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빚는 숙수의 소반, ‘권숙수’
작가 Susan Cho

권우중 셰프는 한식의 DNA를 지키며, 발효와 시간의 미학을 기반으로 한식의 기틀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숙수(熟手)’는 지금 일상에선 거의 쓰지 않는 단어다. 조선시대 옛 문헌 속에서나 겨우 발견되는 말로, 귀빈을 위한 잔치와 연회를 총괄하던 전문 조리사를 뜻한다. 즉 숙수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음식이 나오는 순서와 속도, 사람의 움직임과 자리를 함께 책임지던 존재였다. 이러한 이유로 숙수에게 ‘음식’은 기술이기 전에 ‘질서’였고, 동시에 ‘태도’였다.

숙수의 이름으로 시작한 본질적 한식

‘셰프’란 말이 훨씬 익숙한 시대에 ‘숙수’란 이름으로 간판을 올렸다는 건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권숙수’, 권우중 셰프 역시 처음부터 이 이름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너로서 첫 레스토랑을 열며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어색해서이기도 했지만, 긴 고심 끝에 결국 ‘숙수’란 단어를 택했다. 본인이 다루는 ‘한식’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자, 스스로에게 씌운 무게였다.

(좌) 한 해 동안 숙성한 간장에 다시 메주를 더하는 ‘겹장’에서 출발한 김치. 권우중 셰프의 해석을 거쳐 시간의 층을 쌓는 ‘겹김치’로 완성되었다. (우) 소반 위에 놓인 한 사람의 식사. 권숙수의 주안상은 산미와 육향, 발효의 잔향이 겹치면서 식사의 첫 장을 연다.  

그는 이 이름이 자신을 계속 멈춰 세운다고 말했다. 더 새로워질 수 있는 순간에도, 더 세련된 표현이 가능한 지점에서도 무엇이든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음식을 만들 때마다 이것이 정말 한식의 문법 안에 있는지, 이 접시가 ‘숙수’란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 매번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어디까지 지켜야 하고,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먼저 생각하게 하는 이름. ‘권숙수’는 이렇게 시작된 레스토랑이다. 그리고 지난 11년간 국내 미식 업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권숙수의 낮은 테이블 높이는 소반을 놓아 손님과 시선을 맞추기 위함이다. 특히 이는 한식을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경험케 하는 의도적인 장치다.

익숙함을 넘어 한식의 DNA를 지키는 것

대한민국에서 한식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난관은, 대중(손님)이 이미 그 맛을 잘 안다고 확신하는 점이다. 김치와 국, 나물과 장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익숙함이란 전제는 한식 파인 다이닝에서 디시를 내놓을 때 가장 까다로운 지점이 된다. 낯설게 만들면 ‘왜 굳이?’란 의문이 돌아오고, 그대로 두면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권우중 셰프는 이 모순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가장 먼 길을 택했다. 한식의 DNA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직접 만들겠다는 것. 간장과 된장, 고추장부터 김치와 장아찌까지 요리의 출발점이 되는 모든 것을 직접 핸들링하며, 이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 한다.

‘숙수’가 가진 의미를 스스로의 기준으로 삼는 권우중 셰프. 그는 한식을 확장해 나갈 방법과 이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매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고집스러운 태도는 유년 시절의 기억에 뿌리를 둔다. 요리사 집안에서 자라나며 제대로 된 음식의 기준을 몸으로 익힌 그는, 유명 한식당조차 시판 조미료를 조합해 맛을 내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설명은 화려하지만 뿌리는 얕아 보였던 당시 한식의 현실을 보며, 그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한식의 자리’를 보았다. 이렇게 2015년 7월, 권숙수는 한식의 구조와 근간을 만드는 레스토랑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권숙수의 요리는 주방이 아닌 가평의 전용 발효실에서 출발한다. 그는 어릴 적 가평의 일가들 사이에서 먹고 자란 맛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이 지역의 재료와 공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매번 장과 김치를 담그는 일은 레스토랑의 운영 효율 측면에선 비합리적일지 모르나, 그에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초 공사 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요리에 맞는 그릇을 직접 고르고 메뉴를 구상하는 권우중 셰프의 그릇장

이후 10년이 흐르며 권숙수의 장엔 빈티지가 생기고, 데이터가 쌓였다. 이제 그는 장을 시간의 층위로 다룬다. 일반 요리엔 2021년산 간장을 사용하고, 감칠맛을 내는 어육 간장은 반드시 2016년산을 고집한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그의 요리는 압도적인 깊이와 무게감을 갖고 있다.

또한 이 귀하디 귀한 노하우를 다른 셰프들에게도 기꺼이 공유한다. 여타 레스토랑의 셰프가 서양의 소스는 직접 만들면서 한식의 핵심인 장은 시판용을 구해 쓰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반드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을 직접 담그고 다루는 문화가 정착될 때, 한국 음식 전반의 시스템이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이것이 그가 가진 책임감이다.

(좌) ‘익숙함’이란 장벽 앞에서 권우중 셰프는 가장 먼 길을 택했다. 한식의 시작을 직접 만들고 끝까지 다루는 것, 이것이 바로 권숙수의 원칙이다. (우) 과거의 숙수와 오늘날의 셰프는 맛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식사의 흐름과 질서까지 책임지는 존재란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소반 위에 올린 한 사람을 위한 식사 그리고 김치 카트

권숙수의 음식은 모두 낮은 소반 위에 오른다. 크고 화려한 테이블 대신 단정한 소반을 고집하는 건 한식을 ‘코스’가 아닌 ‘개인의 식사’로 만들고 싶은 권우중 셰프의 마음가짐 때문이다. 여기서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건 주안상이다. 각각 독립적인 요리들이 한 상에 오르며 산미와 육향, 발효의 잔향이 리드미컬하게 뒤엉키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권숙수의 소반 위에 오르는 장들은 10년의 시간 속에서 빈티지가 되고, 맛의 층위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곳의 디시들은 고서의 레시피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대신 셰프의 기억을 파인 다이닝의 언어로 세련되게 치환한다. 먼저 ‘오이꽃 버섯 육회’는 여름 산의 버섯 향과 시장에서 맛본 육회의 질감을 한식 조리법으로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권우중 셰프는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느껴질 수 있는 애매한 감각적 반응을 세밀하게 조율해 이 디시를 완성해냈다. 

여름 산의 버섯 향과 육회의 질감이 겹치는 순간을 만들어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조율해낸 ‘오이꽃 버섯육회’ 

반면 ‘능이닭날개’는 진한 방향성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닭날개’란 소박한 부위와 ‘능이’란 강렬한 재료를 통해 한식의 힘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설명이 없어도 납득되는 맛, 이렇게 직관적인 힘이 곧 그가 지향하는 현대 한식의 또 다른 면이다.

능이의 짙은 향과 닭날개의 담백한 결이 맞닿아 식재료 합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능이 닭날개’ 

그럼에도 이곳에서 가장 상징적인 메뉴를 꼽자면 단연 ‘김치 카트’다. 매 서비스 때 준비되는 8종의 김치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색을 갖추고 있다. 그중 ‘겹김치’는 한 해 전에 담가 둔 간장에 다시 메주를 넣어 숙성시키는 ‘겹장’의 원리에서 비롯됐다. 1차 숙성한 백김치 속에 한우 양지와 산낙지, 자연산 대하, 전복을 넣어 말아낸 후 배즙과 양념을 더한 국물로 2차 숙성시키는데, 이는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레시피로 권우중 셰프의 재해석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하나의 독립된 ‘김치 디시’라 할 수 있다. 

권숙수의 상징적인 서비스인 ‘김치 카트’는 권우중 셰프의 긴 고민 끝에 탄생하게 됐다. 손님에게 선택을 건네는 방식으로, 김치를 그저 반찬이 아닌 하나의 디시로 경험케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서구의 치즈 트롤리처럼 손님이 직접 김치를 골라 보는 경험을 제공해, 손님은 친숙했던 김치에 호기심과 의구심을 가지면서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김치는 무엇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등, 이러한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김치는 식탁 위 조연인 ‘반찬’에서 주인공인 ‘디시’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권우중 셰프는 김치를 디시로 내는 방법을 고민하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손님에게 ‘선택’이란 방향키를 건네게 됐다. 

매 서비스에서 새롭게 준비되는 ‘김치 카트’를 통해, 계절의 맛을 지닌 각양각색의 색다른 김치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미래의 프렙, 숙수의 이름으로 남는 것

권숙수엔 ‘미래의 프렙(Prep)’이란 독특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권우중 셰프는 5년 혹은 7년 뒤에 완성될 맛을 미리 계산하고 설계한다. 일례로 지난해 선보인 ‘가죽나물 장아찌’는 고추 재배부터 숙성까지 무려 7년의 시간을 축적한 요리였다. 이처럼 궁극적인 맛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긴 호흡으로 시간을 설계하는 방식이야말로 권숙수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권숙수의 ‘미래 프렙’은 장독 안에만 있진 않다. 함께 일하는 셰프들이 훗날 오너 셰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역시 그가 설계하는 시간에 포함된다. 

이뿐이 아니다. 그는 주방의 후배들이 훗날 ‘오너 셰프’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인큐베이팅 역시 미래 프렙의 핵심으로 둔다. 그저 레시피를 전수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메뉴와 식재료의 코스트 관리부터 인사, 기물 제작, 나아가 레스토랑의 운영 및 경영에 관련된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한다. 또 이들에게 ‘네가 만든 요리가 곧 네 자존심’임을 강조하며, 재료를 다루는 정직함이 요리사의 생명임을 가르친다. 

이밖에도 직원들의 성과에 따라 해외로 시장 조사를 하러 보내는 등 파격적인 지원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큰 그림은, 권숙수를 거쳐 간 이들이 한국 음식 전반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한식 다이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게 권숙수의 내일은 장독 안에서도, 함께 땀 흘리는 후배 셰프들의 성장 속에서도 잘 익어가고 있다.

(좌) 권숙수의 ‘미래 프렙’은 시간을 공들여 쌓아올리며 완성도를 최대치로 높이는 가장 근본적인 경쟁력이다. (우) 권우중 셰프의 그릇장엔 그의 취향과 감각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권숙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장독은 늘어나고, 다음 디시는 이미 몇 해 앞을 내다보며 준비되고 있다. 빠르게 소비되기보단 천천히 이해되길 바라는 공간,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공간.

이곳에서 그가 정의하는 좋은 요리는 명쾌하다. 만드는 사람 스스로 누구에게나 떳떳할 수 있는 요리. 요리를 해 나가는 과정에 부끄러움이 없고 진실한 결과를 내는 음식을 하는 것, 이것이 그가 지향하는 행복이자 꿈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인 이북식 김치말이 한 그릇을 마음속 뿌리에 두고, 그는 오늘도 무게감 있는 ‘숙수’란 이름을 붙잡는다.

자신의 기술을 독점하기보다 후배들과 나누고, 한식의 DNA를 지키기 위해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일. 권우중 셰프는 이렇게 권숙수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뿌리를 세웠다. 

한식의 DNA를 직접 만들고 끝까지 다루는 것뿐 아니라 이 노하우를 나누는 일까지, 그에겐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숙수로서의 책임이다.

단락

Writer 조정인(Susan Cho)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Photographer 정준택(Joon-taek Jeong)_ Fun & Benefi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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