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한 음식점이 지역을 대표하며, 오랜 세월을 이어갈까에 대한 부산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이야기.
1964년 부산 해운대에서 문을 연 해운대암소갈비집은 창업주인 고 윤석호 회장이 시작한 한우갈비 전문점이다. 방 세 칸 규모의 작은 식당은 해운대의 변화와 함께 자라, 한국 최대의 관광지를 대표하는 이름난 식당이 되었다. 그러나현재경영을 맡고 있는 3대 윤주성 대표가 이 집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맛도, 서비스도, 청결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기본이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장소성’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윤주성 대표에게 이 식당의 어린 시절 기억은 가업이라는 말보다 훨씬 사적이다. 할아버지 집 마당을 나서면 고기 굽는 냄새가 났고, 불판 닦는 소리가 들렸다. 사촌들과 주차장에서 숨바꼭질 하고, 주방과 카운터로 가면 직원들이 반겼다. 그 시절 주차장에서 일하던 직원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는다.
1964년 문을 연 뒤 해운대 한자리를 지켜 온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전경
헤리티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
윤 대표가 가업을 처음부터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20대 시절, 그는 자신의 길을 걷고 싶어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며 브랜드가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고 관리하는지 보았다. 새롭게 만든 역사조차 그렇게나 중요하게 다뤄진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진짜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2015년 아버지 윤성원 회장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사무실도, 홀도 아닌 고기를 다루는 육부실이었다.
윤주성 대표가 가업의 첫발을 뗀 육부실. 갈비 정형부터 하나씩 몸으로 익혔다
미국 요리 명문 학교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했지만 고기 정형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손가락을 베이고 허벅지를 찔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일부터 시키는지 원망스러웠지만, 갈비 정형부터 양념과 반찬 만드는 법까지 하나씩 배우며 생각이 달라졌다. 식당을 잇는다는 것은 이름을 물려받는 일이 아니라, 그 맛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 경험은 그가 2018년 뉴욕 맨해튼에 윤 해운대갈비를 열며 비로소 가치를 제대로 드러냈다. 직접 배우지 않았다면 주방의 상태를 판단할 수도, 직원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뉴욕의 윤 해운대갈비는 팬데믹을 지나 2021년 뉴욕타임스(NYT)가 발표한 뉴욕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되었고, 이어 2023년에는 뉴욕 100대 레스토랑에도 59위로 이름을 올렸다. 오래된 이름을 유지하는 일에는 수십 년간 이어온 맛뿐 아니라, 그만큼 커진 조직과 수많은 손님을 함께 책임지는 일이 따른다. 해운대암소갈비 본점 운영법인의 2025년 매출은 199억원, 본점의 직원은 82명에 이른다.
“그때 우리가 갔던” 식당
윤 대표는 “우리 가게는 베스트 레스토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가 갔었던’ 레스토랑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저 유명하고 인기 있는 식당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의 인생의 특정한 기억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다. 뉴욕에서 윤 해운대갈비를 운영할 때도 손님들은 해운대에서의 기억을 꺼냈다. “신혼여행 때 부산에 갔다가 들렀던 곳이에요.” “할머니 칠순 때 가족 식사했던 곳이에요.” “여름방학이 끝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갔던 곳이에요.”
해운대 암소갈비 한상
맛있는 식당은 많지만, 시간이 흐른 뒤 추억으로 불려 나오는 식당은 많지 않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이 오래 유지되어 온 힘도 여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여러 세대의 손님들이 기억을 쌓아 온 장소다. 영업이 호황을 이루며 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대기 기간이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기다림의 가치가 있는 것은 이곳만의 추억을 다시 맛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창업주가 만든 갈비의 방식
윤 대표에게 좋은 갈비는 등급이 높고 지방이 많은 부드러운 고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가게마다 갈비의 품질 기준이 다르다며, 해운대암소갈비집의 갈비는 손으로 넣는 칼집과 숙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생갈비는 이틀간 숙성해 피 맛을 덜고,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다. 양념갈비는 사흘간 양념에 재운다. 생으로 구웠을 때 좋은 부위와 양념으로 먹었을 때 좋은 부위는 다르다. 마블링이 풍부한 고기는 생갈비에 어울리지만, 양념과 만나면 느끼해지기 쉽다. 그래서 양념갈비는 지방이 적은 부위를 선호한다. 이처럼 좋은 품질의 고기를 기본으로 하되, 등급만으로 갈비를 고르지는 않고, 조리법에 따라 더 어울리는 형태를 감안해 준비한다.
이틀간 숙성한 생갈비(좌), 사흘간 양념에 재운 양념갈비(우)
거슬러 올라가면, 해운대암소갈비집의 갈비는 1대 윤석호 회장의 손에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윤 창업주는 동래 온천장에서 조선 요리를 익혔는데, 볼록한 불판과 다이아몬드 칼집을 본인의 스타일로 흡수했다. 다이아몬드 칼집을 넣으면 갈비는 한 점으로 이어져 있지만, 안쪽의 섬유는 잘게 나뉜다. 그래서 갈비 특유의 육향은 살리고, 식감은 부드럽게 한다. 양념이 닿는 면도 넓어진다. 볼록한 불판 위에 올렸을 때 고기가 잘 밀착되어 익는 것도 이 칼집과 맞물린다.
식사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다른 고깃집과는 달리 해운대암소갈비집에는 상추쌈과 쌈장이 없다. 곁들임 음식으로 인해 갈비 고유의 맛이 사라질 수 있고, 맛이 섞이는 것을 창업주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창업주는 돼지국밥에도 다대기를 풀지 않을 만큼 음식이 가진 본래의 맛을 중요하게 여겼다. 해운대암소갈비집에서 갈비는 쌈 속 재료 중 하나가 아니라, 끝까지 식사의 중심에 놓인다.
상추쌈도 쌈장도 없이, 갈비를 끝까지 식사의 중심에 두는 한상
양념 맛은 윤 대표가 어릴 적부터 먹어온 맛과 지금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설명하는 양념의 핵심은 단맛과 짠맛 사이의 균형이다. “딱 먹었을 때 달다, 짜다가 아니라 이게 짠맛인가 단맛인가 궁금해서 한 점 더 먹게 되는 맛”이라는 표현처럼, 균형 잡힌 맛은 식사 후에도 다시 떠오른다. 달게 먹고 싶으면 소스를 더 찍고, 고기의 맛을 더 느끼고 싶으면 그대로 먹으면 된다.
감자 사리와 된장찌개 역시 해운대 암소갈비집의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불판 아래쪽에 남은 육즙과 양념 속에서 익어가는 감자사리는 고기의 여운을 다른 질감으로 이어준다. 갈비뼈를 넣어 푹 끓여낸 뚝배기 된장은 갈비 뒤에 남는 느끼함을 눌러주며 식사를 마무리한다.
불판에 남은 육즙과 양념 속에서 익어가는 감자사리
오래된 맛을 지키는 고된 반복
맛을 지킨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고된 노동의 반복이기도 하다. 불판 관리가 대표적. 감자사리가 눌어붙은 무쇠 주물 불판은 뜨거운 물에 불린 뒤 손으로 직접 문질러 구멍 사이사이까지 세심히 닦는다. 이후 불 위에 올려 남은 기름을 빼고, 다시 닦고, 헹군 뒤 녹이 슬지 않도록 기름칠 해 쌓아둔다. 매일 들어오는 갈비는 짝 단위로 받아 손수 기름을 걷어내고, 포를 뜨고, 칼집을 내고, 무게를 잰다. 효율을 기준으로 삼으면 지속하기 힘든 일들이지만, 바로 그 번거로운 반복이 이 집의 고유한 맛을 지탱케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래 일한 직원들의 손이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역사는 가족의 계보에만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윤 대표는 장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직원들의 은퇴와 기술 전수를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로 본다.
불판 위, 다이아몬드 칼집을 낸 갈비가 고르게 익어간다
변화의 기준도 분명하다. 줄서기 시스템, 와이파이처럼 손님의 편의와 쾌적함을 높이는 변화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음식과 서비스 방식, 고기 정형 방법에는 타협이 없다. 대세로 자리 잡은 키오스크 주문이 아니라 ‘이모님’이 직접 주문을 받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실수는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을 사람이 해결하는 과정까지 식당의 정이다. 윤 대표가 무조건 친절한 서비스보다 “부산다운 서비스”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필요한 순간 손을 내미는, 말하자면 부산식 ‘츤데레’다. 그는 그 안에 지역정체성(로컬리티)이 있다고 믿는다. 부산다움은 반드시 지역 식재료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해운대시장에서 짠 참기름을 쓰고 채소를 받아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가 중요하게 보는 것 중 또 하나는 지역의 스타일이다. 특정한 음식은 도시의 기억을 만든다. 부산에는 돼지국밥과 밀면처럼, 출발은 여러 지역의 역사와 맞닿아 있지만 결국 부산의 식문화로 자리 잡은 음식들이 있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이 지키려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 놓인다.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방식을 오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윤 대표가 생각하는 부산의 맛이다.
수십 년 같은 자리를 지켜 온 직원들의 손이 만들어 온 맛
뉴욕에 진출한 부산식 갈비의 맛
윤 해운대갈비가 뉴욕에 처음 문을 열 때, 부산 본점의 방식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우 대신 미국산 소고기를 써야 했고, 간장과 참기름, 된장 역시 현지에서 조달해야 했다. 윤 대표는 미국 여러 지역의 소고기를 직접 맛보며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조리법에 가장 잘 맞는 고기를 찾았다. 장류와 참기름도 뉴욕의 한인 식품 유통망을 살피며 부산에서 쓰는 재료와 가장 가까운 맛을 골랐다. 뉴욕의 특성을 반영해 본점과 다른 메뉴도 생겼다. 갈비만두처럼 현지 손님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을 더했다. 재료와 메뉴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고기 손질하는 법과 숙성 방식, 양념의 균형을 보는 기준은 부산의 그대로다. 본점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것보다, 지금껏 지켜온 방식을 먼저 이해하고, 그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그곳의 손님에게 맞는 답을 다시 찾는 일이 더 중요한 현지화의 과제였다.
부산의 조리법 위에 현지 메뉴를 더한 뉴욕의 윤해운대갈비
안집, 해운대암소갈비집의 뿌리
한편, 레스토랑 바로 옆 카페 ‘안집’은 이 식당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1975년에 지어진 이 집은 창업주의 가족이 실제로 살던 집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건물은 많이 노후됐고, 다른 용도로 쓰려면 대대적인 구조 보강이 필요했다. 신축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 있었고, 해운대라는 입지를 생각하면 고층 상업 건물로 개발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윤 대표는 아버지 윤성원 회장을 설득해 집을 카페로 남기기로 했다. 그에게 안집은 단순한 옛 집이 아니라, 가족이 오가며 식당과 함께 시간을 보낸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안집은 암소갈비집의 뿌리 같은 곳”이라는 그의 말처럼,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성장 역시 이 집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빠르게 변하는 해운대 한가운데서 오래된 집을 남기는 일은 효율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깥으로 윤 해운대갈비가 서울과 뉴욕 등 다른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면, 안집은 해운대암소갈비집이 지나온 시간을 보여준다.
창업주 가족이 살던 집을 카페로 남긴 '안집'
유지한다는 것, 다음 세대의 일
윤주성 대표는 더 많은 지점이나 수익보다, 오랜 역사가 있는 이 공간을 잘 유지하며 이끄는 것이 본인의 임무라고 말한다. 팬더믹이 잦아든 2023년 여름, 해운대암소갈비집은 문을 닫고 약 1년에 걸친 공사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좌식 공간은 고령의 손님이나 외국인에게 불편할 수 있었고, 낡은 시설 역시 손볼 필요가 있었다. 긴 시간 영업을 멈추는 부담이 있었지만, 2024년 다시 문을 연 식당은 더 다양한 세대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던 손님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는 것, 처음 부산을 찾은 외국인이 훗날 해운대의 추억으로 이 식당을 기억하는 것까지. 한 식당이 오래 이어지려면 다음 손님이 다시 찾을 이유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손님을 위한 안내를 만들고, 젊은 세대가 이 식당을 접할 기회를 넓히는 것도 그가 하고 있는 일이다.
안집을 배경으로 선 3대 윤주성 대표
해운대암소갈비집이 60년 넘게 이어져 온 이유를 하나의 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명성이 아니라, 매일 맛을 확인하고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으며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시간이 지금의 식당을 만들었다. 3대째 이어 온 유명 식당을 맡는다는 것은 때로 이미 완성된 것을 물려받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래된 방식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이해하고, 무엇을 바꿔도 되는지 판단하고, 다음 세대가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의 다음 세대는 거창한 선언보다 그런 일들 위에서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