지로 나눠 방앗간에서 받는다. 고운 것은 색을 위해, 굵은 것은 씹었을 때의 향을 위해 쓴다. 소금은 스무 종 넘게 갖추고, 소고기와 어울린다고 판단한 여섯 가지를 골라 손님이 직접 고르게 한다. 그중 함초 소금은 프랑스 다이닝에서 계절 재료로 쓰이는 함초를 접한 경험에서 왔다. 아삭한 식감과 미네랄 감이 육류와 어울린다는 것을 현지에서 확인하고, 국내에서 구현한 소금이다.
타이머 없는 주방, 감각을 우선하는 훈련
주나 육수를 뽑을 때, 고기를 구울 때 그는 타이머를 쓰지 않는다. 대신 오감을 쓴다.
“불판에 고기를 올리면 '치익—' 소리가 나잖아요. 그건 증발하는 수분에서 오는 소리예요. 그 소리가 사그라들면 수분이 증발한 거죠. 귀를 계속 열어 두라고 해요.”
감각을 우선하는 태도는 도구에까지 이어진다. 한이서울의 불판은 두께와 열 지속성까지 구체적으로 요청해 직접 주문 제작한 것이다. 무쇠로 만들어 무겁고 두꺼워 열을 잘 머금는다. 공기의 설계도 세심하다. 숯불 연기가 위로 잠시 올라가 고기에 닿았다가 아래로 빠지도록 구성해, 고기에는 숯의 향이 배되 연기가 공간에 떠다니지 않는다.
좌석마다 불판이 자리한 한이서울의 홀. 공간에 냄새가 남지 않게 설계되었다
모든 경험의 집합체 — 지금, 그리고 앞으로
숙성 한우를 중심에 둔 것은 그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모인 결과다. 숙성과 발효는 떼려야 뗄 수 없고, 한우구이는 경사와 상견례 같은 좋은 날과 함께하는 음식이다. 여기에 그가 다뤄 온 숙성과 발효의 기술을 더해 그 특별함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는 이전에도 ‘모도우’, ‘한암동’과 같은 규모 있는 한우 다이닝을 총괄하며 고깃집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의 감각부터 프랑스 유학, 한식, 그리고 고깃집 운영까지, 한이서울은 그 시간이 모인 공간이다. 투자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상권 분석과 매출 근거를 담은 사업 계획서로 부모님을 설득해 마련한 자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계획해 연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발효의 시간을 살피고 있는 장한이 셰프
그가 품은 목표는 자신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건 노부 마츠히사 셰프처럼, 최고급 호텔에 이름을 건 식당을 입점시켜 한식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다. 현재 LA와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뉴욕까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이어 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출발점이 이 광화문의 주방이다.
“'천재란 원할 때 언제든 되찾을 수 있는 유년기일 뿐이다'라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말처럼, 저도 이 공간에서 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많은 분들께 제 어린 시절의 맛을 보여드리는 중입니다.”
결국 한이서울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익힌 테크닉과 오랜 발효의 시간을 바탕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 마산의 맛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