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결을 전하는 자유로움, ‘명보당’ 임현주 셰프

뉴욕의 가장 뜨거운 주방을 거치며 단단히 쌓아 온 맛에 대한 관점과 기술, 그리고 ‘산미’의 감각은 명보당을 채우는 임현주 셰프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된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주방,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이 가장 좋다고 그는 말한다. 청담동의 한 건물 3층, 오픈 키친을 가운데 두고 손님과 마주 앉는 다이닝 '명보당(Myungbodang by Ju)'의 임현주 셰프다. 그는 묵묵하지만, 대신 요리가 그를 말해 준다. 뉴욕의 미쉐린 스타 주방을 두루 거쳐 미쉐린 3스타 '더 셰프스 테이블 앳 브루클린 페어(The Chef's Table at Brooklyn Fare)'의 헤드 셰프를 지냈지만, 지금 그는 '하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즐겁게 말한다.

오픈 키친을 등지고 서있는 명보당의 오너인 임현주 셰프

서른둘, 홀로 짐을 싣고 뉴욕으로

임현주 셰프의 시작은 정해진 길과 거리가 멀었다. 열아홉,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던 그에게 어머니는 '커피숍이라도 해 볼래?' 하며 작은 가게를 열어 주셨다. 커피숍에서 커피만 팔지 않던 시절이라 직접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며 요리에 재미가 붙었다. 마침 건물 맨 윗 층에 요리학원이 있어 처음으로 요리를 배우다가, 학원 선생님의 소개로 오랜 호텔 경력의 한 셰프에게 이른 아침마다 육수 내는 법과 칼질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미국의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다만 요리의 길은 곧장 이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스무 살에 어머니를 도우러 조지아로 건너갔다. 잠시 도울 생각이었지만 여러 일들이 얽히며 그 잠시가 10년이 되었다. 꼬박 서른둘이 되어서야 그는 홀로 뉴욕으로 향했고, 어학원을 거쳐 그해 CIA에 입학했다. 20대의 학생들 틈에서 숫기 없는 그는 한동안 겉돌았지만, 차근차근 미국에서의 요리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미국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임현주 셰프

오이스터를 까며 — 오시아나에서 배운 모든 것

학교에서 인턴을 나갈 때가 되어서야 그는 '미쉐린 가이드'가 무엇인지 알았다. 해산물을 좋아하고 잘 다뤘던 그는 막연하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쉐린 3스타 해산물 레스토랑 르 베르나댕(Le Bernardin)에 가고 싶었다. 메일을 보냈지만 답신이 없었고, 교수님의 추천서를 들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레스토랑의 셰프가 학교에 졸업 축사를 온 날, 그는 수업을 빠지고 끝까지 기다렸다가 직접 추천서를 건넸다. 오랜 노력 끝에 '한 번 와 보라'는 답을 들었지만 막상 마주한 주방은 너무 엄격했고, 인턴의 일이라곤 작은 잔에 수프를 따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결국 그가 택한 곳은 해산물을 잘하기로 소문난 미쉐린 1스타의 오시아나(Oceana)였다. 트라이얼에서 소스를 직접 보여 주고 튀겨 보게까지 해 준 그 주방의 열정이, 그의 마음을 정하게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인턴 3개월은 오직 굴을 까는 시간이었다. 손목이 마비될 듯 아팠지만, 힘든 티를 내면 일을 하지 못할까 봐 키친타월 여러 겹을 손에 감고 약을 먹으며 버텼다. 하지만 훗날 그는 '기본은 오시아나에서 다 배웠다'고 회상한다. 졸업 후 이곳에서 2년 가까이 일했다. 그사이 잠시 한국에 돌아와 요리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오시아나로 돌아왔다. 라인 쿡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 그는, 수셰프 승진에서 한 번 밀려 실망했을 때 오시아나의 벤 폴린저(Ben Pollinger) 셰프에게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 ‘이곳보다 더 넓고 높은 곳으로 가라.’

그렇게 그는 장 조지(Jean-Georges)로 향했다.

소스를 준비하고 있는 임현주 셰프

장 조지에서 눈을 뜨다 — 일식의 터치와 소스

장 조지의 주방은 더욱 냉정한 경쟁의 세계였다. 캐주얼 레스토랑 누가틴(Nougatine)을 거쳐 빠르게 본점 주방으로 올라간 그를, 사람들은 처음엔 냉담하게 대하기도 했다. 소금 한 톨까지 그램으로 재는 정밀함은, 새로운 변주를 시도해 보고 싶던 그에게 조금 답답한 순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눈이 뜨일 만큼 맛있다'는 감각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일식의 터치에 눈을 떴다. 생강을 다루는 방식 하나에도 '나도 이렇게 해 보고 싶다'고 느꼈고, '소스'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후 오시아나의 벤 셰프를 다시 도우며 두 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수셰프가 되었고, 프라이빗 파트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음식을 만들어 보게 된다.

바삭한 사워도우에 우니와 진저 소스 참치, 시소를 올린 한 입 —  섬세한 재패니즈 터치가 살아있다

세자르 라미네즈 셰프와의 만남 그리고 '산미' — 미쉐린 3스타 주방의 헤드 셰프

장 조지를 나온 뒤, 우연한 계기로 페이스트리를 거의 모르던 그가 미쉐린 2스타 아테라(Atera)에서 디저트 파트를 맡게 되었다. 그는 남들보다 세 시간씩 일찍 출근해 빈 주방에서 홀로 연습했고, 두 달 만에 디저트를 완성해 냈다. 

작은 주방을 그리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세자르 라미네즈(César Ramírez) 셰프를 만났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첫 대화에서 둘은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울기도 했다. '같이 해 보자'는 말로 시작된 인연은 서너 명이 전부이던 작은 주방으로 이어졌다. 자리가 넉넉지 않아 처음엔 한 발 물러서서 눈치를 살피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한 접시 한 접시에 집중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시간이 흘러 레스토랑이 맨해튼으로 옮긴 뒤, 비로소 세자르는 그에게 헤드 셰프를 맡겼다. 식료품점 뒤, 오픈 키친을 둘러싼 카운터에서 섬세함을 전하는 미쉐린 3스타 '더 셰프스 테이블 앳 브루클린 페어'의 주방을 한국인인 그가 이끌게 된 것이다. 세자르와 일하며 그는 '산미'를 알게 되었다. 다양한 식재료가 품은 신선한 상큼함이 요리에 생동감을 더한다는 것을 체득했다. 단순한 듯 정돈된 플레이팅에 대한 미감도 이곳에서 더욱 정교해졌다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 명보당 팀

어머니, 그리고 한국으로 — 이타닉 가든과 명보당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갈지 망설이던 그는 어머니 곁을 지키기로 하고 한국에 남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서울에서, 우연한 인연이 이어져 조선 팰리스 호텔의 컨템포러리 다이닝 '이타닉 가든' 오픈 멤버로 한국 무대에 섰다. 하지만, 작은 주방에 익숙했던 그에게 큰 조직의 세세한 절차는 낯설었다. 또한, 새로운 팀 멤버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들의 언어로 맞춰 전달하는 것도, 뉴욕에서 쓰던 품질의 식재료를 구하는 것도 모두 시험대였다. 모든 도전이 그렇듯 성공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오픈 반 년이 되지 않아 첫 한국에서의 무대는 막을 내려야 했다. 임 셰프는 '내가 너무 어설펐고, 자존심도 셌다'고, 그때를 솔직하게 돌이킨다.

이타닉 가든에서 처음 선보였던 농어 세비체와 달콤한 멜론 소스 — 부드럽게 사라지는 멜론을 소스로 옮겨 담았다

이후 쓰고 싶은 식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곳을 찾아, 주식회사 ‘오픈’과 함께 ‘명보당’을 오픈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의 무리한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정상황이 악화되며 명보당 역시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임 셰프는 한동안 문을 닫을지 고민했었지만, 결국 명보당을 직접 회사로부터 인수해 '명보당 by Ju'로 다시 열었다. 온전히 자신의 식당이 된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

세 주방이 만나는 자리 — '누 아메리칸 프렌치'

임현주 셰프는 자신의 요리를 '누 아메리칸 프렌치(Nu-American French)'라 부른다. 클래식 프렌치도, 재패니즈 프렌치도 아닌, 미국에서 보낸 20년이 녹아든 그만의 변주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지금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기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주방이 아닌, 처음으로 오너 셰프가 되어 선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세 주방의 시간이 겹쳐 있다. 기본기와 테크닉은 오시아나에서, 소스에 대한 감각은 장 조지에서, 그리고 '산미'와 단순한 듯 정돈된 플레이팅은 브루클린의 세자르에게서 왔다. 세 곳에서의 경험이 이제야 비로소, 한 접시 위에서 임현주 셰프만의 언어로 합쳐진다.

그의 요리는 프렌치를 토대로 일식의 터치를 더하고, 한 접시에 단맛·신맛·짠맛·감칠맛을 함께 담아내려 한다. '그러면 다 비슷해지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강약의 조절을 이야기한다. 그 균형 속에서 여러 레이어의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카카오 타르트 쉘 위 불향을 입힌 완두콩과 초리조의 아뮤즈(왼쪽) 랍스터 요리를 준비하는 임현주 셰프(오른쪽)

접시 위의 명보당 — 정말 하고 싶은 요리

겨울 시즌의 금태 — 숯불에 익혀 랍스터민트 소스를 곁들였다

가장 아끼는 접시 중 하나는 지난 겨울 시즌의 금태다. 토마토와 레몬그라스, 랍스터로 비스큐 소스를 만들고, 불을 끈 뒤 민트를 깊이 우려 향을 입혔다. 무겁기 쉬운 비스큐 소스를 가볍고 향긋하게 풀어낸, 그만의 랍스터민트 소스가 킥이 되는 접시다.

1년을 기다려 올린 이번 여름 시즌의 코코차 — 감자펜넬 라구와 다시 사바용

이번 여름의 주인공은 코코차(Kokotxa)다. 대구 턱살을 뜻하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이 식재료를 그는 1년을 기다려 다시 손에 넣었다. 뉴욕 브루클린 시절 여름휴가로 떠난 스페인의 한 비스트로에서 세 가지 방식으로 맛본 코코차에 반했다고 한다. 뉴욕으로 돌아와 세자르와 함께 메뉴에 올렸던 요리이기도 하다. 담백한 생선의 식감과 콜라겐의 쫄깃한 텍스처를, 감자와 펜넬 라구, 밀도 있는 다시 사바용이 부드럽게 감싼다.

요리에 새로운 색채와 미네랄리티를 더하는, 정우영 소믈리에님의 페어링 라인업

자유로움 —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너 셰프의 자리는 고되다. 영업을 챙기고 직원을 이끌고, 인건비를 헤아리는 일이 매일 따른다. 그래도 그는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다. 아무도 없는 주방의 문을 여는 아침이 즐겁고, 주말에 홀로 나와 새로운 것을 연습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에는 살며시 밝은 웃음이 번진다. 그가 거듭 꺼내는 단어는 '자유로움'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작은 공간을 그린다. 함께 일하는 이들이 먼저 다가와 더 많은 것을 배워 가기를, 그래서 그들 또한 멋진 미래를 펼쳐 가기를 바란다. '아직 멀었다'고 솔직하게 웃으면서도, 그 모든 시도가 그저 즐겁다고 말한다.

직원들과 마지막 플레이팅을 점검하는 임현주 셰프

묵묵한 그의 주방에서 가장 다채로운 말을 전하는 것은 결국 요리다. 그리고 그는 매일, 거의 모든 순간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맛있나?’

사람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내고 싶다는 요리의 순수한 본질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하는 임현주 셰프는 오늘도 그 답을 찾고 있다.

단락

Writer 최진우 (Jinu Choi)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명보당 (Myungbodang by Ju), 이정윤,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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