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개척한 한식 세계, 나비 류태혁 셰프

한식 파인다이닝과 캐주얼 비스트로, 그리고 한국식 고기 구이집까지 상하이와 중국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한식을 개척해가는 류태혁 셰프의 이야기.

음식과 공간을 함께 설계하는 셰프가 만든 레스토랑 나비

상하이 우이루의 복합 공간 WYSH 2층에는 오픈 키친을 감싸는 열여섯 자리의 카운터가 있다. 류태혁 셰프가 이끄는 한식 파인다이닝 나비(NABI)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작은 움직임이 예상보다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에서 가져왔다. 다이닝을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여러 경험과 기억이 쌓이는 과정으로 바라본 류 셰프는, 나비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손님에게 오래 남는 특별하고 행복한 기억이 되기를 바랐다.

공간 역시 이러한 방향을 따른다. 어두운 색조의 다이닝룸과 오픈 키친을 둘러싼 카운터는 조리와 서비스의 전 과정이 하나의 무대처럼 펼쳐지도록 설계됐다. 류 셰프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음식과 공간의 결합이 집약된 장소다. 손님은 완성된 접시뿐 아니라 팀의 움직임과 셰프의 설명까지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2024년 오픈한 류태혁 셰프의 나비

2024년 문을 연 나비는 그해 Tatler Best Asia 100 Restaurants에 선정됐고, 2026년에는 중국의 주요 레스토랑 평가인 블랙펄 레스토랑 가이드에서 중국 본토 한식 레스토랑으로는 유일하게 1다이아몬드를 획득했다. 그러나 류태혁 셰프가 상하이에서 이루려는 것은 한 레스토랑의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식을 요리하는 동시에 한식이 더 넓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의 기반을 만들고 있다.

그 출발점은 유명 요리학교나 스타 레스토랑의 주방이 아니었다. 류 셰프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외식업에 종사하며 전국의 행사장과 여러 지역에서 매장을 운영했다. 어린 류 셰프에게 식당은 특별한 일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일을 돕는 생활의 일부였다. 그는 부모님의 현장을 오가며 주방을 경험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작은 햄버거 가게를 비롯해 몇 곳의 식당을 직접 열어 운영했다. 정형화된 파인다이닝 교육 대신 매출과 손님, 인력과 공간을 몸으로 익힌 시간이었다.

류 셰프의 관심은 조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레스토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싶어 CAD와 디자인을 독학하는 한편, 인테리어 업자와 디자이너, 현장 근로자들을 따라 공사 현장을 다녔다. 설비와 목공, 페인트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며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몸으로 익혔다. 음식과 공간, 브랜드와 운영을 분리하지 않는 현재의 태도는 이 경험을 통해 형성됐다. 좋은 요리를 만드는 데서 나아가 식당 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고자 한 시간이었다.

 

상하이의 제주사계, 캐주얼하게 시작한 한식

중국과의 인연은 2016년 시작됐다.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웠던 친구의 제안으로 중국 내 체인형 한식 레스토랑의 메뉴를 컨설팅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예정된 프로젝트가 연이어 중단됐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그는 잠시 상하이를 여행했고, 와이탄에 자리한 장 조지 봉게리히텐(Jean-Georges Vongerichten) 셰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메르카토(Mercato)를 찾았다. 당시 상하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던 이곳에서의 식사는 류 셰프가 도시의 외식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전환점이 됐다.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와 레스토랑의 분위기, 음식과 서비스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그가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중국 외식 시장의 규모를 보여줬다. 류 셰프는 그때 상하이에 ‘멋있는 한식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최고의 한식당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선언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알던 ‘식당’보다 더 큰 가능성을 이 도시에서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듬해 그는 한 회사의 제안을 받아 상하이 제주 이자카야의 셰프 겸 점장으로 운영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1~2년만 일할 계획이었지만 개업 후 예상보다 빠르게 손님이 몰렸다. 회사와의 논의 끝에 직접 투자에 참여해 오너 셰프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고, 류 셰프는 한국의 사업을 정리하며 중국에 무게를 실었다. 제주 이자카야가 오픈부터 받은 예상 밖의 호응은 기회인 동시에 책임이 됐다. ‘조금 더 나은 경험’을 만들고자 시작한 식당이 어느새 상하이에서 한식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변화는 메뉴와 이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류 셰프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경험하는 사계절에 주목해 계절별 메뉴를 운영하며 한국의 식재료를 소개했다. 음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계절마다 한 달씩 문을 닫고 한국 전역을 다니며 좋은 재료와 생산자를 찾기도 했다. 일본식 업태를 뜻하는 ‘이자카야’라는 이름으로 한식을 대표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덜어내고자 했다. 그 결과 2022년에 제주 이자카야는 제주사계로 이름을 바꿨고, 캐주얼한 식당은 계절과 산지를 이야기하는 다이닝으로 발전했다. 한국에서 찾은 식재료와 생산자, 전통주에 얽힌 이야기는 책 형태의 메뉴에 담았다. 재료를 선택한 이유와 어느 지역의 어떤 계절에서 온 맛인지까지 설명해 손님이 음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상하이에서는 셰프가 손님과 가까이 호흡하며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셰프스 테이블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중국 시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한식 경험은 제주사계를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으로 만들었다.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한식당이 빠르게 늘어나자 류 셰프는 다시 다음 단계를 고민하며, 새롭게 보여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파인다이닝 한식 경험 나비(NABI)와 편안한 비스트로 우리(WULI)

제주사계는 파트너사와 운영 방향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면서 약 6년간의 운영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이 경험을 통해 류 셰프는 자신의 철학을 분명하게 반영하고 결정에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모색했다. 그 결과 외식 브랜드 그룹 P.I.E가 출범했다. ‘People Is Everything’의 약자인 P.I.E에는 사람과 팀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운영 철학이 담겨 있다.

P.I.E가 처음 선보인 레스토랑은 나비와 우리(WULI)였다. 류 셰프는 두 곳을 동시에 준비해 2024년 초 한 건물 2층에 나비를, 같은 해 5월 1층에 우리를 열었다. 나비가 한국의 식재료와 술을 정교한 코스로 풀어내는 파인다이닝이라면, 우리는 ‘우리 문화, 우리 음식, 우리 술’을 편안한 분위기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나비 다이닝룸 전경

두 레스토랑을 함께 기획한 데에는 외식 시장에 대한 판단이 있었다. 특별한 경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파인다이닝과 좋은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려는 수요가 더욱 뚜렷하게 나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류 셰프는 어느 한쪽만 택하지 않았다. 나비에서는 한식의 깊이와 정교함을 보여주고, 우리에서는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맛과 문화를 편안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접근법과 가격대는 달랐지만, 두 레스토랑 모두 한식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나비는 16석의 셰프스 테이블과 8석 규모의 프라이빗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루 두 차례의 디너 서비스를 운영한다. 서비스 사이에 대기 공간이 부족해지자 류 셰프는 1층의 우리를 상하이의 대표적인 상업 공간인 타이쿠리 첸탄(Taikoo Li Qiantan)으로 이전했다. 이후 기존 공간의 공사를 마치고, 2026년 8월부터 나비의 대기 공간이자 행사와 케이터링 등에 활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P.I.E가 올해 새롭게 선보인 한국식 그릴 다이닝 한로(HANRO) 역시 바비큐를 통해 한식의 접근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류 셰프는 한식 구이 요리가 사람을 모으는 장르라고 본다.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원육의 품질과 숙성, 술과 반찬의 구성을 달리하면 한국식 구이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나비가 파인다이닝을 통해 한식의 깊이를 탐구한다면, 한로와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좋은 한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

올해 5월 오픈한 한로(HANRO) 매장 모습

안정적인 재료 수급을 향한 집요한 여정

상하이에서는 류 셰프가 원하는 품질과 종류의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한국 주류도 마찬가지였다. 수요가 적어 수입하는 이가 없고, 수입품이 없으니 좋은 한식당이 성장하기 어려운 악순환이었다. 류태혁 셰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입 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한국 전역을 돌며 고른 식재료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서산 바다숲의 감태를 비롯해 부산의 덕화명란, 기장의 씨드미역, 거창한국수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품목은 정식 수입까지 5~6년이 걸렸다. 경제성만 고려하면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류 셰프는 생산자와의 소통부터 수출·수입·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해야 안정적인 수급과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들여온 감태 등 일부 품목은 중국의 미쉐린 및 블랙펄 선정 레스토랑에도 공급된다. 류 셰프에게 한식의 확장은 한국 음식을 파는 매장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재료가 이동할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길을 만들고, 다른 장르의 셰프가 그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한로에서는 현지의 좋은 재료를 발굴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한·중 무역 여건상 한우와 한국산 돼지고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들여오기 어려워 현지 생산자와 협업해 필요한 맛과 품질을 갖춘 원육을 찾았다. 한로는 산둥 지역 와규와 저장 지역 흑돼지 등 중국산 원육을 선별하고 숙성해 한국식 구이로 풀어낸다. 류 셰프와 팀은 농장과 직접 협력하며 품질 편차를 줄이는 과정에도 관여한다.

한국의 재료를 상하이로 가져오는 것과 중국의 재료를 한국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것은 상반된 일이 아니다. 한국 식재료의 길을 넓히는 동시에 현지 식문화와 시장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류 셰프의 생각이 두 방향을 연결한다.

 

특정 요소에 얽매이지 않는, 설득력 있는 한식

류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은 무엇보다 ‘맛있는 요리’다. 이야기와 표현에 치중한 나머지 맛을 놓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동시에 자신의 요리가 왜 한식인지 손님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 내가 이걸 만들게 됐는지, 그리고 이 요리가 왜 나한테 한식인지에 대해서 고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인이 먹어도 한식으로 느끼고, 외국인 손님도 이게 왜 한식인 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맛과 정체성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조건을 함께 충족하는 것이 나비의 기준이다.

나비에서 요리 중인 류태혁 셰프

류 셰프에게 한식은 반드시 한국에서 자신이 먹었던 원재료로만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다. 왜 시작했고 어떤 기억과 문화를 담았는지 분명하다면 기술과 재료는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 여름에는 초계국수를 새롭게 해석하고, 삼계탕의 문화적 기억을 중국의 불도장과 연결한다. 겨울의 군고구마에서 출발한 요리에는 훈연 향과 버터의 감각을 더한다. 고객의 80~90% 이상이 중국인인 만큼 현지인이 친숙하게 느끼는 재료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나비는 계절마다 메뉴 전체를 바꾸기에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를 꼽기는 어렵다. 대신 코스의 중심을 이루는 ‘반상’, 그리고 한국의 길거리 음식에서 착안한 다채로운 디저트가 나비만의 색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찹쌀도넛과 꽈배기, 호두과자, 겨울의 붕어빵에서 출발한 쁘티푸르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기억을 환기하고 외국인 손님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전한다. 지금 시즌에는 한국 막걸리와 강정을 이용해 만든 아이스크림이 특히 인기다.

나비의 시그니처 메뉴 반상(좌)과 막걸리 아이스크림(우)

생활 속의 친숙한 맛을 정교한 코스에 배치하는 방식은 나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류 셰프는 불고기와 비빔밥, 떡볶이와 바비큐 너머에도 넓은 한식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긴 설명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다이닝 경험을 만들고자 한다. 여기에 반상과 전통주, 계절의 흐름이 더해지며 손님은 익숙한 범주 밖의 한식을 발견한다.

 

상하이와 나비를 넘어 꿈꾸는 한식의 확장

류태혁 셰프는 나비가 상하이를 찾는 해외 여행자에게도 반드시 방문해야 할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동시에 중국 전역에서 누구나 좋은 한식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도 구상하고 있다. 한식 파인다이닝이 한식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식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일상적인 선택지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활동 지역 역시 중국에 한정하지 않고 대만과 홍콩, 마카오, 나아가 유럽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류태혁 셰프의 여정은 정해진 수련 과정을 따라 정상에 오른 이야기와 다르다. 작은 식당에서 운영을 배우고 필요한 기술을 찾아 익혔다. 재료가 없으면 유통 경로를 만들고, 수입하기 어려운 재료는 현지 생산자와 함께 발굴했다. 레스토랑이 성공한 뒤에도 검증된 공식을 복제해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 시장에 무엇이 부족하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핀다.

파인다이닝과 일상식, 한국의 생산자와 중국의 농장, 한정된 셰프 테이블과 대중적인 브랜드는 그 질문에서 나온 서로 다른 답이다. 그가 확장하려는 것은 한식의 외형이 아니라 한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다. 한 접시를 만들고, 한 공간을 설계하며, 하나의 시장이 성장할 토대를 마련하는 것. 류태혁 셰프는 상하이에서 이 모든 일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단락

Writer 윤샛별 (Stellar Yoon)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레스토랑 나비 (Na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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