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미식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바 ‘제스트(ZEST)’는 제철 재료와 지역 생산자, 창의적인 재활용을 통해 한 잔의 칵테일에 이야기를 담아내며, 한국 바 문화의 깊이와 세계적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현 시점의 ‘제스트(ZEST)’는 ‘2025 아시아 50 베스트 바(Asia's 50 Best Bars)’에서 2위, ‘2025 월드 50 베스트 바(World’s 50 Best Bars)’에서 16위를 기록함은 물론, 3년 연속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한국 바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제스트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철학을 바탕으로 메뉴 구성부터 인테리어와 소품 하나까지 촘촘히 쌓아 올렸다.
백 바에 음료를 두는 대신 흙과 돌, 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돋보이게 해, 인테리어에서도 지속 가능함의 가치를 담았다.
그리고 우린 이곳에서 파인애플 껍질 등 버려진 재료에서 재발견한 가치와 지역 농장과 연계해 최상의 맛을 자랑하는 제철 재료를 통해 칵테일 한 잔에 담긴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월드 베스트 바로 나아가기까지
김도형 오너 바텐더는 제스트의 시작을 알린 사람이다.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 하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저희가 잘했다기보다 한국 바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지표 같아요. ‘아시아의 별’ 보아가 있어, 월드 스타 비와 싸이 그리고 BTS가 있듯이 선배 바들이 있어서 저희가 있었고, 이제 후배들이 더 나은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제스트’를 대표하는 칵테일로, 왼쪽부터 ‘소이 카라멜’, ‘화채’, ‘라스트 피스’, ‘Z&T’
이러한 변화는 K-POP과 함께 K-문화의 전 세계적 영향력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고, K-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물론 외국인 관광객 확대만이 제스트, 나아가 한국 바의 성장을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제스트뿐 아니라 한국 바 업계가 가진 높은 잠재력이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
제스트는 2025년 ‘월드 50 베스트 바’ 16위, ‘아시아 50 베스트 바’ 2위 등 3년 연속 높은 순위에 올라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 받는 바이다.
“한국인들이 맛의 밸런스나 디테일을 잡는 감각이 좋아요. 그리고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바는 레스토랑과만 비교해도 손님을 직접 응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 넘는 만큼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그만큼 중요한 공간이에요. 한국 바의 따뜻한 환대와 서비스에 마음을 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제로 웨이스트, 제스트의 깊이를 만들다
공학도였던 김도형 오너 바텐더는 학교를 그만두고, 바리스타의 길을 가기 위한 학교에서 운명처럼 칵테일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길로 지금은 문을 닫은 ‘우 바(Woo Bar)’에서 5년, ‘앨리스 바(Alice Bar)’에서 3년을 일하면서 지금의 동료들을 만났다.
김도형 오너 바텐더는 2020년 동료 3명과 함께 제스트를 공동 창업했다. ‘지속 가능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국 BAR’는 이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낸 결과다.
제스트는 김도형 오너 바텐더를 포함해 네 명이 함께 공동 창업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메뉴 개발부터 영업, 홍보, 브랜딩 등 주요 업무를 나눠 하고 있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모두 함께한다. ‘지속 가능함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국적인 바’를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도 네 사람 간의 신뢰를 통해서였다. 이러한 방법이 의사 결정 시간은 더딜지 몰라도 전문가로서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 제스트가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상호에서도 나타나듯 제스트는 지속 가능성,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의 정체성이 칵테일부터 공간 인테리어와 작은 소품을 비롯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해외 어느 곳에 가서 만날 수 있는 ‘인테리어와 이름만 다른 바’가 아니라, 왜 이곳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게 의미 있는지’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의미 부여를 위해 무언가를 채우는 데 의의를 두지 않고 오히려 비우는 일을 했다.
캐러멜의 은은한 향에 묵직한 맛이 더해져 맛의 깊이를 온전히 전하는 ‘소이 카라멜’
흙과 나무, 돌 등 자연의 소재를 사용한 인테리어부터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앞치마나 비건 성분을 사용한 핸드솝을 사용하고, 백 바에 흔히 전시하는 술은 과감하게 뺐다. 또한 공간에 담긴 모든 요소와 음료 하나하나에 제스트의 철학과 비전을 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트러스 껍질, 바게트 등을 재활용한 메뉴, 직접 개발한 방법으로 내놓는 탄산수와 토닉워터 등의 제품 개발까지 진행하고 있다.
제스트는 탄산수, 토닉워터, 내추럴 콜라 등을 직접 제조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함을 만들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 제스트 이전에도 제로 웨이스트를 전면으로 내세운 바들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포테이토 헤드(Potato Head Beach Club)’ 역시 그중 하나다. 버려지는 물건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공장까지 갖춘 그곳의 규모에 비하면 제스트는 아직 작은 팀이지만 제로 웨이스트에 목소리를 내고, 이러한 철학을 함께 나눌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언제든 준비하고 있다.
한 잔의 K-칵테일에 담긴 이야기
“저희가 하는 일은 손님에게 맛있는 칵테일 한 잔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재료로 만들었고 무슨 과정을 거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게끔 전하면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이야기가 느껴져 맛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믿어요.”
제스트는 지역 농장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철 재료를 구입하고 직접 수확하기도 한다. 가장 신선한 재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중간 유통 과정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포장 용기나 쓰레기 등을 배출하지 않는 것 또한 제로 웨이스트 관점에서 제스트의 철학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를 알고 먹으면 더욱 신뢰가 가는 것처럼 제스트의 칵테일에 담긴 재료들의 이야기가 맛의 깊이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시그니처 칵테일인 ‘Z&T’는 제철 과일과 직접 수확한 허브를 사용해 만든다. 단, 과일 및 허브는 계절마다 바뀐다.
시그니처 칵테일 ‘Z&T’도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남양주 이장욱 농부님이 직접 기른 제철 허브를 저희가 직접 가서 수확해요. 봄에는 스피어 민트, 여름에는 레몬 버베나, 가을과 겨울에는 타임, 세이지로 계절마다 다른 허브를 사용하죠.”
청량한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터지는 탄산이 매력적인 ‘화채’는 다이닝과의 페어링에서도 자주 선보인 칵테일이다.
이뿐 아니라 상품성이 떨어지는 ‘제철 못난이 과일’도 제스트에서는 훌륭한 피즈 칵테일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제철 재료만큼 맛의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것이 없어요. 겨울에 딸기를 이용한 칵테일을 만드는데 딸기는 전 세계 어디에 가서 먹어 봐도 한국 딸기 만한 게 없거든요. 저는 ‘한국적’이라는 게, 외국인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어떤 맛을 상상하고 먹었을 때 주는 만족감이 있는데, 낯설기 만한 재료라면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에만 집중하게 되잖아요. 저는 이 속에 담긴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익숙한 재료들이 가진 최상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죠.”
‘라스트 피스’에 올라가는 미니 크루아상은 방부제나 화학 재료를 쓰지 않고, ‘락희 베이커리’의 국산 밀가루로 만든 생지를 구입해 직접 만들고 있다.
칵테일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통해서도 제스트만의 건강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대표적인 예가 크루아상이 올라간 칵테일인 ‘라스트피스(Last piece)’다. 럼 베이스에 바게트의 끝 부분과 파인애플 껍질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특히 칵테일 위에 올라가는 미니 크루아상도 ‘락희 베이커리’에서 국산 밀가루로 만든 생지를 구입해 만들고 있다. 방부제나 화학 재료를 쓰지 않아 모양이나 발효 정도를 컨트롤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지만, 손님들에게 비교적 건강한 맛을 전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넥스트(Next), 제스트
게스트 바텐딩, 대회 심사, 브랜드 콜라보까지. 연일 국내외를 바쁘게 오가는 김도형 오너 바텐더에게 서울 온지음, 뉴욕 아토믹스, 오이지미(Oiji Mi) 등과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온지음, 홍콩 윙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다이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이닝과의 페어링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협업 자체는 흥미로운 일이다.
김도형 오너 바텐더는 게스트 바텐딩, 대회 심사, 브랜드 콜라보 등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새로운 제안과 시도엔 늘 마음이 간다고 말한다.
“페어링 음식과 맞추는 음료를 일회성으로 개발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이럴 때 기존의 것을 조합해 내놓는데 100% 퀄리티를 기대하기에 아쉬운 부분도 있고요. 그리고 콜라보가 보통 5~7개 메뉴로 구성된 코스로 진행되다 보니 양을 조절하는 구성이 필요한데, 이에 맞는 잔이 준비 되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진행이 쉽지 않죠. 한 자리에서 음식과 함께 5~7잔의 음료를 마시긴 어려우니까요. 저에게도 재미있는 경험이고 손님들에게도 새로움을 줄 수 있지만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바 팀이 있는 레스토랑은 음료 셋업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 이런 분들과 함께해 보는 것도 또한 기대가 돼요.”
제스트의 다음 목표는 새로운 재료 및 메뉴 개발과 함께 지속 가능함을 추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다.
2020년 제스트가 문을 열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월드 50 베스트 바,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오르는 한편, 의 ‘2024 맨 오브 더 이어’, <에스콰이어>의 ‘프라임 서티즈’ 등에 선정되는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바텐더를 넘어 국내 BAR 문화를 널리 알리는 활동들을 꾸준히 해내고 있다.
그럼 개인적인 목표는 없을까. “제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이제 팀원들이 20명 가까이 돼서 새로운 공간을 열어 다른 기회를 주고, 브랜드를 확장해 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그는 ‘아시아 50 베스트 바’ 2년 연속 2위의 아쉬움보단 다음 활동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차 있었다. 실제로 제스트 랩(Zest Lab)을 통해 재료 및 메뉴 개발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월드 50 베스트 바’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한 스페인 파라디소(Paradiso)가 주최한 ‘서스테이너빌리티 서밋(Sustainability Summit)’에 참여한 것도 기억에 남는 콜라보 중 하나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한국 바 문화를 전파해 온 김도형 오너 바텐더. 그는 새로운 매장과 함께 제스트의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세계 전역에서 온 8~10개 바가 모여 칵테일을 만들고,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었어요. 이날 오후 동안만 3천 잔 이상의 드링크가 판매되기도 했죠. 한국에도 여러 형태의 바 쇼(Bar Show)가 있지만, 다양한 해외 바텐더들이 적극 참여하는 글로벌화된 칵테일 쇼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이런 걸 꼭 해보고 싶어요.”
제스트의 메뉴판을 보면 ‘지속 가능한 파인 드링킹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요?’란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음료부터 인테리어 무드까지 지속 가능함의 가치와 철학을 만방에 전하며 세계 무대에까지 다다른 제스트가 몸소 증명하고 있는 현재가 아닐까.
“다음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란 김도형 오너 바텐더의 질문처럼 제스트의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