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새롭게 보는 시선: August × VINHO

서울의 빈호(VINHO)와 자카르타의 어거스트(August), 두 셰프의 신선한 시각이 도시를 초월해 ‘다음 세대’ 테이블의 모습을 선보인다.

 늦은 7월 장마가 서울의 하늘을 물들인 여름. 전성빈 셰프와 김진호 소믈리에가 의기투합해 독창적인 미식을 선보이는 빈호와, 자카르타의 미식 씬에서 가장 글로벌한 인지도를 쌓아올린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의 August가 한 공간에 나란히 섰다.

빈호 전성빈 셰프와 August의 한스 크리스티앙 셰프

서울과 자카르타. 기후도, 삶의 속도도 조금은 다른 도시다. 뚜렷한 사계절과 함께 재료가 바뀌는 한국과, 향신료와 허브, 열대의 해산물과 농산물이 다채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인도네시아는 어쩌면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두 레스토랑은, 테루아를 담은 익숙한 재료를 가장 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해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놀라울 만큼 비슷한 에너지를 공유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만남’이라는 지역적 관점보다, ‘익숙한 맛을 새롭게’라는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풀어낸 협업 테이블의 이야기가 가득했던 저녁을 소개한다.

 

August의 한스 크리스티앙 셰프

어거스트: 모던 인도네시아 퀴진의 대표

자카르타의 August는 지금 동남아시아 미식 신에서 가장 빠르게 주목받는 레스토랑이다. 2019년 프라이빗 다이닝으로 시작해 2021년 말 정식 레스토랑으로 문을 열고 불과 2년만인 2023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Asia’s 50 Best Restaurants)의 가장 주목할 레스토랑 상(One To Watch Award)을 받았고, 2026년에는 동일 어워드의 아시아 42위로 선정됐다.

국제적인 감각을 담아 인도네시아의 영향을 받은 모던한 맛을 선보인다(Modern flavours, Globally inspired, Indonesian influence.)는 슬로건은 August의 요리 출발점이다. 프렌치 테크닉과 현대적인 구성 위에 인도네시아의 풍미와 재료를 둔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는 미국에서 영양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뒤 뉴욕과 시카고의 레스토랑을 거쳐 2016년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넓은 미국 시장에서 파인다이닝의 문법을 배운 뒤, 그가 고국으로 돌아와 선택한 것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카르타에서만 가능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August의 요리 스타일은 젊고 날렵하며, 때로는 장난스럽다. 아시아의 향신료, 허브, 해산물, 산미를 겹겹이 쌓되, 그 기저에는 탄탄한 양식 조리법이 기반이 된다. 흰살 생선에 빌림비의 신맛을 담은 커리와 생강꽃 렐리시를 곁들이거나, 문어에 락사 소스의 맛을 더하는 셈이다. 전통을 존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카르타의 에너지를 글로벌한 시각으로 분해하고 새롭게 조립한다.

 

빈호의 두 오너, 김진호 소믈리에와 전성빈 셰프

빈호: 와인과 음식으로 찾은 미식의 본질

서울의 빈호 역시 같은 관점을 공유한다. 2022년 7월, 셰프와 소믈리에의 이름을 따 문을 열고 첫 손님을 맞이한 뒤, 빠르게 미식 씬에 자리잡았다. 요리와 와인, 음악, 공간,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바 다이닝의 리듬과 와인 페어링의 신선한 자유로움, 오픈된 공간에서 소믈리에와 고객이 나누는 대화까지 모든 요소가 빈호만의 식사 경험으로 손꼽힌다. 셰프의 날카로운 감각을 담운 수준 높은 코스 요리와 흥미로운 와인 페어링이 준비되는 진지한 미식 공간이지만, 불필요한 긴장감이나 격식이 없어 더욱 편안한 매력이 있다.

메뉴를 총괄하는 전성빈 셰프는 일본 츠지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밍글스, 오사카 La Cime, 도쿄 Florilège 등에서 경력을 쌓으며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을 배웠다. 한국의 제철 식재료와 전통 조리 감각을 정해진 틀 안에 고정하지 않고, 자유롭고 동시대적인 자신만의 요리를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빈호의 닭 요리다. 전 셰프가 이번 협업에서 가장 빈호다운 요리로 꼽은 것도 닭 요리였다. 한국적인 보양식의 기억과 닭이라는 익숙한 재료를 바탕으로, 숯, 국물, 쌀, 계절 재료, 곁들임의 구성을 새롭게 구성해낸다. 이번 협업에서는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아얌 팝에서 영감을 받은 소스와 빈호의 그린 칠리 소스가 더해졌다. 두 레스토랑이 서로의 스타일을 나열하지 않고, 익숙한 재료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한 결과다.

August의 요리에는 다양한 인도네시아의 로컬 향신료가 사용된다

트렌드를 이끄는 두 셰프와 나눈 이야기

이번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전성빈 셰프 2년 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행사 기간에 August 팀이 저희 가게에 식사를 하러 왔어요. 그때 저는 다양한 퀴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고, 쉽게 접해보지 못한 나라의 음식이나 문화가 계속 궁금했던 시기였어요. 이후 휴가 겸 인도네시아를 가게 되면서 August에 방문했는데, 식사를 하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언젠가는 이 레스토랑과 같이 자리를 만들어 음식을 배우고 교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저도 빈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고, 2년 전 서울에서 어워드 행사가 열렸을 때 방문했습니다. 맛이 대담하고 표현력이 있었고, 공간의 분위기도 정말 좋아서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특히 김진호 소믈리에의 와인 페어링이 훌륭했어요. 저는 원래 와인 페어링을 잘 주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 식사가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전성빈 셰프가 발리 여행 중 하루를 내 자카르타의 August를 방문했고, 저는 그에게 인도네시아 향신료와 풍미를 소개하는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요리를 하고 있지만 비슷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금방 느껴졌고, 그래서 서울에서 먼저, 이후 자카르타에서 함께 요리하기로 했습니다.

 

단새우와 다양한 허브로 전하는 인도네시아의 진한 열대 풍미

협업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전성빈 셰프 저는 항상 ‘유연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마다 만드는 요리나 문화가 다 다르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 늘 새로운 영향을 주고,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음식에도 담기고, 고객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간다고 생각해서 유연성을 늘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저는 인도네시아의 향신료와 맛의 구조를 한국 손님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됐습니다. 다만 완전히 낯설기만 한 것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어요.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으로 저희의 맛을 전달하고 싶었고, 한국 손님들이 인도네시아와 한국 음식의 연결점, 그리고 겹겹이 쌓인 맛의 레이어를 발견한다면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협업하는 어거스트 팀과 빈호 팀

서로의 요리를 경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전성빈 셰프 August에 가서 요리를 먹으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유연하지만 올곧다’는 느낌이었어요. 자신들의 퀴진, 그리고 인도네시아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시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요리뿐만 아니라 공간이나 분위기,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끼게 만드는 바이브까지도 하나로 이어져 있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잘 전달됐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저는 전성빈 셰프의 겸손함, 디테일을 보는 태도, 그리고 주방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저희의 맛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감동적이었어요. 이 마음과 에너지를 저희도 자카르타에서 그대로 돌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 메뉴와 어울리는 8가지 와인 페어링을 전적으로 준비한 빈호의 김진호 소믈리에.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며 요리와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고 와인과 매치해 보며 행사 직전 상당 부분이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메뉴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완성해갔나요?

전성빈 셰프 행사를 하자고 이야기할 때부터 계속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스 셰프는 한국 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딱히 어려운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됐어요. 특히 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모든 코스를 처음부터 같이 의논했고, 이번에는 빈호에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저희 스타일이나 서비스 방식, 코스의 흐름에 대해서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August에서 먹었던 기억과 한스 셰프가 빈호에서 식사했던 기억을 서로 나누며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전성빈 셰프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데 매우 열려 있다는 점을 정말 존중합니다. 각자의 스타일을 지키려고만 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어요. 그는 제가 그냥 제 요리를 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August의 향신료가 자연스럽게 빛날 수 있는 무대를 함께 만들어주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닭 조리법이 제 소스를 어떻게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또 어떤 인도네시아의 향신료와 아로마가 한국의 쌀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서로의 레스토랑에서 이미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맛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대화가 훨씬 쉬웠습니다.

 

빈호 팀원들(좌), 아시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된, 어거스트의 Ardika Tjandra 셰프

한국의 식재료와 August의 스타일은 어떻게 연결되었나요?

전성빈 셰프 저는 개인적으로 협업 행사를 할 때, 먼저 그 레스토랑의 스타일 안에서 음식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August의 음식 스타일이나 문화 안에서 먼저 생각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팅이든 식재료 조합이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게 되고, 또 제가 추구하는 맛과도 조화를 찾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협업 메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저는 한국 식재료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노량진시장의 해산물 품질도 좋고, 한우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소고기 중 가장 훌륭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행 같은 재료도 흥미롭고요. 이런 한국 식재료를 인도네시아의 향신료와 결합하는 일은 저에게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닭가슴살과 아얌 팝, 그린 페퍼, 바질잎이 조화를 이루는 콜라보레이션 디쉬

각 레스토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를 꼽는다면요?

전성빈 셰프 닭 요리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원래도 빈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고, 이번 행사에서도 서로의 아이디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녹아든 메뉴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빈호의 방향성과 이번 협업이 가장 잘 어우러진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열대 과일인 빌림비의 신맛을 담은 커리와 생강 꽃 렐리시를 곁들인 생선 요리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저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흰살 생선 요리입니다. 여기에 열대 과일인 빌림비의 신맛을 담은 커리와 생강 꽃 렐리시를 곁들입니다. 이 요리는 인도네시아 향신료가 요리의 기반이 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August에서는 전통적인 인도네시아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이 맛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동시대적인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는 것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한우와 약식,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쌀밥 문화와 곁들임 반찬이 반영된 협업 디쉬

이번 디너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협업 요리는 무엇이었나요?

전성빈 셰프 사실 대부분은 같이 의논하면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메뉴는 메인 요리였던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에서는 밥을 어떤 방식으로 먹는지부터 시작해서, 그런 식문화를 이번 행사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죠. 공통으로 밥을 사용하고, 반찬처럼 가니시를 같이 내보자는 의견도 있었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디쉬에 녹아들 수 있도록 계속 테이스팅하면서 수정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셰프 닭 요리와 밥을 곁들인 소고기 요리를 꼽고 싶습니다. 빈호의 시그니처 닭 조리법에 August의 아얌 팝에서 영감을 받은 소스를 더하고, 빈호의 그린 칠리 소스를 곁들였습니다. 또 소고기 요리에서는 메인 코스에 밥을 함께 즐기는 두 나라의 공통된 식문화를 반영했습니다. 각 나라의 영향을 담은 두 가지 사이드 또는 피클을 함께 내면서, 하나의 접시 안에 서로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놓이도록 했습니다.

 

빈호 전성빈 셰프와 August의 한스 크리스티앙 셰프

음식에 대한 시선을 교류하며 얻은 배움

두 셰프의 아이디어가 하나로 모인 이번 디너. 서로 다른 도시의 젊은 파인다이닝이 지역성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두 셰프는 각자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이 자리를 마련한 빈호의 전성빈 셰프는, 팀이 얻은 영감을 이야기한다.

“한스 셰프가 자기 나라, 그리고 그 안에서 자란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음식으로 표현하는지를 많이 배웠습니다. 팀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함께 일하는 문화도 배울 수 있었고요. 특히 향신료를 녹여내는 방식이나 서로 다른 문화를 하나의 음식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는 방식은 저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한스 셰프도 덧붙였다. “그간 한국 음식의 풍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히 파인다이닝에서는 그 풍미가 더 우아하고 가볍고 깨끗한 레이어로 표현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한국 요리가 얼마나 깊이 계절적이고 식재료 중심적인지 더욱 크게 느꼈고, 레스토랑과 와인 문화, 손님들이 음식을 대하는 방식까지, 사람들이 다이닝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인상깊었습니다.”

August와 빈호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같은 세대의 언어로, ‘앞으로의 미식은 어떤 방향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빈호 전성빈 셰프와 김진호 소믈리에, August 팀

단락

Write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류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