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퍼러리 ‘서울 엄마’의 온기와 맵시, 수퍼판(Super Pan)

우정욱 셰프는 모계로부터 이어진 서울식(式) 밥상의 기억과 오랜 요리·미식 경험을 바탕으로 한식과 양식을 넘나드는 컨템퍼러리 서울식(食)을 구축하며, ‘수퍼판’을 통해 한 끼 식사의 의미를 관계로 확장해가고 있다.

크기와 깊이는 다를지언정 우린 모두 나름의 결핍을 지니고 있다. 다만 결코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어떻게 스스로 채워 가느냐에 따라 인생 경로는 뒤바뀐다. 살뜰하게 자식을 챙기듯, 자신을 찾는 누구에게든 따뜻한 밥 한 끼를 해 먹이며 삶의 소명을 찾았다는 ‘서울 엄마’. 거리낌 없이 환한 미소로 타인을 맞는 그녀의 다정한 테이블엔 맛있는 달란트가 가득하다. 

미식가 그리고 셰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

타고난 DNA가 모든 걸 압도할 때가 있다. 우정욱 셰프는 대대로 요리를 잘하는 모계쪽 혈통이 강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외할머니는 우 셰프의 외삼촌을 위해 담백하면서도 짭조름한 ‘너비아니’를 석쇠에 구워 찬합에 넣어 두는 게 일상이셨고, 온 가족의 먹거리론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북어 보푸라기’를 늘 쟁여 놓으셨다. 그때는 잘 몰랐던 ‘규합총서(1809년 편찬된 조선시대 최고의 고조리서)’ 속 요리가 식탁에 오르는 일도 잦았다.

30년 이상 주방을 지켜오면서 단 한 번도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없다는 우정욱 셰프. 여전히 누군가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 했다.

3대째 서울 토박이었던 엄마도 불 앞에 서는 걸 즐기셨다. 초등학교 때 도시락 뚜껑을 열면 푸드 스타일리스트 못지않은 정갈한 플레이팅으로 모두의 주목을 받았고, 돈까스나 카레 등을 싸 가면 친구들은 신기해 하며 환호했다. 이렇게 날마다 달라지는 반찬의 풍요 속 그래도 그녀의 베스트 소울푸드는 엄마가 생일 때마다 해 주시던 ‘궁중 떡볶이’ 아니 ‘떡 잡채’였다. 

“기억하기론 제가 일곱 살 무렵부터 시집 가기 전인 스물 아홉 살 때까지 항상 챙겨 주시던 음식이었어요. 제가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요. 흔히 생각하는 ‘궁중 떡볶이’와는 조금 다른데, 떡 잡채 같은 거예요. 길게 뽑은 가래떡을 세로로 가늘게 썬 다음 8등분해서 채썬 당근과 피망, 표고버섯, 고기 등과 목이버섯을 넣어 만들죠. 이것도 서울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명절에도 늘 해 먹었고, 특별한 날에 자주 접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우정욱 셰프의 수퍼판엔 이 메뉴가 시그니처처럼 오래도록 자리해 있다. 시즌별로 ‘기름 떡볶이’를 대신 내놓기도 하는데, 많은 이들에게 변함 없이 사랑 받는 건 역시 ‘궁중 떡볶이’다. 

외할머니, 엄마의 손맛과 감각, 미감을 이어 받은 사랑 가득한 내림 음식 ‘궁중 떡볶이’

“저희 엄마는 손맛과 눈대중으로만 요리하시던 건데, 제가 대치동과 이촌동에서 요리 수업을 할 땐 이걸 레시피화해서만 가르쳤었죠. 그러다 수퍼판에서 내놓기로 마음 먹었을 땐 조금 다르게 바꿔 보고 싶었어요. 그대로 따라만 하는 건 재미 없잖아요. 엄마의 레시피를 뮤즈로 삼은 건 맞지만, 여기에 제 색깔을 더하고 싶어 건나물을 이것저것 써 봤어요. 건가지, 건호박도 넣어 보고 버섯이랑 취나물, 깻잎순도 더해 보고. 말린 채소가 영양가도 좋은 건 물론 깊고 구수한 풍미를 내는 매력이 있거든요. 그리고 삶은 사태를 잘라 넣어 고급스러운 맛도 올리고. 그렇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바로 떡이었어요.”

처음엔 엄마가 하던 방식 그대로 떡을 넓적하게 떡볶이 떡처럼 썰어 넣었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식재료의 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식감과 맛이 좋은 조랭이떡을 찾아 수소문하다 아시아선수촌 쪽에 조랭이떡 뽑는 기계를 갖고 있는 떡집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거기서 떡을 받았죠. 이걸로 궁중 떡볶이를 만드니까 나물이랑 떡의 사이즈도 잘 맞고, 양념이 잘 배면서도 어색함 없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외국 사람들이 와서 맛보면 ‘뇨끼’ 같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기도 하고. 저만의 디시로 완성하기까지 꽤 집요하게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우정욱 셰프는 조리 과정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점검하며, 주방의 파수꾼이자 헤드 셰프로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다.  

그녀가 일종의 유산처럼 얻은 미각과 미감, 혀끝으로 기억하는 내림 음식은 생각보다 버라이어티하다. 거슬리는 육향 없이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양지머리 무국부터 백명란 새우젓 찌개, 장산적(약산적) 등 깔끔한 풍미와 단정한 맵시가 돋보이는 서울 토박이 음식 일색이다. 이처럼 우정욱 셰프는 어릴 적부터 자극적인 양념으로 맛을 내기보단 좋은 식재료를 선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감칠맛을 올리고, 밸런스를 맞추는 조리법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멋쟁이 미식가셨다. 주말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맛집 탐방에 나서셨는데, 말로는 귀한 세 딸들이 근사한 식당에 데려가는 남자를 만나면 행여 쉽게 반해 버릴까 일종의 교육 차원에서 좋은 식당을 데려 가시는 거라 했다. 

“엄마가 워낙 요리를 잘하셔서 그런지 아버지 입맛도 섬세하셨던 거 같아요. 안 먹어 본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크셔서 아버지가 저희 가족 모두를 식도락가로 만드셨죠. 또 결혼 후엔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일본은 1년에 몇 번씩, 도쿄만 한 60번 넘게 다녀온 것 같아요. 남편이 건축 일을 했으니까 유럽도 많이 갔고. 그때마다 남편과 해외에 있는 좋은 식당을 발품을 팔아가며 정말 많이 찾아다녔어요. 안 먹어 본 음식이 없을 만큼 60년 이상의 경험치가 축적됐을 테니, 무엇이든 첫 맛을 볼 때면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아요. 요즘도 해마다 해외로 미식 여행을 떠나고, 국내에 있을 때도 틈만 나면 비스트로부터 파인 다이닝, 동네 맛집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녀요. 내가 생각치 못한 새로운 걸 계속 접해야 저도 녹슬지 않거든요.”

우정욱 셰프의 수많은 미식 경험을 통해 이탤리언 전채 요리 ‘카르파초’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엿볼 수 있는 ‘문어 아보카도 칵테일’

대치동 요리 선생에서 ‘수퍼판’ 우정욱이 되기까지 

그렇다면 그녀의 머릿속엔 얼마나 방대한 양의 요리 데이터가 빼곡히 차 있을까. 사실 우정욱 셰프의 요리 스펙트럼은 그간 여러 차례 출간한 레시피 책과 ‘전설의 대치동 요리 선생’으로 불리던 쿠킹 클래스의 명성만으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건축가 남편이 맡은 ‘수퍼판’의 공간 인테리어는 감각적이면서도 캐주얼한 멋으로 곳곳에서 빛이 난다.  

“1990년대 초반즈음, 동아일보에서 ‘21세기를 빛낼 요리 연구’란 책을 같이 써 보자고 제안이 온 거예요. 당시 유명 요리 선생님들도 일본 책을 참고하던 시절이라, 우리 가정식 요리를 자세히 알려 주는 책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큰 히트를 쳤죠. 그때 푸드 스타일링을 맡아 주셨던 분이 노영희 선생님이셨어요. 이틀 동안 60가지 요리를 정신없이 만들고 찍고 했었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일종의 팬덤이 생기고, 그녀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이들이 쉴 새 없이 늘어났다. 입맛 까다로운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자주 모여 밥을 차려 먹는 화목한 시댁 가풍 덕에 1년에 4번 이상은 필히 30인분 잔치급으로 음식을 준비하곤 했었는데…. 가족 행사나 손님을 초대할 일도 유독 많아 솜씨엔 꽤 자신 있었지만, 낯선 누군가에게 우정욱표 요리를 선보이며 레시피까지 전수하는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우정욱 셰프는 양념과 토핑은 덜어내고, 섬세하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을 택해 한끗의 차이를 만든다. 

“쿠킹 클래스는 저만큼 솜씨가 좋았던 제 여동생이 먼저 시작했는데, 저는 한 팀만 가르쳐 볼 요량으로 소소하게 도전했었죠. 그런데 요리책을 내고 나니까 수강 문의가 계속 오는 거예요. 대치동 미도 아파트가 붐빌 정도였죠. 또 제가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교류하는 걸 즐기다 보니, 연이어 수업을 진행하느라 굉장히 바빠졌었죠. 그래도 뭘 한 번 하면 끙끙거리면서도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라 이걸 25년이나 했네요.”

대치동에선 워킹 맘이 아이를 제대로 챙겨 먹일 수 있는 동서양 가정식을, 이촌동에선 젊은 주부에게 도움이 되는 일상 한식과 일품 요리를 가르치며 어느새 ‘명문가 며느리 요리 선생님’이란 별칭도 얻게 됐었다. 이렇게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이번엔 메뉴를 기획하는 F&B 컨설팅 의뢰였다. 

겨울 시즌 한정판으로 만날 수 있는 ‘한우 기름 떡볶이’는 풍성한 고급 식재료의 배합으로 부잣집 잔치 음식 같은 느낌이다.  

“타워팰리스에 신규 오픈한 ‘카페 톨릭스’란 매장이었는데, ‘잇탈리(Eataly)’를 표방해서 만든 거였어요. 100평, 80석에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처음엔 메뉴 몇 가지를 부탁해 그거만 맡았다가 깊게 인볼브되면서 1년 간 주방장까지 했었죠. 주방팀 인원 여럿을 데리고 일도 많고 고생도 많았는데 제가 떨어진 매출을 끌어올리느라, 고추장 없는 소스로 ‘쭈꾸미 떡볶이’를 만들어 본 거예요.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죠. 이후로 ‘카페 톨릭스’가 타워팰리스의 명소가 됐어요.”

이렇게 요리 경력 25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레스토랑 ‘수퍼판’을 내게 됐다. 그리고 바랐던 건 한 가지였다. 내가 차린 음식을 먹은 누군가가 행복한 기운을 얻고, 세상 속으로 나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온 정성을 다한 밥정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길 꿈꿨다. 실제로 그녀는 17년째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인 ‘컴패션(Compassion)’을 후원하며,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 먹이고 있다. 

 ‘수퍼판’에선 결이 다른 온기와 다정한 환대로 가득한 힐링 밥상을 받아 볼 수 있다. 

한식과 양식의 경계를 리드미컬하게 넘나드는 오늘의 서울식

올해로 11년차를 맞은 수퍼판. 이곳에서 그녀의 요리 인생은 어떻게 무르익고 있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우정욱 셰프는 하나의 장르로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음식을 만든다. 외형적 비주얼은 이탤리언 어란 파스타가 분명함에도, 면을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면 그렇게 찰떡일 수 없고, 흡사 샐러드 같은 그녀의 청량한 서울식 김치가 어김없이 간절해진다. 시래기 리조토는 첫인상부터 동서양의 치명적인 조화가 엿보인다. 크리미하게 녹진한 소스는 이탈리아를 은유하는데, 푸짐하게 들어간 시래기와 건 도토리묵, 잔멸치, 무 등은 지극히 한국적인 맛의 레이어다. 

부드러운 시래기와 쫄깃한 건 도토리묵, 바삭한 잔멸치 등의 합이 포텐을 터뜨리면 입안에선 절로 축제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수퍼판의 황금 시그니처 ‘서리태 마스카포네’를 맛보면 이러한 관점은 금세 반전된다. 콩자반과 콩밥으로 익숙하던 서리태가 이탤리언 마스카포네 치즈를 만나 이국적인 서양식 에피타이저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참을 수 없이 근사하게. 

“이 메뉴는 톨릭스에서 와인과 페어링할 디시로 먼저 선보인 건데 수퍼판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하루 농부의 서리태를 받아 쓰고 있어요. 이렇게 식재료가 단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료의 퀄리티와 조리 노하우죠. 일본에서 흑태로 만든 콩조림을 맛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 말랑말랑한 식감을 내기 위해 소다도 들어가고, 설탕과 소금을 정확한 비율로 넣어 2시간 동안 삶는 등 공을 많이 들여야 해요.”

갓 구운 발효빵에 서리태와 마스카포네 치즈가 하나를 이룬 고소하고 크리미한 풍미를 올리면 천하일미가 따로 없다.  

우정욱 셰프는 주로 재패니즈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가면 거기서 얻는 데이터가 막대하다고 했다. 즉 그녀의 발달된 감각 레이더 망에 어떤 메뉴가 딱 걸리면 흩어져 있던 정보가 하나로 모이면서, 신메뉴 레시피가 설계 도면처럼 단계별로 구조화되는 셈이다. ‘시래기 리조토’ 이상으로 인기가 있었던 ‘라구 리조토’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히트작이 됐다. 일본의 한 레스토랑에서 라구 파스타에 간 고기 대신 불고기감을 쓰는 걸 보고, 식감과 풍미를 살리는 데 꽤나 신박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면을 밥으로 바꾸고 그녀만의 특제 소스에 스지까지 더했더니,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수퍼판 스타일의 ‘라구 리조토’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지난 몇 년째 불멸의 인기 메뉴인 ‘어란 파스타’에도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만의 감각적 조합이 기분 좋게 도드라진다. 스페인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기본으로 이즈니 버터와 쯔유가 들어가는데, 표고버섯과 멸치 우린 물로 직접 만드는 우정욱표 쯔유가 이 디시의 절묘한 킥이다.

‘어란 파스타’는 남은 소스에 밥을 비벼 봐야 진정한 매력을 맛볼 수 있고, ‘시래기 리조토’는 김치와 페어링할 때 미식의 끝을 경험할 수 있다. 

“어란 파스타를 드시는 분들에겐 갓 지은 쌀밥을 반 공기 정도 서비스로 드리는데, 면을 먹다 밥을 비벼 먹으면 다들 더 맛있다고 해 주세요. 제가 직접 만든 쯔유로 어란 특유의 비린내를 잡고 감칠맛을 올린 건데, 마지막에 버터를 아주 조금씩 더해 올리브유만으로는 낼 수 없는 진한 여운을 묵직하게 끌어올렸죠. 특히 이탤리언 스타일 파스타만 먹으면 다소 물릴 수 있는 부분을 이 쯔유가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아요.” 

수퍼판에선 어떤 디시를 택하든, 어디서도 먹어 본 적 없는 우정욱 셰프만의 색깔을 체감할 수 있다.  

이렇게 그녀는 숨쉬듯 신메뉴 레시피를 쏟아내며 무엇이든 뚝딱뚝딱 쉽게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치열하게 쌓인 노력과 시간의 산물이란 걸 우린 잘 알고 있다. 한식의 탄탄한 기본기 아래 컨템퍼러리 서울食이란 관점에서 오감이 기억하는 재패니즈 스타일 이탤리언, 프랑스와 스페인, 일본의 음식 등에서 비롯된 소스와 조리법을 과감하게 섞어 잘 버무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남들이 안 해본 걸 시도하기 좋아하죠. 그래서 메뉴도 자주 바꾸고, 같은 걸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유지하지도 않아요. 시즌별로 식재료를 다르게 쓰거나 관심이 가는 식재료가 나타나면 그걸 기존 메뉴에 응용해 써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면서 기존 메뉴를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하려고 애를 써요.” 

수비드로 조리한 고기를 수제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 기름기를 빼고 담백함과 감칠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 ‘흑돼지 보쌈’

식구를 만드는 식탁, 정이 깃든 호스피탈리티

수퍼판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포근한 집에 사적으로 초대 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환대 속에 이 공간의 온기를 온몸으로 머금게 된다. 우정욱 셰프는 주방에서 한창 바쁜 중에도 잠시 짬이 날 때면 어김없이 테이블 주변을 오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식사는 어떠신지’,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오느라 고생하신 건 아닌지’ 등 살갑기 그지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옆집 엄마처럼 다정한 말투, 온화한 미소, 겸손한 태도는 두 눈을 맞추는 순간, 식구 같은 유대감으로 부드럽게 연결된다. 

‘수퍼판’의 정감 어린 분위기는 사적으로 귀하게 초대 받은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손님이 앉은 자리에서 전개되는 매니저들의 테이블 서비스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못지않게 섬세하다. 물회가 나올 땐 먹기 직전 이탤리언 화이트 발사믹 비네거를 더해 주는데, 소스에 대한 설명에도 빈틈이 없다. 디시 하나하나를 이야기할 땐 디테일이 남다르고, 어떤 조합과 순서로 먹으면 가장 이상적인지 차분하면서도 정겹게 안내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친밀함이다. 

“프로 같은 마인드에 정성과 진정성을 더하는 거죠. 그게 우정욱답고, 수퍼판다운 것 같아요. 누구든 친정집에 온 듯 친근하게 케어 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게 저와 우리 팀이 제일 잘하는 거기도 하고요. 손님들이 여기서 힐링하고 밥심을 얻어 나갈 수 있다면 제가 기도한 바를 이루는 거겠죠.”

주방에서 한창 바쁜 중에도 잠시 짬이 날 때면 어김없이 테이블 주변을 오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우정욱 셰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밥을 해 먹이기 좋아하는 그녀는 심지어 오프날에도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곤 한다. 그중 단골 정예 멤버는 평소 친하게 지내고 예뻐하는 여자 후배 셰프들이다. 

“추석 때도 불렀던 것 같고, 김장 김치도 내어 주고.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셰프, 꼼모아의 김모아 셰프, 물랑의 윤예랑 셰프 등등 여성 셰프들의 모임을 자주 갖는 편이에요. 제가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같이 수다도 떨면서 에너지도 얻고. 마음이 잘 맞아서 그런지 솔직히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먹은 누군가가 행복한 기운을 얻고, 세상 속으로 나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녀는 주6일을 바삐 살며 유쾌한 언니 혹은 누나로 젊은 셰프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있다. 김호윤 셰프와 신동민 셰프의 유튜브에도 출연했는가 하면, 한남동 시칠리 이흥주 셰프를 비롯해 손종원 셰프와도 팝업 스토어를 열고, 혈혈단신 베를린으로 건너가 와일드 덕칸틴의 젊은 친구들과는 세상 힙한 와인 바에서 팝업 행사도 진행했었다. 

“제 자리에 멈춰 있는 걸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세대가 다른 셰프들과 함께하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배우게 되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도 겁은 나는데 일단 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몇 번이고 망설이다 <흑백 요리사 시즌 2>에도 나가게 됐고요. 서울 엄마와 오남매로 칭할 만큼 자식 같은 후배 셰프들을 얻게 돼 기쁘기도 하고. 많이들 응원해 주셔서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정욱 셰프는 삶을 대하는 밝고 긍정적인 태도, 타인을 보듬을 줄 아는 너른 마음을 그녀의 음식에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실 단 한 번도 엄마로 불릴 수 없었던 그녀의 사연을 알고 나면, <흑백 요리사>가 선물해 준 ‘서울 엄마’란 닉네임에 괜시리 뭉클해진다. 지난날의 결핍을 밥정이 듬뿍 담긴 요리로 완성하기까지 우정욱 셰프가 걸어온 시간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어려 있을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다국적의 식구를 무수히 안게 된 그녀의 품 안엔 온기만이 차오를 뿐이다. 자신이 대접받기보단 상대를 대접하는 일에만 몰두해 온 요리 인생. 그녀의 세월을 꼭 한 번 안아 주고 싶었다. 

단락

Writer 전채련(Chaeryeon June)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Photographer 오충근(Choong-keun Oh)_ studio. choo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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