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차림을 통해 한식의 본질을 찾는 ‘레스토랑 주은’의 전통 속 오늘
서울의 가장 역사적인 장소, 경희궁길을 걸으면 ‘레스토랑 주은’을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빚은 한식의 질서를 정교하게 보여주는 이곳을 이끄는 박주은 셰프를 만났다.
한식의 본질을 향한 접근 방식
박주은 셰프에게 ‘한식의 본질’을 묻자, 그는 상차림의 풍경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 땅에서 자란 제철 재료가, 시간을 들여 축적한 장과 젓갈, 김치 등의 저장 음식을 만나 한 상에 함께 놓이는 모습. 계절의 즉시성과 시간을 담은 정성이 조화를 이루며 발효와 간, 식감과 온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 안에는 생활과 문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다. 그에게 한식은 특정한 레시피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식사’이자, 계절과 시간, 사람의 삶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리듬이다.
삶의 방식과 시간의 리듬 속에서 한식의 본질을 풀어내는 박주은 셰프
한상차림을 주은의 중심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차림에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 풍성함을 중시하는 너그러움이 담긴다. 다채로운 맛의 레이어가 반찬의 형태로 차려지고, 먹는 형태도 자유롭다. 국에 밥을 말아도 되고, 비벼 먹어도 되고, 하나씩 천천히 맛을 봐도 된다. 한상차림은 ‘허용’의 식사다. 하지만 이 뒤에는 셰프의 치밀한 계산이 있다. 상차림을 구성하는 개별 음식의 온도와 상태가 정확해야 하며,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갖춰야 한다.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주방과 홀이 함께 움직인다. “한식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감정은 풍성함입니다.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한식의 맛을 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죠.” 그는 코스를 줄이고 반상을 더 풍성하게 구성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한식의 정체성과 감동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주은 셰프에게 다양한 조리 기술을 적용하고, 새로운 상차림을 고민하는 것은 지금의 삶 속에서 한식이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방식이다.
셰프의 치밀한 계산과 넉넉한 마음이 어우러져 각 요리의 개성과 전체적인 풍성함이 보이는 주은의 반상
한식을 하는 이유
“한식의 명맥을 잇겠다는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일을 할수록 점점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박주은 셰프는 초년 시절 해외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한국인 요리사’로 인식되는 환경을 체감하고, 결국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많은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서양식 조리 문법을 기반으로 한식의 요소를 더하는데, 박 셰프는 생각을 바꿔 처음부터 한식을 제대로 배우고 한식의 철학과 감정을 출발점으로 삼아보고 싶었다. 이후 그는 한식의 대모로 존경받는 조희숙 셰프의 ‘한식공간’에서 수련하며 한식의 원형과 현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식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윗세대의 맥이 끊어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그는 점점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제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라며, 그는 한식이 선택이 아니라, 이어가야 할 문화의 가치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주은 팀은 현장에서 한식과 한국 문화를 만난다. 실제로 지방을 찾아가 향토 음식을 배우고, 윗세대 장인과 연구자들을 직접 만난다.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손맛과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박주은 셰프는 ‘손맛’이라는 미묘한 감각을 몸으로 배우고 기록하려 한다. “죽을 끓일 때 너무 많이 저으면 풀내가 나고, 그렇다고 젓지 않으면 눌어붙는데, 이 미묘한 지점은 열정을 가지고 배우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부분입니다.” 완전히 데이터로 바꿀 수 없더라도, 반복과 관찰을 통해 고유한 조리법이 되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장인과 연구자를 찾아 다니며, 데이터로 환원할 수 없는 손맛의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주은 팀
최근에는 다식 틀과 떡살을 만드는 김규석 목공예 명장을 찾아가 다식 틀을 제작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플라스틱 틀이 아니라, 각각의 모양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주은이 전하고 싶은 상징을 담기 위해서였다. 장인의 손을 거친 도구에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고, 그 마음은 음식에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외에도 통영 음식 연구자인 이상희 연구가, 지리산에서 활동하는 고은정 선생 등 다양한 한식 연구가를 찾아 배운다. 고은정 선생에게 배운 ‘고추자박이’는 서울에서 자란 직원들에겐 처음 보는 한식이었다. 박주은 셰프는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잊혀지고 있는 음식이 매우 많다며, 이런 맛을 다시 찾아 배우고,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릇과 식기 등의 공예품, 공간의 디자인도 한식의 유산을 잇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정말 뛰어난 도예 역사가 있고, 공예품도 다양해요. 저희 팀은 지방에 가면 식재료뿐 아니라 꼭 그릇이나 기물을 만드는 장인의 공방에도 들러요. 작가님의 나이나 명성보다, 저희와 맞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더 중요하죠.” 이렇게 셰프는 분청, 옹기, 청자, 백자, 흑자, 청화백자, 목기, 유기까지 거의 모든 범주의 기물을 활용하며, 이 다양성을 코스 안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홀 벽면을 채운 미디어 아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오픈 소스를 활용한 수묵화 영상이다. 룸의 벽면은 산수화를 모티프로 한 장응복 디자이너의 벽지를 이용하며, 곳곳에 규방의 소품과 크고 작은 공예품이 가득하다. 주은은 이처럼 음식과 공간, 시각적 요소가 하나의 리듬을 이룬다.
주은 팀은 현재 살아 숨쉬는 한식의 현장과 한국의 문화를 만난다.
주은이 하는 한식의 근간이 되는 장
박주은 셰프에게 장은 한식의 구조를 만드는 존재로, 맛의 뼈대를 맞추는 근간이다. 주 양념이 바뀌면 음식 전체의 색이 달라진다. 장을 빼고는 한식이 완성될 수 없고, 장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같은 요리라도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궁중에 장을 관리하는 장고가 따로 있었고, 장맛이 틀어지면 나라에 변고가 생긴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장은 중요한 존재였다. 그만큼 장은 음식이자 문화이며, 집집마다 결은 같아도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장에는 그 집안의 풍습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다.
“저희 주은에서도 매년 직접 장을 담급니다. 저희 테라스에 나가면 3년 된 된장부터 햇된장까지 다양한 장이 있어요. 저희 장이 한국에서 제일 좋은 장은 아닐지라도, 장을 담그는 것에도 분명한 가치가 있어요. 한식을 하는 요리사들이 ‘좋은 장은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가깝고 실질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은 팀이 장을 담그는 과정은 교육이자 훈련이다. 장을 담가 보는 행위를 통해 데이터를 쌓는다. 장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 많은 배움이 깃든다.
한식의 뼈대를 이루는 장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매년 직접 빚는 주은의 장
한식의 고유성과 특색을 파인 다이닝의 문법으로
각 지방의 전통적인 한식은 종종 직설적이고 강렬한 양념이 인상적이다. 박주은 셰프는 맵거나 짠 양념을 순화하기 전에 이런 요리가 생겨난 이유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료와 환경, 저장법과 식사하는 방식이 모두 깃든 결과이기 때문이며, 본연의 맛 또한 지금의 문화가 지켜가야 할 한식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에서 주은의 ‘병어찜’은 매콤한 양념으로 원형의 생선 조림 맛을 표현하되, 다양한 채소를 함께 올려 맛과 식감의 레이어를 만들고, 밥 대신 해물 육수로 끓인 죽을 곁들여 먹는 방식으로 확장한다. 강렬한 한식의 매력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만드는 접근이다.
향토 음식 특유의 강렬한 맛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레이어로 확장한 병어찜과 죽
낙지 냉채에서도 같은 태도가 드러난다. 계절에 따라 가을에 나오는 청유자나 청귤 즙은 물론이고 껍질의 제스트를 더해 향을 쌓아 올리는 등 낙지 냉채의 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맛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다. 지역 음식이 가진 힘을 존중한 상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다른 층위로 옮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도 그가 지키려는 것은 한국 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재료와 저장 음식의 원형이다. 장과 김치,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김치를 옹기에 담아 보관하고, 깨를 절구에 빻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차이인 것 같아도 이런 방식이 한식의 맛과 결을 만들어요.” 물론 전통적인 한식 조리 방식을 이해하되, 더 좋은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접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셰프는 덧붙인다. 전통을 존중하며 지금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정직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식의 결을 지키며 계절의 향과 현대적 감각을 더한 낙지 냉채
박주은 셰프는 한식의 표현과 미적 감각은 시대와 생활상에 따라 달라졌을 뿐, 뿌리는 하나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한식’이라고 이해하는 요리 품목도 오랜 세월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어지며 변화한 것들이다. 지금 그는 한식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한식의 유산 가운데 무엇을 잇고 남길 것인가에 집중한다. 커다란 유산이 시대를 지나 이어지도록 명맥을 지키는 것이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의 정통성’이다. 그리고 주은의 요리는 이러한 흐름 위에 놓인 현재형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는 다음 세대에게 다시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