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엘리트 운동 선수를 꿈꾸던 추다리 ‘탐’ 데바캄 셰프는 레스토랑 ‘반 테파(Baan Tepa)’를 열고 지속 가능성과 전통 발효, 지역 식재료를 결합한 모던 타이 퀴진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셰프들과 미식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5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 주최 측은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태국 방콕의 ‘반 테파(Baan Tepa)’ 레스토랑 오너 셰프, ‘추다리 탐 데바캄(Chudaree Tam Debhakam)’을 최종 선정했다. 2024년 ‘포통(Potong)’ 레스토랑의 팸(Pam) 셰프에 이어, 또 다시 태국 여성 셰프에게 최고의 영예가 돌아간 것이었다. 과연 무엇이 동남아시아 여성 셰프들을 이토록 빛나게 만들고, 특히 탐 셰프는 어떻게 주목 받게 됐을까?
운동 선수를 꿈꾸다 영양학을 택하기까지
방콕의 2월은 평상시 습하고 더웠던 기운은 물러가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따사로운 햇살이 도시를 감싸고 거리는 생기와 활기로 가득하다. 이곳에선 다양한 피부색과 다문화 배경을 지닌 이들이 사방을 오가며 서로 다른 언어를 주고받는다. 흡사 동남아 도시의 축소판 같은 모습인데, 방콕 특유의 개방적이며 포용적인 문화 접근 방식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반 테파(Baan Tepa) 레스토랑의 탐 셰프는 태국 화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할머니의 대저택에서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무려 25명이나 되는 온 가족이 식탁을 둘러쌌다. 훌륭한 손맛을 지닌 할머니 덕에 함께 나누는 대화의 중심은 늘 음식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 자란 그녀가 셰프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당시 요리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탐 셰프의 추억이 서린 할머니의 대저택은 ‘반 테파(Baan Tepa)’ 레스토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요리하는 것보다 먹는 걸 더 좋아했거든요”라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탐 셰프는 학교에서 체육 특기생으로 활약하며 수영,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에 빠져 있었다. 특히 농구부에선 주장을 맡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운동 선수가 되는 게 제 꿈이었어요”라며,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그녀의 얼굴엔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이후 고등학교 때, 역시 체육 특기생으로 영국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처음으로 서양 문화를 온몸으로 마주하게 됐다.
.jpg)
그녀의 레스토랑 곳곳엔 가족들과의 행복하고 다정했던 에피소드가 살아 숨쉰다.
“영국 학생들은 자기 주장을 드러내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수업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거나, 심지어 선생님에게 대놓고 도전적인 말을 던지기도 했었죠. 전통적인 아시아 가정에서 자란 저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이런 문화 충격은 그녀가 독립적이고 단단한 여성으로 자라나는 데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운동 선수의 길에선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뛰어난 운동 선수가 되는 건 한때 탐 셰프가 꿈꾸던 핑크빛 미래였다.
학교 대표팀의 훈련은 매일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혹독하게 이어졌다. 거의 올림픽 대비 수준의 강도였고, 체력과 경험 면에서도 타 선수들과의 격차가 꽤나 컸다. 고민 끝에 그녀는 180도로 전략을 바꿨다. 운동 선수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스포츠 세계에 머물길 결정하고, 영양학을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그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실패와 역경을 딛고 오픈한 향수 깃든 ‘반 테파(Baan Tepa)’
영국 노팅엄대학교에서 식품 과학과 영양학을 전공한 그녀는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뉴욕 명문 요리 학교인 인터내셔널 컬리너리 센터(International Culinary Center)로 향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다. 몇 달 간 수많은 레스토랑에 인턴으로 지원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그러다 한참 뒤 장 조지(Jean-Georges)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미쉐린 3스타와 그린 스타를 동시에 받은 ‘블루 힐 앳 스톤 반스(Blue Hill at Stone Barns)’의 정직원으로 합류했고, 댄 바버(Dan Barber) 오너 셰프에게 지속 가능한 요리 철학을 뿌리 깊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보낸 2년은 식재료와 요리, 지속 가능성의 개념을 함께 이해할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훗날 ‘반 테파(Baan Tepa)’를 오픈할 근간이 됐다.

‘반 테파(Baan Tepa)’ 레스토랑 텃밭에선 각종 허브와 식재료를 키우는데, 손님들은 직원 안내로 이곳을 구경하면서부터 다이닝 경험을 시작한다.
“저는 다소 고집스러운 사람이에요. 처음 업계에 들어왔을 때 많은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실패했다? 그럼 다시 시작하면 되죠. 반 테파(Baan Tepa)를 준비할 때도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챙겼어요. 오래된 집을 고치고, 인테리어를 손보고, 레스토랑 브랜딩 컨셉트부터 운영 시스템까지 제 힘으로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죠. 상상도 못할 만큼 스트레스가 컸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결국 다 이겨냈어요.”
십여 년 간 비워둔 할머니의 대저택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곳을 ‘모던 타이 레스토랑’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붉은 나무로 된 전통 인테리어는 최대한 살려 집처럼 편안한 무드를 지켰고, 지난날 온 가족이 식사를 나누던 공간은 세계 각국의 손님을 맞는 다이닝룸으로 글로벌하게 세팅했다.
또 집 뒤편의 넓은 공터는 텃밭으로 리뉴얼했는데, 손님이 방문하면 이곳을 구경하면서부터 ‘반 테파(Baan Tepa)’에서의 식사 경험이 시작된다. 직원 안내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작물을 보고 느끼면서, 이들이 실제 접시에 어떻게 담기는지까지 체험하게 만든 것이다.
주방에서 이룬 셰프로서의 성취감과 삶
탐 셰프의 디시엔 태국 각지의 향신료와 발효 기법을 탐구하며 쌓아온 이해, 지속 가능한 식재료와 요리에 대해 고민해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대표하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크랩 크랩 크랩(Crab Crab Crab)’.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게의 다채로운 풍미를 3가지 맛으로 응축해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1).jpg)
시그니처 디시 ‘크랩 크랩 크랩(Crab Crab Crab)’엔 태국 식재료의 지역성을 바탕으로 게의 종류와 풍미, 조리 방식에 대한 오랜 탐구 열정이 담겨 있다.
먼저 그중 첫 번째 게의 풍미는, 바삭하게 구운 자색 쌀 토스트와 태국 북동부 사콘나콘(Sakon Nakorn) 지방의 검은 게로 만든 미소 소스에 태국 남부 수랏타니(Surat Thani)산 블루 크랩의 속살을 더해 은은한 단맛을 냈다. 특히 발효 풍미를 머금은 미소로 인해 깊은 맛의 스펙트럼이 서서히 번지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풍미는 태국 북부 람푼(Lampoon) 지역 논에서 채집한 논게의 게알을 넣은 가지 커리로, 짭짤하고 고소한 여운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마지막으로 허브 향을 살린 게 수프엔 지난 시즌에 담근 소프트 쉘 크랩 어장이 들어가 감칠맛의 정점을 찍는다. 이렇듯 ‘크랩 크랩 크랩(Crab Crab Crab)’ 디시엔 태국 각 지방의 지역성과 풍미, 발효의 미학과 창의성이 고루 담겨 있다.
하지만 반 테파를 갓 오픈한 초창기엔 탐 셰프의 창의적 시도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이게 태국 요리가 정말 맞아?”란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저 같았으면 누구 앞에서든 끝까지 제 요리에 대해 설명하고 제 요리를 이해할 수 있게 설득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내려놓는 법을 배웠죠. 저는 손님에게 이 요리가 어떤 이야기와 철학을 담고 있는지 잘 설명할 수 있어요. 반면 그래도 여전히 손님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제 생각을 억지로 주입해 이해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또한 손님이 특정 알레르기를 갖고 있거나 제 디시에 대한 불호가 심각한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정해놓은 메뉴를 바꾸지 않아요. 과거에 비해 여러 모로 지금은 훨씬 더 여유로워졌죠. 때때로 제가 하는 요리에 대해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걸로 제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태국에서 전통적으로 민물 새우의 고소한 내장을 그대로 즐기는 것에서 착안한 디시, ‘민물 새우의 3가지 풍미(Anatomy of a River Prawn)’
“더욱이 요즘은 이런 흐름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제서야 깨달은 거죠. 태국 요리는 원래부터 ‘혼혈’이었단 걸요. 요즘은 일본식 절임 기법이나 프렌치 소스를 활용한 타이 디시도 많은데, 그게 무엇이든 한입만 먹어 봐도 그 뿌리가 태국인 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요. 사실 전통 레시피에도 ‘숨겨진 역사’가 있거든요. 레드 커리엔 인도 향신료 향이 나고, 포이통(Foi Thong, 황금 실타래 디저트)엔 포르투갈 수녀들이 전한 조리법이 잘 스며 있죠. 볶음 요리에 빠지지 않는 웍의 사용법 역시 화교들이 전해 준 거예요.”
“다시 말해 외국에서 건너온 조리법이나 식재료들이 태국 땅에 뿌리를 내려 200~300년을 거치면서 우리의 일부가 된 거죠. 전통은 언제나 유연하게 진화해왔어요. 중요한 건 이 기술이나 이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느냐예요. 그게 진짜 태국 요리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주방 선반엔 탐 셰프와 팀이 공들여 만든 다양한 발효 식재료가 줄지어 진열돼 있다.
이 말을 전하는 탐 셰프의 눈빛은 예리하고 단호했으며, 어조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순간, 농구 코트를 힘차게 질주하던 십대 소녀의 모습과 지금의 그녀가 오버랩되는 듯했다.
“만약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요? 하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로 남는 거라면? 그럼 저는 금메달을 택하겠어요!”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 뒤,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농담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택하지 않은 길을 동경하잖아요. 하지만 전 금메달 뒤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있는지 잘 알아요. 지금의 저는, 주방에서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고 있어요. 음식으로 문화와 사람을 잇는 것, 이 성취감은 무엇과도 비할 바 없죠.”
.jpg)
최고의 운동 선수가 될 기회는 놓쳤지만, 이제 탐 셰프는 자신의 요리를 통해 문화와 사람을 잇는 성취감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자연과 사람을 잇고, 성별을 넘어서는 셰프의 철학
Q>> ‘지속 가능성’과 ‘파인 다이닝’은 때때로 모순된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자는 절제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완성도의 극치를 추구하니까요. 혹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며 파인 다이닝 셰프로서 요리의 창의성을 희생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나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A>> 전통적인 파인 다이닝엔 심각한 낭비 문제가 있었어요. 미국과 방콕에서 일하던 당시, 주방에서 얼마나 많은 식재료가 무분별하게 버려지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죠. 예를 들면, 제가 전에 만들던 컬리플라워 아뮤즈 부쉬(Amuse Bouche)에선 꽃 부분만 색감을 내기 위해 쓰고, 줄기나 잎은 전부 그냥 버렸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죠. 버려지는 것들도 엄연히 ‘식재료’가 아니던가요?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시작됐어요. 새로운 세대의 젊은 셰프들은 환경 문제와 미래 식재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무엇보다 셰프들은 ‘가장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젠 재료를 고르는 기준이 곧 요리를 결정합니다. 이 식재료가 어디서 왔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함께 고려해야 해요. 만약 식재료의 남은 부분이 발효나 보존 처리가 불가능하다면, 또 재료의 출처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식재료라도 쓰는 걸 과감히 포기해야죠.
실제로 이런 경험도 있었어요. 예전에 한 어종의 식감을 정말 좋아해서 애용했었는데, 알고 보니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규모 상업 어업으로 잡아들인 것이었어요. 고민 끝에 이 생선 디시를 메뉴에서 완전히 빼기로 결정했죠. 셰프로서 이런 선택은 정말 괴롭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환경이거든요. 바다를 고갈시키면서까지 한 접시의 맛을 완성해야 한다면, 이 요리는 결국 지구에 해가 되는 일일 뿐이에요. 이건 오늘을 사는 셰프로서의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테파 주방에서 식재료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기준은,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고 출처를 명확히 검증할 수 있는지 여부다.
Q>> 반 테파의 디시는 종종 지역 풍토에 기반해 구성됩니다. 아카족(태국, 미얀마, 라오스, 중국에 사는 소수 민족으로 현재 태국 북부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에 80,000명의 사람들이 거주 중)의 향신료나 북부 지역의 쌀 품종에서 비롯된 메뉴처럼요. 이런 식재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건 꼭 지켜야겠다’고 느낀 사라져가는 식재료나 조리법이 있었나요? 또 셰프로서 이를 보호하려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A>> 그런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지금 저희 텃밭에서 기르는 여러 가지 허브들은 요즘 태국의 젊은 세대에겐 이미 낯선 것들이에요. 한 번은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듯한 어떤 야생 채소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대로 없어질까 두려워 바로 원산지를 추적해 재배를 시작한 일도 있었죠. 또 예를 들면, 전통 발효 기법 중에 ‘쌀뜨물과 소금으로 잎채소를 절이는 방법’이 있어요. 이런 옛 방식은 식재료를 잘 보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특한 풍미까지 더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이 전승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이 금세 잊혀질 거예요.

반 테파 텃밭에서 기르고 있는 여러 허브들은 시장에서 이미 사라져가고 있어, 태국의 젊은 세대에겐 벌써 낯선 것이 되고 있다.
Q>> 현재 반 테파(Baan Tepa) 외에 구상하고 계신 새로운 프로젝트나 계획이 있나요?”
A>> 속도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어요. 현재 두 가지 계획을 진행 중입니다. 첫째는 반 테파의 공간 일부를 ‘음식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와인 메이커(양조가)나 장인, 셰프들을 초청해 워크숍을 열고, 더 나아가 요리에 어울리는 접시와 그릇, 식기를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작업까지 시도하려 합니다. 둘째는 태국 요리 교육 커리큘럼을 훨씬 더 체계화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젊은 셰프들에게 식재료의 ‘계절성’을 가르치는 거죠. 어떤 계절의 쌀이 가장 향기로우며, 우기엔 발효 시간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요. 이런 지식은 고급 주방에만 가둬둘 게 아니라 널리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죠.

탐 셰프는 주방에서의 평등한 소통을 중시하며, 전 직원이 어떤 의견이든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Q>> 셰프님은 팀 내에서 직원들의 심리 상담 역할도 자처하시고, 주방 내에서 평등한 소통을 중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간적인 리더십’은 형식적으로만 그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A>> 진짜 소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요. 시간이 쌓여야 가능하죠. 그래서 저희는 매일 짧은 미팅을 하고, 매주 한 번은 전 직원이 모여 함께 식사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 식사 자리에선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요. 주방 기기 고장, 물품 정리 문제, 팀 간의 오해나 마찰 같은 것들도 전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거리낌 없이 논의합니다.
실제로 주방은 하루에 10~12시간을 버텨야 할 만큼 강도 높은 노동 환경이기 때문에, 안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셰프로서 위생·시간 관리·조리 퀄리티 같은 주방의 기본 규율 즉 전문적인 기준은 지키되, 이것이 위계나 권위주의로 이어져선 안되죠. 다시 말해 이런 기준을 지키는 과정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를 위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 훈련도 하죠. ‘어떤 의견이든 들을 가치가 있고, 잘못된 발언이란 건 없다’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탐 셰프는 지금이 외식업계 내 성 평등을 위한 과도기라 보고, 사회 전반에 진정한 평등이 실현될 때 ‘최고 여성 셰프(Best Female Chef)’ 상이 사라지길 염원한다.
Q>>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란 타이틀엔 성별이 전제돼 있습니다. 셰프님께서는 이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언젠간 이런 분류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바라시나요?
A>> 정말 미묘한 문제예요. 솔직히 말해 아시아 문화권에선 여성이 가족을 돌보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집안일까지 전부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죠. 저도 어릴 때부터 이런 관념 속에 자랐어요. 그래서 ‘여성 셰프만을 위한 특별상’을 처음 봤을 때, 그 의도가 충분히 이해됐어요. 특히 제가 이 업계에 막 들어왔을 땐, 각종 매체 어디에서도 여성 셰프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거든요. 한마디로 젊은 여성 셰프들이 참고할 만한 롤모델조차 없었죠.
이런 상은 사실 어둠 속에서 등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더 많은 여성들에게 ‘이 길도 가능하구나’ 란 희망을 보여주는 거죠. 사회적으로 진정한 성 평등이 이뤄진다면, ‘최고 여성 셰프(Best Female Chef)’ 같은 부문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도기죠. 이런 상이 필요하긴 하지만, 동시에 임의로 성별 구분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결국 제 바람은 언젠가 사람들이 셰프를 평가할 때 “이 셰프의 똠얌꿍엔 영혼이 있다”라고만 말하고, “이 여자 셰프의 플레이팅은 참 섬세하다”라곤 말하지 않는 날이 오는 거예요. 불 앞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은 본래 성별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