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식이나 유행보다,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이야기하는 최규성 셰프에게 제과란 무엇이며, 좋은 디저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물었다.
프랑스어로 잘 익은 과일을 뜻하는 단어, ‘Mûr’. 2024년 말 한남동에 문을 연 파티세리 뮤흐, 살롱 드 뮤흐는 업계에서 잘 알려진 최규성 셰프가 제과인으로 살아오며 축적해 온 시간과 변화,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선보이는 무대다. 프랑스에서 11년을 보내며 클래식 제과의 뿌리를 배우고, 파리의 수많은 현장과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세드라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고, 현재는 뮤흐에서 한층 성숙해진 제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살롱 드 뮤흐 내부 (Photo: floi-lighting)
클래식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기까지
최규성 셰프의 시작은 조금 남달랐다. 몸이 좋지 않아 중학교를 자퇴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때 처음 제과라는 분야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프랑스로 향했다. 한국의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대신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결정이었다. 프랑스 국립제과제빵학교(INBP)에서 제과와 제빵을 모두 공부한 뒤에도 그는 배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유명한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학교는 시작에 불과했어요. 결국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프랑스 생활은 몇 줄의 이력보다 훨씬 길고 복잡했다. 이름난 레스토랑뿐 아니라 작은 동네 제과점까지, 규모와 명성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다. 첫 스타주를 했던 리옹의 파티세리에서는 초콜릿과 비에누아즈리(Viennoiserie), 제과의 기본기를 익혔고, 비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했던 작은 빵집에서는 더 자유롭게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었다. 화려한 커리어보다, 제과를 몸으로 익히기 위한 시간이 반복됐다. 크고 작은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며 그의 기술 뿐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단단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무대는 파리의 로얄 몽소 호텔(Le Royal Monceau-Raffles Paris)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피에르 에르메 제과팀과 함께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레시피를 가까이에서 익힐 수 있었다. 최 셰프는 지금도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기술보다 '설계'라는 단어를 먼저 꺼낸다. “피에르 에르메의 레시피에는 재료를 어떻게 부각시킬지, 어떤 텍스처를 만들지, 마지막에 어떤 조화를 이루게 할지가 모두 담겨 있었어요. 기술적으로 만드는 법이 아니라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디저트 원리의 설계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2015년, 11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피에르 에르메와 디올이 함께 선보인 국내 첫 플래그십 디저트 공간인 ‘카페 디올 바이 피에르 에르메’의 수셰프를 맡았다. 당시 모든 디저트는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후 총괄 셰프를 거쳐 2018년 자신의 브랜드인 세드라를 오픈하며 프렌치 클래식을 중심에 둔 디저트를 꾸준히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 최 셰프는 뮤흐를 통해 더욱 성숙한 방향으로 제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파티세리 뮤흐, 살롱 드 뮤흐를 총괄하는 최규성 셰프
좋은 디저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
최규성 셰프는 인터뷰 내내 기술보다 먼저 '행복'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그에게 디저트는 생존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선물이다. 그래서 좋은 디저트의 첫 번째 조건 역시 복잡한 설명이나 난해한 해석이 아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는 경험, 그것이 디저트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첫 입을 먹었을 때 표정이 밝아지는 그 찰나의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디저트가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행복이라는 감정은 결코 감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는 디저트 역시 결국 음식인 만큼 맛이라는 본질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셰프가 설계한 당도와 산미, 질감과 향이 하나의 균형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맛의 밸런스를 수학처럼 계산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경험이에요. 수많은 재료를 직접 맛보고 시도하는 반복된 경험이 몸에 쌓였을 때 흔들리지 않는 균형이 만들어집니다. 밸런스는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감각입니다.”
정교한 밸런스가 인상적인 크리스마스 트러플 케이크(좌)와 '봄의 잔향'이라는 이름의 딸기와 루바브 그리고 바닐라 크림을 사용한 타르트(우)
산미와 유지방의 관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그는 산미가 유지방을 압도해서도, 유지방이 산미를 덮어서도 안 된다고 설명한다. 부드러운 유지방 위에 산미가 자연스럽게 얹히며 서로의 단점을 감싸 줄 때 비로소 풍미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텍스처 역시 특정 질감을 고집하지 않는다. 바삭함이나 부드러움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각각의 재료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는 질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모든 선택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재료가 가장 맛있게 전달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최 셰프가 가장 아쉬워하는 디저트 역시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형을 갖췄더라도 맛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디저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디저트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 아름다움이 입안에서 이어지지 않는다면 큰 실망을 느껴요. 겉모습에만 치중한 디저트는 공예품일 수는 있어도 좋은 음식은 아닌 거예요. 눈으로 느낀 즐거움이 그대로 맛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디저트는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안 감자 무스 케이크(좌), 파리 랑부아지(l'ambroisie)의 시그니처 디저트를 오마주한 수플레 쇼콜라 타르트
그가 말하는 '고급스러움' 역시 비싼 재료나 화려한 기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고, 어떤 태도로 제품을 대하는지가 먼저다. 기술은 그 감정을 현실로 구현하는 도구일 뿐이며,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저트는 셰프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지금도 클래식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에서 처음 제과를 배울 당시, 모든 제품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축적되어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 처음 마주한 프랑스 제과는 - 그의 시각으로는, 때로는 기준을 잃은 채 여러 요소가 뒤섞인 모습으로 보였다고 회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피낭시에, 마들렌, 바바, 쿠글로프(Kouglof) 같은 클래식 제품을 중심에 두었다. 판매량보다 먼저 사람들이 프랑스 제과의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국 모든 것은 근본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재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이름이 가진 본질까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기준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표현을 시작합니다.”
봄의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시트러스를 활용한 바바(좌), 사과 따땅(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도 정석을 따른다. 가장 중요한 식재료를 정하고, 어울리는 재료를 찾고, 가장 적합한 질감을 설계한 뒤 수없이 테스트를 반복한다. 외형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난 뒤 가장 마지막으로 더해지는 요소다. 불필요한 장식과 색소를 최대한 덜어내는 이유 역시 같은 철학에서 비롯된다. 보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맛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디자인. 최 셰프가 추구하는 절제는 결국 디저트의 본질, 입 안의 즐거움과 기억에 남는 기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프레지에에 담긴 클래식의 가치
최규성 셰프를 대표하는 디저트 가운데 하나인 프레지에는 그의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지에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디저트에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거든요.” 최 셰프가 선보이는 프레지에의 핵심은 딸기가 아니라, 모든 요소가 하나의 균형을 이루는 순간에 있다. 무슬린 크림(Crème pâtissière)의 질감은 딸기의 단단함과 최대한 비슷해야 하고, 팽 드 젠 비스퀴(Pain de Gênes Biscuit)는 단순히 크림을 받치는 구조물이 아니라 아몬드의 풍미를 통해 전체 균형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마지팬의 두께, 피스타치오의 고소함, 딸기의 산미와 과즙까지 각각의 요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뮤흐의 프레지에
그는 맛에도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첫 입에서는 마지팬의 부드러운 단맛과 아몬드 향이 미각을 깨우고, 이어 피스타치오 무슬린 크림의 깊은 고소함이 입안을 감싼다. 그 직후 딸기의 산미와 과즙이 무거워질 수 있는 유지방을 정리하며 풍미를 확장하고, 마지막에는 팽 드 젠 비스퀴의 견과류 향이 긴 여운을 남긴다. 그는 이를 '견과류의 이야기 위에 딸기라는 변주를 더한 교향곡'이라고 표현했다.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더 많은 고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무슬린 크림의 유화 과정, 서로 다른 재료가 입안에서 하나의 질감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미세한 조정은 손님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최 셰프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디저트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계절이 바뀌면 프레지에도 사라진다. 그는 같은 구조에 과일만 바꾸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는다. 계절이 달라졌다면 그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디저트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디저트는 특정 재료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순간의 재료를 가장 좋은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살롱 드 뮤흐에서는 디저트와 주류의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다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달콤함의 순간
뮤흐는 화려한 장식이나 새로운 기법으로 재미를 찾아 가는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클래식의 기준 위에서,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전하고자 하는 셰프의 집념이 우선이다. 최규성 셰프가 말하는 좋은 디저트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어 기억을 남기지만, 달콤한 디저트를 앞에 두고 경험하는 시간은 유한하기에 더욱 특별하다.
“사진은 멈춰버린 시간의 시각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오감을 통해 유한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겠죠.” 뮤흐라는 이름처럼, 그의 제과는 지금도 그렇게 한 단계씩 성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