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두리’의 배요환 셰프와 이효재 매니저
작가 Susan Cho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는 쉼 없이 미식의 지형도를 바꾸지만, 때로는 익숙한 미식의 중심지 밖이라 여겨지던 고요한 주택가 골목에서도 빼꼼히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미식의 격전지로 꼽히는 번화가를 벗어나 효창공원 앞의 곰살맞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나직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레스토랑 ‘두리(DOORI)’를 마주할 수 있다.

부담스럽고 어려울 수 있는 파인다이닝의 긴장감과는 사뭇 다르게, 따뜻한 조명이 내리쬐는 아담한 바 테이블은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무대를 연상시키고, 공간 곳곳에 스며든 온기는 마치 집으로 초대 받은 느낌을 받듯 찾는 이의 긴장을 부드럽게 무장해제시킨다. 셰프가 태어나고 자란 삶의 터전인 효창동에 자리를 잡은 두리는 화려한 지리적 프리미엄 대신, 공간과 음식이 이 자리에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차분히 증명해가고 있다.

 

디시의 안과 밖을 짓는, 두 사람

매일 컴퓨터 앞 모니터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루던 직장인과 미술을 전공한 디자이너. 배요환 셰프와 이효재 매니저의 출발선은 기존 파인다이닝 셰프들의 정형화된 궤적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덕분에 배요환 셰프는 정해진 틀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부딪치며 쌓아온 연구와 팝업의 경험을 통해 식재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유연한 시선을 기를 수 있었다. 친숙한 한식 식재료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테크닉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틀을 깨는 것이 그의 방식되었고,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식재료 본연의 정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손끝에서, 군더더기 없는 그만의 세계가 디시 위에 새겨지고 있다.

정교하게 플레이팅 중인 배요환 셰프

이러한 셰프의 집념이 온전한 미식 경험으로 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주방 밖을 든든하게 지키는 동반자가 있다. 국내 미식 씬에서도 나란히 주방을 지키는 부부 셰프의 모습은 제법 익숙해졌지만, 최근에는 부부가 셰프와 매니저로 역할을 나누어 호흡을 맞추는 레스토랑도 하나둘 늘고 있다. 한 사람은 주방 안에서 맛을 짓고, 다른 한 사람은 브랜딩 또는 서비스를 총괄하며 더욱 밀도 높은 미식의 순간을 완성해 가는 방식이 뿌리를 내리며 한 차원 높은 고객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레스토랑 두리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 중 하나다. 공간 한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레스토랑의 이름은 부부가 함께 키우는 반려견 ‘두리’에게서 따왔다. 그리고 이 다정한 이름처럼 공간 전체에는 늘 은은한 온기가 배어 있다. 

92년생 동갑내기 부부인 배요환 셰프와 이효재 매니저

두리의 시작은 소박한 일상에서 출발했다. 92년생 동갑내기인 배요환 셰프와 아내 이효재 매니저는 2020년 결혼 후 신혼집 집들이에서 지인들에게 코스 요리를 대접하던 취미를 계기로, 주말에만 문을 여는 팝업 ‘두리 와인’을 선보였다. 와인 안주를 곁들이던 소규모 팝업을 거치며 점차 한식 다이닝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CJ제일제당의 한식 셰프 육성 프로젝트인 ‘퀴진K(Cuisine.K)’였다.  

정규 조리 교육이나 파인다이닝의 도제식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전공자에게, 퀴진K는 머릿속에만 머물던 한식 창작 요리를 전문적인 주방 시스템과 코스 요리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실전 인큐베이팅의 장이 되어주었다. 퀴진K 팝업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며 식재료 원가 관리부터 동선,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주방 오퍼레이션을 체득했고, 매일 손님들과 마주하며 받은 즉각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메뉴의 완성도와 스토리텔링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독학으로 연구해 온 요리가 비로소 미식 씬에서 통용되는 단단한 파인다이닝의 언어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이 치열한 담금질 끝에 배요환 셰프는 ‘퀴진K 출신 1호 오너 셰프’라는 상징적인 타이틀을 달고, 엄숙하고 어려운 미식이 아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한식 파인다이닝 ‘두리’를 효창동에 정식 오픈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두리는 한식 식재료를 모던하게 풀어내며 전통주부터 정교한 자체 논알코올 페어링까지 메뉴와 어울리는 모든 결의 음료를 아우르는 다이닝으로 진화했다. 특히 미술을 전공한 이효재 매니저의 섬세한 감각은 두리의 세계관을 시각적·공간적으로 완성해 냈다. 테이블웨어와 로고, 메뉴판의 타이포그래피는 물론 손님이 좌석에 앉았을 때 마주하는 시야의 고저차까지 세심하게 설계했다. 여기에 손님의 알러지와 취향, 지난 방문에 나누었던 대화의 편린과 앉았던 좌석의 방향까지 기록하고 기억하는 환대의 디테일이 더해졌다. 접시 안을 채우는 셰프의 집념과 접시 밖을 감싸 안는 매니저의 온기가 팽팽하게 맞물리며, 두리만의 깊고 다정한 여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을 벼려내는 두리의 표정

두리가 선보이는 오늘날의 테이블 위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해 온 친숙한 식재료들이 정교한 조리법을 통과하며 예기치 못한 입체적 텍스처와 아로마로 피어난다.

두리의 콩물을 더한 단새우 요리

여름의 싱그러운 서정을 담아낸 콩물 플레이트는 직접 내린 콩물에 레몬과 디종 머스터드로 산뜻한 베이스를 잡고, 그 위에 감칠맛을 응축한 선드라이 토마토와 참나물 페스토에 버무린 토마토를 나란히 올린다. 여기에 참기름에 일주일간 숙성한 동해안 단새우와 씨로 만든 달콤한 소스에 재운 참외 볼을 곁들인다. 가장자리에 둘러낸 초록빛 딜 오일과 레몬바질이 어우러져, 냉채처럼 고루 섞어 맛보았을 때 구수한 콩물 위로 달콤함과 상큼함, 바다의 단맛이 입안 가득 번지며 감각을 일깨운다.

매끄러운 퓨레 위에 식감의 리듬을 쌓아 올린 애호박 디시

애호박과 두부, 관자, 궁채가 만난 디시는 식재료 간의 대담한 식감 대비를 우아하게 풀어낸다. 애호박과 두부만을 블렌딩한 매끄러운 퓨레 위로 식감을 살린 애호박 볼과 완두순을 얹고, 아래에는 부드럽게 구워낸 관자와 고추기름에 버무린 궁채 장아찌를 깔았다. 녹아내리는 퓨레 및 관자의 농밀함 사이로 궁채 특유의 오독오독 씹히는 텍스처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기분 좋은 리듬감을 만든다.

바다의 깊은 풍미와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한 접시에 담은 제철 민어 디시.

제철 민어 요리는 바다의 깊은 풍미와 두리의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한 접시에 담아낸다. 부드럽게 쪄낸 민어 위에 송어알과 누룽지 크러스트를 올리고, 아래에는 귤즙에 버무린 다진 초석잠 장아찌와 구운 잣을 곁들였다. 자투리 하몽을 볶아 깊은 육향을 우려낸 미역·매생이 브로스는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면서도 맛의 층위를 극대화해 담백한 민어 살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향토 식재료와 모던 테크닉의 정수를 담아낸 홍새우 찰보리 디시.

홍새우와 미나리, 들기름 찰보리 디시는 향토 식재료와 모던 테크닉의 정수를 보여준다. 홍새우 머리와 꼬리를 으깨어 뽑아낸 비스큐 소스에 들기름과 미나리를 더해 찰보리 리조또를 짓고, 부드러운 홍새우와 만가닥버섯·아스파라거스 장아찌를 얹었다. 묵직한 감칠맛 사이로 스며드는 장아찌의 산미와 허브 아로마가 짙은 풍미의 층위를 완성한다.

이러한 코스의 흐름과 더불어, 팝업 시절부터 이어온 무화과 타르트는 두리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두 정과와 대파 크림치즈, 무화과 잼 위에 얇게 저민 하몽을 올리고 남은 토마토 껍질을 말려 빚은 꽃으로 마무리하는 이 디시에는 식재료를 온전히 귀하게 여기는 두리의 제로웨이스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의 소스로서 완성되는 페어링, 그리고 논알코올의 미학

두리의 디시가 이토록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배경에는 배요환 셰프가 직접 기획하고 큐레이션하는 정교한 페어링 프로그램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를 구상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곁들일 주류의 산미, 텍스처, 그리고 풍미의 흐름을 계산에 넣고, 주 단위로 소스의 산미나 염도가 미세하게 조정되면 그에 맞춰 페어링 리스트 또한 유기적으로 교체한다.

배요환 셰프는 '두리'의 페어링을 직접 기획하고 큐레이션 한다

프랑스 쥐라 지역 사바냥 와인의 요거트 같은 발효 뉘앙스를 한식 장 베이스 소스와 매칭하거나, 마콩 빌라쥬 샤르도네의 크리미함과 산미를 애호박·궁채 요리의 텍스처 흐름과 일치시키는 작업은 요리와 주류를 단일한 시선으로 다루는 셰프 겸 소믈리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이다.

특히 두리가 선보이는 독자적인 논알코올 페어링은 기성 음료를 대체품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얹어지는 또 하나의 액체 소스라는 철학으로 완성된다. 쌀 베이스에 청사과의 산미와 방아잎을 인퓨징해 막걸리의 결을 살린 두라이스, 머스캣 포도 주스에 헛개나무 열매의 쌉싸름함과 훈연 버터를 인퓨징해 버터리한 샤르도네를 구현한 두스카토, 몬테풀치아노 주스에 루바브와 라벤더, 정향을 인퓨징해 스파이시하면서도 화사한 꽃향이 피어오르는 복합적인 레드 와인의 결을 재현한 두바브는 술을 마시지 않는 손님들에게도 완벽한 미식의 마리아주를 선사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디시를 향해

두리가 호흡하는 시간의 단위는 통상적인 사계절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의 땅과 바람이 빚어내는 24절기의 세밀한 순환 속에서 식재료는 계절보다 빠르게 변화하며, 두리의 주방 역시 그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해 매일 날을 세운다.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매장 문을 닫고 깊이 있는 R&D와 미식 탐구를 떠나는 그들의 행보는 단순히 좌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디시를 내놓기 위한 치열한 자기 증명이다. 앞으로 청국장과 전통 발효장을 파인다이닝의 언어로 세련되게 재해석하고, 전통주와 시드르를 결합한 모던 페어링, 나아가 완벽한 제로웨이스트를 접시 위에 구현해 내겠다는 배요환 셰프의 청사진은 확고하다.

돌아보면 3년 전 ‘두리 와인’을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정형화된 이력이 없다는 점은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직 자신이 벼려낸 맛에 대한 믿음 하나로 묵묵히 버텨온 시간은 결국 미식계의 공식적인 인정이라는 확신으로 돌아왔다. 공간에 머무는 동안 느껴지는 다정하고 따뜻한 환대와, 혀끝에서 번뜩이는 날카롭고 섬세한 미식의 조화. 이 매력적인 대비가 공존하는 두리의 테이블은, 찾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장 따뜻하고 오래 남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할 것이다.

92년생 동갑내기 부부인 배요환 셰프와 이효재 매니저

단락

Writer 조정인 (Susan Cho)
Editor 이정윤 (Julia Lee)
Photographer Sus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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