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독학으로 시작한 요리로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되다.
대한민국 미식 씬에서 ‘김건’이 갖는 무게감은 독특하다. 요리 전문 학교에서 정규 과정을 밟지도, 이름난 대가 밑에서 수련하지도 않았지만, 17년 전 연남동 뒷골목의 ‘이노시시’부터 ‘이치에’, ‘고료리 켄’, ‘회현식당’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렸다. 특히 8석의 작은 공간으로 이뤄진 ‘고료리 켄’을 통해 미쉐린 원스타를 받으며, ‘일식 셰프가 만드는 서양 요리’란 다소 생소한 장르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두루 인정을 받았다.
8석의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고료리 켄에선 김건 셰프의 경험과 시간이 녹진하게 스며든 디시를 높은 집중도로 맛볼 수 있다.
필연적 운명을 만든 플레이트 위의 세계
김건 셰프의 오늘은 처음부터 정해진 길 위에 있지 않았다. 그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셰프도, 정통 요리 학교 출신도 아니다. 어찌 보면 꽤 우연한 상황에서 요리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잠깐 경험했던 호텔 아르바이트생 시절, 재료를 빌리러 들어간 일식 주방에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받았을 때 한 번, 그리고 일본 요리의 세계를 제대로 마주했을 때 또 한 번, 점차 빌드업되던 인상이 마침내 그의 결심을 곧추세운 것이었다.
이른바 ‘독학 셰프’로 불리는 김건 셰프는 틀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에, 매번 더 창의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디시를 내놓는다.
“백색 플레이트 위에 놓인 다양한 생선회의 비주얼 그리고 그릇과 어우러진 생선의 색감이 제가 익히 알고 보아온 것들과 달리 굉장히 화려하고 예쁘더라고요. 이 한 접시의 풍경을 보고, ‘아! 일식을 해야겠구나’라고 마음 먹었죠.”
이 순간을 계기로 ‘요리’에 대한 질문과 열망을 품은 김건 셰프는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일식의 길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일식 문화는 이른바 ‘한국식 일식집’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시대의 트렌드에만 편승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갈증과 욕구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결국 그는 일본을 수없이 다니며 경험했던 현지 문화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3년 간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직접 가게를 오픈했다. 이것이 바로 이자카야의 새 바람을 일으킨 전설, ‘이노시시’였다.
(좌) ‘일식 셰프가 선보이는 양식 요리’란 컨셉트 아래, 치즈와 버터 등 서양의 식재료를 적극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풍미의 깊이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우) 정성 들인 디시는 고급 양식기에 담아내지만,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젓가락으로는 디시의 뿌리와 정체성을 또렷이 드러낸다.
‘이노시시’에서 ‘고료리 켄’까지, 창조의 여정
그의 요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낯섦’이다. ‘이노시시’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그가 선택한 방향성은 다소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고집 하나로 자신이 믿는 길을 걸었다.
무려 17년 전, 이자카야 ‘이노시시’에선 한국 술을 취급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사케와 아사이 맥주를 내놓았고, 기본 안주인 오토시(お通し)도 당연하다는 듯 값을 매겼다. 지금이야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그때는 “왜 이런 걸 돈을 받고 파느냐”는 반응이 계속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태도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김건 셰프는 첫 매장이었던 ‘이노시시’를 통해, 서로 다른 식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수준을 높이며 손님들을 차분히 설득해왔다.
물론 그의 선택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다. 일본식 안주, 등 푸른 생선,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들. 손님들이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요소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낯섦조차 자연스러운 입문의 과정이라 여겼다. “처음엔 다들 생소해 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반응이 달라져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던 것들이 어느 순간 손님들이 자주 찾는 메뉴가 되더라고요.”
그는 유행을 따르기보단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소개하는 쪽을 택했다. 대중이 이미 알고 있는 걸 반복해 보여주기보단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맛과 감각을 제안하는 쪽을 고른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가운데 분명한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료를 고르는 기준, 요리를 구성하는 방식, 손님을 마주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시간과 경험은 어느새 ‘고료리 켄’이란 이름으로 응축되었다. 단순히 음식을 내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와 태도를 전하는 장소로서 말이다.
숯불에 구운 민물 장어와 순무 구이 위로 양송이버섯 뒥셀과 표고버섯 레드 와인 간장이 더해지고, 다양한 과일로 끓여낸 버터 소스가 풍미에 레이어를 올리면서 깊이를 완성한다.
이러한 개척자 정신은 고료리 켄만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일식 셰프가 생선을 주재료로 한 서양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식의 테크닉과 재료를 바탕으로 서양 요리의 문법을 빌려오는 이 독창적인 장르는, 손님들에게 “일본 요리 같은데 서양 요리 같기도 하고, 도대체 정체가 뭐냐”란 기분 좋은 혼란을 선사한다.
13주년을 맞은 ‘이치에’ 역시 그의 원동력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100가지가 넘는 메뉴를 유지하면서도 매일 10여 가지의 제철 메뉴판을 따로 뽑는다. 그는 이 방대한 작업을 혼자 짊어지는 대신, 막내 직원까지 메뉴 개발에 참여시켜 자신이 기획하고 고민한 음식에 대해 손님에게 직접 평가 받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한다. 팀원들의 성장이 곧 업장의 완성도로 연결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노시시, 이치에, 회현식당, 그리고 고료리 켄에 이르기까지, 약 17년에 걸쳐 켜켜이 쌓아온 ‘김건 세계관’은 낯섦을 넘어 이젠 향유하고 싶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재료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요리
김건 셰프가 그간 일관되게 지켜온 신념은 ‘좋은 디시는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에게 요리는 기술 이전에 재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고료리 켄의 주방 역시 이 철학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화려한 기교보단 재료가 가진 본질을 얼마나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무엇보다 그는 해산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남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일례로 신선도만으로 재료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생선의 표면, 질감, 살결은 물론,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먹으며 성장했을지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같은 어종이라도 먹이와 서식 환경에 따라 맛과 지방의 구조가 현저히 달라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직접 어촌을 찾고, 어부들과 관계를 맺으며 재료의 출처를 면밀히 확인하고 있다.
구운 갈치와 복어 이리 위로 건보리새우와 밴댕이, 멸치, 김으로 우린 다시가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잎새버섯이 전체적인 맛의 결을 정리해 준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산 식재료에 대한 집요한 고집으로 완성된다. 김 셰프는 한두 가지 재료 외엔 모든 디시에 자연산 생선을 사용하며, 고유의 풍미와 질감을 온전히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는 요리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 환경의 변화와 기후 위기는 그의 작업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예전처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변화에 순응하되 타협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원하는 재료가 없으면 무리해서 대체하지 않고, 딱 해당 시점에 맞춰 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도 높은 재료로 메뉴를 재구성한다. 재료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 조리법, 과하지 않은 조합, 그리고 섬세한 균형감. 생선의 질감과 수분, 지방의 분포에 따라 조리 방식은 매번 달라지며, 불의 세기, 익힘의 정도, 마무리의 타이밍까지 모든 요소가 디테일하게 조율된다.
‘좋은 디시는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는 신념 아래, 김건 셰프의 요리는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또한 고료리 켄의 요리에서 인상적인 건 재료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김건 셰프는 흔히 부재료로 여겨지는 요소들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서양 요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치즈나 버터, 오일의 풍미를 동양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재료가 지닌 본질을 다른 각도에서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된장과 미소, 치즈를 ‘발효’란 카테고리 아래 같은 결 위에서 바라보며 시간이 만들어내는 깊이를 탐구하고, 간장의 감칠맛을 대신할 수 있는 서양식 재료를 새로이 접목하려 애쓴다.
차가운 호지차 판나코타 위에 치즈와 과일, 견과류의 결을 차례로 겹쳐 올려 익숙한 재료를 낯선 감각으로 풀어낸 고료리 켄의 대표 디저트
이러한 시도는 디저트 디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호지차를 우린 판나코타 위에 계절 과일을 더하고, 치즈나 술을 활용한 젤리를 곁들여 맛의 층위를 확장한다. 차가운 디저트 안에 따뜻한 차의 기억을 담고, 익숙한 재료를 낯선 방식으로 조합해 미묘한 긴장과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각 식재료가 가진 성질을 끝까지 이해한 끝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던 최후의 결과값이다.
김건 셰프의 요리는 그간의 이력이나 행보만큼이나 어떤 틀에 갇혀 있지 않다.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주재료와 부재료의 경계를 넘나들며 또 하나의 언어로 재해석된다. 이렇게 완성된 한 접시는 화려함보단 깊이를, 테크닉보단 셰프의 태도와 철학을 드러낸다. 이는 곧 ‘어떻게 만들었는지’보다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말해 주는 요리다.
스스로를 장인이라 부르진 않지만, 김건 셰프는 이미 자신만의 궤도 위에서 가장 명확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
완성된 접시 이상의 본질 그리고 미학의 끝
수만 번의 칼질과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나 이젠 베테랑이 된 셰프에게도 요리는 여전히 매 순간이 치열한 변수와의 싸움이다. 그가 접시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가장 예민하게 나타나는 변수는 뜻밖에도 기본 중의 기본인 ‘간’이다. 똑같은 음식을 내어주어도 손님마다 먹는 방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생선만 따로 썰어 먹고, 어떤 이는 소스를 듬뿍 묻혀 먹으며, 심지어 스프의 건더기만 먼저 건져 먹는 경우들도 있다.
김건 셰프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속에서도 맛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재료와 소스의 균형을 끝까지 고민하고 설계한다.
이처럼 셰프의 의도를 벗어난 통제 불가능한 변수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맛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재료와 소스의 밸런스를 극도로 정교하게 매만진다.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과 순서를 언제나 세심하게 안내하면서도, 손님이 자신에게 맞는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식사를 하더라도 본연의 맛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레시피를 치밀하게 설계한다. 이것이 바로 김건 셰프가 매일 주방에서 마주하는 고독하면서도 치열한 사투다.
이러한 예민함은 비단 맛에만 머물지 않고 시각적인 장치로도 이어진다. 서양 요리의 문법을 따르는 고료리 켄의 테이블 위엔 양식 커틀러리와 함께 ‘젓가락’이 놓인다. 이는 그가 의도한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다. 서양 식기란 낯선 풍경 속에 익숙한 도구를 쥐게 함으로써 손님이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요리 그 자체를 경험케 하는 배려이자 장치인 셈이다.
복잡함으로 자신을 증명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그의 요리는 ‘덜어냄’과 ‘비움’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독학 셰프로서 틀에 박히지 않은 요리를 선보여 온 그는 이제 또 다른 진화를 꿈꾸고 있다. 젊은 시절 에너지를 불태워가며 시도한 것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 펼친 복잡하고 화려한 퍼포먼스였다면, 이젠 ‘덜어냄’의 미학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엔 여러 가지 에너지와 기술이 들어간 복잡한 요리가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간결하고 심플한 요리 안에서 더 다양한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본질적인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재료의 위계를 나누지 않고, 각 요소를 해석의 대상이자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시선. 바로 이것이 그의 ‘호지차 판나코타’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화려한 기교보단 재료의 본질에 집중하는 요리. 과도한 풍미나 즉각적인 맛보단 원물의 힘을 또렷이 전할 수 있는 조리법이야말로 그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다. 그는 스스로를 장인이라 칭하지 않지만, 이미 자신만의 궤도 위에서 가장 명확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더는 복잡할 필요가 없는, 그래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 한 접시. 경계를 허물고 본질에 닿으려는 그의 여정은 이제 비움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미학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