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거쳐 내 땅의 맛으로: 솔밤 X ANDO

엄태준 셰프의 솔밤과 아구스틴 발비 셰프의 Ando, 세계를 지나온 두 셰프가 자신의 뿌리와 기억을 요리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7월의 첫번째 일요일, 솔밤의 주방에 두 셰프가 나란히 섰다. 한국의 계절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엄태준 셰프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홍콩에서 자신의 요리 언어를 만들어 온 아구스틴 페란도 발비(Agustin Ferrando Balbi) 셰프가 그 주인공.

출발점도 과정도 다르지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세계를 향해 가장 멀리 걸어간 끝에, 결국 자신의 뿌리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 서울과 홍콩, 한국과 아르헨티나, 계절과 기억, 그리고 여정 끝에 다시 발견한 고향을 주제로 두 셰프가 함께 특별한 저녁을 선보였다.

 

홍콩 ANDO의 아구스틴 발비 셰프와 서울 솔밤의 엄태준 셰프

전통으로부터 찾은 가장 현대적인 테이블

솔밤은 엄태준 셰프가 이끄는 서울의 컨템퍼러리 한식 레스토랑이다. 엄태준 셰프의 고향, 안동의 소나무 숲에서 이름을 따온 ‘솔밤’ 작명에서 알 수 있듯, 셰프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출발점으로 다양한 조리 기법과 한식에 대한 고민을 더해 ‘네오 클래식 코리안’ 퀴진을 표방한다. 지금은 잊혀저 가는 통영의 지역 요리인 합자장(홍합을 농축해 만든 소스)을 이용한 랍스터 요리처럼, 전통의 유산을 엄태준 셰프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홍콩의 Ando는 아르헨티나 출신 셰프 아구스틴 발비가 2020년 홍콩에 연 첫 솔로 레스토랑으로, 오픈 6개월 만에 첫 미쉐린 스타를 받으며 빠르게 글로벌 씬에 자리잡았다. 레스토랑 이름 Ando에도 흥미로운 여러 층위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라틴어로는 ‘행위’ 혹은 ‘하고 있음’의 뉘앙스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안도한다는 의미, 즉 편안함과 안정을 뜻한다. 그 뿐 아니라 셰프의 성 페란도(Ferrando)의 마지막 글자들과도 같아 이름 자체가 정체성을 보여준다. 라틴 문화권인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셰프, 일본에서 익힌 기술과 태도, 홍콩이라는 국제 도시에서 완성된 현재가 레스토랑의 이름 안에 겹쳐 있다.

솔밤과 Ando는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 두 레스토랑 모두 전통을 존중하지만, 이를 재현하기보다는 셰프 개인의 삶을 필터 삼아 ‘아주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이 담긴 요리’를 만든다. 엄태준 셰프에게 한국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다. 매 계절 달라지는 재료와 자연의 풍경,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 한식 전통의 깊이, 레스토랑 내 리서치 키친을 통해 끊임없이 시도한 레시피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을 더해 계속 새롭게 변화한다.

아구스틴 발비 셰프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홍콩 한 가운데에서 문득 아르헨티나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일본에서 받은 영향, 셰프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음식, 그리고 긴 여행 끝에 다시 바라보게 된 기억의 원천이 겹겹이 쌓인다. 두 셰프 모두 글로벌한 경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되, 결국 더 개인적인 요리를 풀어내는 것이다.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Ando 팀, 좌측부터 순서대로 Luis Rojas 셰프 드 퀴진, Agustin Balbi 오너 셰프, Carlito Chiu 헤드 소믈리에.

협업을 통해 "음식의 본질"을 찾다: 두 셰프와의 인터뷰

이번 협업 디너를 준비하며,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엄태준 셰프 가장 먼저 '우리가 왜 같이 하는가'를 고민하며 아구스틴 셰프와 처음 대화를 나눌 때, 저희 둘 다 자기 땅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언어는 달라도 같은 방식으로 요리를 대하는 시선이 저희의 공감대였죠. 손님들에게도 ‘두 셰프가 요리를 통해 말을 거는 듯한 경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구스틴 발비 셰프 이 자리를 통해 한국의 고객들에게 편안함(sense of comfort)과, 국경을 넘은 교류(connections without borders)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Ando의 요리는 제 삶의 여정을 그대로 반영한 요리예요. 선대부터 이어 온 스페인적 뿌리와 일본에서 오랜 시간 수련하며 익힌 섬세한 장인 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엄태준 셰프가 한국의 자연과 계절, 그리고 로컬 식재료에 깊은 경외심을 담아 표현하는 방식과 연결하는 일은, 서로의 이야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확장시키는 아름다운 과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엄태준 셰프의 아구스틴 발비 셰프(좌), 솔밤의 박현빈 소믈리에와 Carlito Chiu 소믈리에(우)

협업을 준비하면서 두 셰프는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셨나요? 

엄태준 셰프 처음엔 텍스트와 사진으로 대화하며 각자 지금 계절에 쓰고 싶은 식재료, 다루고 싶은 주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 같은 것들을 공유했죠. 한국에 오는 아구스틴 셰프의 생각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솔밤의 음식이 함께 잘 어우러지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아구스틴 발비 셰프 몇 주 동안 끊임없이 연락을 나누며 요리 스케치를 주고받았어요.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요리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한국의 고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사용하는 진하고 전통적인 유럽식 리덕션과 엄태준 셰프의 섬세한 한국의 발효 요소가 만나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네요. 메뉴를 함께 완성해가는 전 과정은 정말 자연스럽고 즐거웠습니다.

 

함께 일하며 상대 셰프에 대해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엄태준 셰프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먼저 “역방향 설계”예요. 저는 재료에서 출발해서 조리법을 찾는 편인데, 아구스틴 셰프는 손님이 느낄 감각을 먼저 고려한 뒤 재료를 맞춰가요.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목적지를 다른 방향에서 오는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그 차이가 저한테는 자극이 됐습니다.

또 하나는 "맛이 가장 중요하다(Flavour is King)"는 태도예요. 요리를 하다 보면 기법이나 컨셉이 맛 앞에 서는 경우가 많은데, 아구스틴 셰프는 그 순서를 명확하게 정해두고 있어요. 일본에서 6년을 보내면서도 기술만 배운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하는가"를 알고 싶어서 직접 언어를 배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표면이 아니라 사유 방식까지 흡수하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협업을 통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건, 재료 중심의 접근이 때로는 내가 익숙한 식재료의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어요. 좋은 협업은 내 방식을 흔드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서비스를 준비 중인 솔밤 팀과 Ando 팀

아구스틴 발비 셰프 이번 경험으로 한국 요리에 대한 제 시야를 완전히 넓힐 수 있었는데, 현대 한국 요리의 본질은 아름다운 플레이팅이나 트렌디한 비주얼이 아니라 인내심과 매우 정교한 발효 기술, 그리고 식재료가 가진 자연스러운 생명 주기를 깊이 존중하는 철학 위에 세워진 매우 수준 높은 기술적 예술이라는 점이었죠.

솔밤이 전통적인 한국의 맛을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같이 일하며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은 엄태준 셰프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과 극도로 로컬한 한국 식재료를 조화롭게 결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간과 자연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인 존중은 저에게 매우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공감대도 얻었는데, 아로스 칼도소를 만들든 솔밤의 시그니처 요리를 만들든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손님에게 순수한 편안함과 진실된 감동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통영의 요리 전통을 담은 합자장을 발라 숯불에 천천히 구운 솔밤의 랍스터 요리(좌), Ando의 아르헨티나식 소스와 토마토를 함께 낸 옥돔 구이(우) 

오늘, 두 레스토랑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를 각각 소개해 주세요.

엄태준 셰프 요즘엔 발효 재료를 베이스로 한 요리를 만들 때, 이것이 저희 음식의 본질이라고 느껴요. 발효는 시간이 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에요. 셰프가 조건을 만들어두면 시간이 요리를 완성하는 거죠. 계절이 바뀌고, 산지 생산자가 키운 방식이 다르고, 그 해 날씨가 어땠냐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는데, 저는 그 변화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 변화를 그대로 접시에 올리려고 합니다.

Ando가 오픈 때부터 유지해 온 시그니처 메뉴, '신 롤라(Sin Lola)' 칼도소 라이스

아구스틴 발비 셰프 한국에 꼭 가져와 선보이고 싶었던 요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저희의 시그니처인 '신 롤라(Sin Lola)' 칼도소 라이스입니다. 제 요리 철학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로,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제 할머니 롤라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와도 같기 때문이죠.

오늘 솔밤에서 '신 롤라'를 선보인 것은 저에게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쌀은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식이자 문화적 중심이며, 스페인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적인 향수를 담으면서도 아시아적인 기술로 완성한 저희만의 쌀 요리를 한국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안도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어디에서 왔든, 한 그릇의 밥은 모두를 자신의 뿌리와 서로에게 연결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여기에 한국의 고추장을 더해, 제가 받은 영감을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치미추리 소스를 곁들인 한우 구이와 백화고 떡갈비 메뉴

두 레스토랑이 함께 완성한 콜라보 요리,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엄태준 셰프 치미추리 소스를 곁들인 한우 구이와 백화고 떡갈비 메뉴예요. 처음엔 각자 아이디어를 가져왔는데, 저는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식재료와 발효장을 제안했고, 아구스틴 셰프는 그걸 어떻게 풀어낼지 온도, 텍스처, 플레이팅의 흐름을 제안해왔죠. 의외로 충돌이 별로 없었어요.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떤 레이어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겼는데 그게 저는 이 요리가 성공했다는 신호라고 봤어요.

아구스틴 발비 셰프 섬세하고 복합적인 풍미의 리덕션을 곁들인 한우 구이와 저희 스타일을 담은 치미추리 소스는, 솔밤이 한우를 굽고 저희가 치미추리 소스를 더한 병렬적인 더하기 요리가 아니라, 하나의 접시 안에서 두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솔밤의 숙성 장이 지닌 깊고 살아있는 발효의 풍미와 제가 사용하는 시트러스의 선명한 산미가 좋은 균형을 이루도록 함께 리덕션을 조정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고객들에게는 익숙한 로컬 식재료를 통해 편안함을 주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른 글로벌 경험에서 탄생한 새로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일 수 있었죠.

 

해외 셰프와 협업할 때, 솔밤의 철학은 어떻게 유지되나요?

엄태준 셰프 타협하지 않아야 할 것과 열어둬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 계절 식재료를 쓰는 것, 생산자와의 관계, 발효의 시간성은 솔밤의 정체성이기에 타협하지 않습니다. 반면 그 식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고, 어떤 순서로 내고, 어떤 그릇에 담을지는 협업 상대와 대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영역이에요. 이번 협업에서도 재료는 한국에서 왔지만, 그 재료를 다루는 시각이 확장됐어요. 그게 오히려 솔밤의 철학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다르다는 걸 확인할 때 자기가 뭔지 더 잘 보이거든요.

 

솔밤과 Ando 팀 (사진 제공: SOLBAM)

협업 이후, 더 확장된 관점

두 셰프가 각자의 언어로 선보인 요리들은, 국제적인 경험을 거친 뒤에 무엇을 자기 것으로 남길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 같았다. ‘정체성이 어떻게 가장 강력한 창작의 언어가 되는가’를 보여주듯,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고, 서로 다른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지만, 세계를 지나온 끝에 가장 멀리 도달한 곳은 결국 자신의 뿌리였다.

“솔밤과 Ando는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하고 있어요.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지금 이 계절에, 무엇을 요리해야 하는가.' 그 질문이 같기 때문에 대화가 됐다고 생각해요. 이번 협업의 의미는 그 공통의 질문을 한 테이블에서 함께 꺼내놓은 것이에요.” 엄태준 셰프는 이번 행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구스틴 발비 셰프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서울에서의 협업은 제 요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새로운 장이 되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솔밤의 관점과 시간에 대한 인내심에 제 요리를 완전히 담가보는 경험은 저를 셰프로서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어요. 완전히 새로운 테루아 안에서도 나의 이야기가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스스로의 도전이었죠. 다시 홍콩에 돌아가 요리하며 영향을 받을 만큼, 인내와 깊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은 채 서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단락

Writer 이정윤 (Julia Lee)
Editor 천해윤 (Mavis Chen)
Photographer 이정윤 (Julia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