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찾은 목적지 레스토랑, 예미헌 정예진 셰프

커다란 통창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는 강원도의 사계절이 정예진 셰프의 손길을 만나 식탁에 오르는 곳, 예미헌을 찾았다.

대관령을 지나 발왕산 자락을 따라 구불거리는 언덕을 오르면 드러나는 아름다운 한옥 스테이 바랑재. 고요한 산중에 자리잡은 한식 다이닝 예미헌을 품은 공간이자, 동시에 라이나전성기재단이 ‘비움과 나눔’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만든 사회공헌의 무대다. 바랑재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다시 사회적 나눔을 위한 밑거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곳의 입구에서 발왕산의 사계를 마주하며 손님을 맞는 한식 다이닝이 ‘예미헌(藝味軒)’이다. ‘한식의 예술이 담긴 깊은 맛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바랑재 내 위치한 한식 다이닝, 예미헌

 

예미헌의 주방을 이끄는 정예진 셰프

 

정예진 셰프가 만들어가는 한식, 예미헌

지금 예미헌의 주방에서 그 틀 안을 채우며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은 정예진 총괄셰프다. 이제 막 서른을 맞이한 그녀의 이력은 흥미롭게도 한 방향으로 곧게 이어지지 않는다.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Basque Culinary Center)와 천진암, 유럽의 현대 미식과 한국의 사찰음식처럼 얼핏 서로 반대편에 놓인 세계를 오갔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경험이 만나는 장소가 강원도 평창이다.

 

우연히 요리의 길을 걷게 되다

정예진의 첫 번째 꿈은 사실 요리사가 아니었지만 중학교 시절 우연히 참가한 쌀떡볶이 요리대회에서 1등을 했고, 요리를 준비하고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끼며 이 직업에 빠져들었다. 이후 해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넓은 세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시 많은 한국인 요리 유학생들이 프랑스나 미국을 향했지만 정예진은 스페인을 택했다. 요리를 처음 시작할 무렵 보았던 스페인의 식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누구나 가는 길보다는 조금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다”는 것도 이유였다.

문제는 스페인어였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무렵 스페인으로 건너갔을 당시 할 수 있었던 말은 사실상 “Hola(안녕하세요)”와 “Gracias(감사합니다)” 정도였다. 그는 오히려 스스로 도망갈 곳을 없애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스페인 남서부의 항구 도시, 카디스(Cádiz)에서 생활하며 약 1년 동안 언어를 배웠고, 한국어를 사용할 상황 자체를 최대한 피했다. 이후 산세바스티안의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에 진학해 학사와 석사 과정을 거치며 스페인에서 약 6년을 보냈다. 처음 한 학기 동안은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2학년 무렵에는 언어와 문화 모두에 어느 정도 녹아들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얻은 것은 새로운 조리 기술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중학생 때부터 요리를 배워온 정예진에게 학교가 열어준 것은 요리를 바라보는 훨씬 넓은 시야였다. 화학과 공학, 마케팅과 경영, 세계 미식의 흐름을 함께 공부했고, 무엇보다 하나의 음식을 어떻게 연구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그 방법을 배웠다. 재학 중에는 현지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과 서비스 개선 작업 등에 참여하며 실제 업장도 경험했다. 가능한 한 많은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먹는 일 역시 공부의 일부로 여겼다. 그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식재료와 음식문화, 전통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는지를 목격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낡은 것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미식의 자산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흥미롭게도 그 경험은 수년 뒤 평창에서 다시 의미를 얻었다. 산세바스티안과 강원도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정예진은 두 지역의 기후와 식재료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지역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지역의 음식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은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스페인에서 익힌 연구의 방식 위에 한국 음식의 뿌리를 다시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예미헌이 위치한 한옥 스테이, 바랑재

 

백양사 천진암에서의 시간

그 두 번째 학교가 백양사 천진암이었다. 코로나19로 유럽이 셧다운되면서 인턴십 진행이 어려워졌을 때 정예진은 한국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지속가능성과 채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동시에 자신이 정작 한식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가공품에 의존하지 않고 장부터 음식까지 직접 만들며 계절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이어지는 한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그녀가 찾은 답은 사찰이었다.

정관 스님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레시피가 아니었다. “재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였다. 정예진은 지금도 채소를 다루는 일이 요리에서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같은 당근과 시금치도 자란 곳과 계절, 수분 함량과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다. 정해진 조리법을 재료에 강요하는 대신 오늘 눈앞에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천진암에서 그는 그런 시선을 배웠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있었다. 천진암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정관 스님이 찹쌀떡을 준비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던 날, 공양간 근처에 행색이 초라해 다가가기 쉽지 않아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스님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떡을 건네고 그의 손을 잡은 채 따뜻하게 안부를 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예진은 울었다. 자신이라면 선뜻 다가가지 못했을 사람에게 아무런 구분 없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가 결국 어떤 사람을 향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천진암에서 더 오래 머물기로 결심한 계기이자 “평생 요리하면서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이라고 말했다.

바랑재의 카페 이랑에서 바라본 전경

 

바랑재와 시작한 새로운 프로젝트, 예미헌

천진암을 떠난 뒤 여러 외부 활동을 하던 그녀에게 평창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처음부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총괄셰프가 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캠프와 자립준비청년 지원 등 재단이 구상하던 사회공헌의 방향, 그리고 ‘비움과 나눔’이라는 가치에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 그녀가 도착했을 때 현재 예미헌이 자리한 공간은 아직 공사 중이었고, 지금의 레스토랑 자리 역시 처음에는 찻집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발왕산을 바라보는 2층의 풍경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자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한식 다이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회공헌사업인 드림키친과 함께하는 예미헌 팀

바랑재와 예미헌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초기에는, 이곳의 요리 고문인 조희숙 셰프에게서 육류와 해산물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한식의 조리법과 상차림을 경험하며 배웠다. 서로 다른 두 스승의 한식이 정예진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가르친 셈이다. 

매일 아침 정예진 셰프가 시장에서 장 본 재료들

그 색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교과서는 이제 평창에서의 삶 자체다. 정 셰프는 보통 아침 6시 무렵 눈을 뜬다. 시장 상황을 확인하고 서류 업무를 처리한 뒤 조식이 있는 날에는 주방을 살피고, 이후 직접 장을 보러 나간다. 진부와 봉평의 장, 주문진의 수산시장, 때로는 속초까지 활동 반경이 넓다. 평창에서는 서울처럼 원하는 식재료를 유통업체에 주문해 일정한 규격으로 계속 공급받는 것이 쉽지 않다. 택배조차 자유롭지 않은 환경이다. 대신 그 불편함이 셰프를 생산자에게 더 가까이 이끈다.

시장에서 식재료를 묻다 농부를 소개받고, 마트에서 들깨를 찾다가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산자와 연결된다. 고랭지 채소와 산나물뿐 아니라 주문진과 속초, 고성에서 올라오는 동해의 해산물을 찾아다닌다. 하나의 재료를 발견하면 그것의 특성과 강원도의 향토성, 수급 가능성, 현재 코스의 흐름을 하나씩 검토하며 요리를 ‘가지치기’해 나간다.

 

계절의 풍경을 담는 예미헌의 식탁

현재 예미헌의 음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째복죽’이다. 어느 날 강원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발밑에서 낯선 조개를 발견했다.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강원도에서 대파와 물만 넣고 끓여 먹기도 하는 째복(민들조개/비단조개의 강원도 방언)이었다. 마침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려던 도다리의 수급이 갑자기 끊겼고, 주방에는 그가 바닷가에서 가져온 째복이 있었다. 도다리쑥죽 대신 째복으로 죽을 끓여봤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지역의 식재료가 예미헌의 첫 ‘죽상’으로 들어왔다. 셰프가 강원도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메뉴 개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정예진 셰프의 수요일 김치

정 셰프가 앞으로 예미헌의 시그니처로 발전시키고 싶은 것은 특정한 완성품이 아니라 ‘수요일 김치’라는 개념이다. 그는 매주 수요일 가장 크게 장을 본다. 그런데 그때 만나는 재료는 매번 다르다. 지난주까지 있던 고성의 명주조개가 이번 주에는 사라지고, 대신 처음 보는 칼조개가 들어오기도 한다. 낙지가 좋으면 낙지를, 칼조개가 좋으면 칼조개를 쓰고 그 시점에 가장 좋은 채소와 해산물을 조합해 김치를 담근다. 즉 레시피가 시그니처가 아니라 변화하는 계절을 김치라는 한국적인 발효의 구조 안에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시그니처가 되는 셈이다.

 

정예진 셰프가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 고추장

장은 또 하나의 축이다. 바랑재에 합류해 공사 과정을 지켜볼 때부터 장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 두 해의 장이 익어가고 있다. 햇빛이 잘 드는 산중의 환경은 장을 숙성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정예진에게 장 담그기는 단순히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조미료를 자체 생산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집에서 한 해 먹을 장과 김치, 장아찌를 직접 만들며 다음 계절을 준비했던 생활문화를 이어가는 행위이자 젊은 조리사들에게 그 과정을 전하는 교육이다. 예미헌의 주방뿐 아니라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바랑재 드림 키친’에서도 이러한 배움은 이어진다.

 

주문진 오징어, 강원도 찰보리와 토마토를 넣은 요리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아직 자신의 한식을 쉽게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페인에서 6년을 보냈고 그곳에서 형성된 미각과 사고방식이 분명 그의 음식 안에 있다. 파프리카나 토마토처럼 전통 한식의 문법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재료도 필요하면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한식을 한다고 말하면서 어디까지 선을 넘을 수 있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해외의 기술을 얹은 음식을 한식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강원도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며 살아가는지를 먼저 음식으로 전달하려 한다. 정 셰프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숨기지 않는다.

 

예미헌의 떡갈비와 더덕

예미헌의 메뉴도 계속 움직이는 기록이다. 큰 틀에서는 계절에 맞춰 약 3개월 단위로 변하지만 실제 음식은 그날의 시장과 생산자의 상황에 따라 더 자주 바뀐다. 가능한 한 많은 강원도의 재료와 향토음식을 경험하고 그것을 새로운 메뉴로 만들어 보며, 다양한 시도를 한다. 최근에는 강원도의 섭국을 먹다가 고추장과 된장, 감자와 채소, 홍합이 어우러지는 방식에서 새로운 메뉴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겨울이 되면 채소가 급격히 줄어드는 평창의 계절 역시 그에게는 어려움인 동시에 다음 연구 과제다.

정예진 셰프가 꿈꾸는 예미헌의 미래는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이다. 단순히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곳까지 이동하고, 산을 보고, 지역의 재료를 만나고, 한옥에서 머물며 비로소 하나의 경험이 완성되는 레스토랑. 바랑재가 자연과 한옥, 산책과 명상, 숙박과 식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놓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예미헌의 음식 역시 독립된 작품이라기보다 그 경험의 한가운데 놓인 환대에 가깝다. 바랑재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비움과 나눔’이라는 가치 역시 그에게 추상적인 슬로건만은 아니다. 가능한 한 지역 생산자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재료를 구입하는 방식, 젊은 조리사들과 장을 담그며 지식을 나누는 과정까지 음식 밖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레스토랑 예미헌의 테이블과 전경

정예진 셰프는 손님들이 예미헌을 떠날 때 “울림과 감흥을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대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산속까지 찾아와 한 끼를 먹는 동안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지금 눈앞에 놓인 자연을 다시 한번 느껴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요리 인생 역시 끊임없이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우연히 참가한 떡볶이 대회를 계기로 요리사가 됐고, 한국에서 요리를 배우던 학생은 아무런 연고도 언어도 없던 스페인으로 향했다. 유럽의 현대 미식을 공부하던 학생은 다시 산사로 들어가 2년 동안 채소와 장을 만졌고, 이제는 서울의 화려한 주방이 아니라 해발 870m 평창의 산중에서 매주 직접 시장을 돌며 자신의 한식을 만들어간다. 몇 년 뒤 수요일의 김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장독 속의 장이 어떤 맛으로 익을지, 겨울의 평창이 또 어떤 요리를 만들어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변화의 가능성이 지금 예미헌과 정예진 셰프를 지켜봐야 할 가장 흥미로운 이유다.

단락

Writer 이정윤(Julia Lee)
Editor Mavis Chen
Photographer 이정윤 (Juli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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