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다이닝 헤리티지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터치 더 스카이의 박진우 셰프와, 흙과 장작불에서 출발해 자신의 요리를 만들어가는 번들의 이용우 셰프가 하나의 테이블에서 만났다.
서울 여의도, 한강을 내려다보는 63빌딩 58층. 오랫동안 서울을 대표하는 전망과 프라이빗 다이닝으로 기억되어온 터치 더 스카이(Touch the Sky)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2025년 8월 박진우 셰프가 합류하고, 2026년 3월 리뉴얼을 거치면서다. 이곳에서 진행된 8월의 콜라보레이션 디너 파트너는 바로 이용우 셰프의 번들(Bundle). 패딩턴과 해리스를 거쳐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낸 지금의 레스토랑에서 이용우 셰프는 한국에서 구한 식재료와 직접 재배한 작물, 발효와 숙성, 장작불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간다.
오랜 레스토랑의 유산에 새로운 시각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박진우 셰프와, 자신의 지난 경험을 한 단의 장작처럼 묶어 신선한 시각을 선보이는 이용우 셰프. 현대적인 조리 테크닉이라는 공통된 기반 위에서도 맛을 만들어가는 방식에는 각자의 개성이 가득 느껴지는 두 셰프가, 같은 테이블 위에서 만나 하나의 경험을 완성했다.
여의도 63빌딩에 위치한 터치 더 스카이
터치 더 스카이: 오랜 헤리티지에 시작된 새로운 변화
여의도 63빌딩에서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는 터치 더 스카이는 오랜 시간 프라이빗한 다이닝으로 크고작은 이벤트의 배경이 되어 온 레스토랑이다. 현재도 별도의 룸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비즈니스 이벤트부터 기념일과 프라이빗 모임까지 다양한 목적의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박진우 셰프는 2025년 8월 이곳에 합류한 뒤 올해 3월 대대적인 리뉴얼을 선보였다. 오랫동안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63빌딩을 대표해온 레스토랑인 만큼 기존의 가치와 이곳을 기억하는 고객들을 존중하되, 지금의 미식 흐름과 박 셰프의 요리를 자연스럽게 더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핵심은 한국의 제철 식재료다. 좋은 생산자와 산지를 찾아 재료를 선택하고,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같은 재료 안에서도 다채로운 맛과 질감을 끌어낸다. 대표적인 요리가 제주 구좌 당근이다. 당근을 버터에 조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스를 농축해 잼을 만들고, 라페와 퓌레 등 서로 다른 형태로 풀어내 하나의 당근 고유의 단맛과 향, 질감의 차이를 한 접시에 담는다.
박진우 셰프가 생각하는 파인다이닝의 가치는 반드시 희귀하거나 값비싼 재료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익숙한 식재료라도 좋은 생산자의 것을 선택하고 셰프의 기술과 해석을 거치면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만들고 싶은 터치 더 스카이 역시 ‘전망이 좋은 파인다이닝’을 넘어, 한국의 좋은 식재료와 계절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레스토랑이다.
번들: 흙과 불, 시간을 한데 묶다
이용우 셰프의 번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식재료에 접근한다. ‘Bundle’은 말 그대로 장작 한 단을 뜻한다. 이용우 셰프가 요리를 해온 13년의 경험을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를 장작불과 엮어 한 접시 위에 펼쳐내겠다는 생각을 이름에 담았다.
셰프의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불과 시간이다. 특히 해리스 시절부터 3년 넘게 매주 찾아가 직접 일군 강화도 농장은 번들의 심장과도 같다. 씨앗을 구해 작물을 심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과정부터 요리가 시작되는 셈. 여기에 장작의 잉걸불과 발효, 숙성처럼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맛을 요리에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다양한 채소와 불의 향을 담아낸 번들의 시그니처 요리, ‘강화도’
번들의 시그니처 요리 이름도 ‘강화도’인데,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에 심플하지만 모두 다른 방식으로 터치를 더한 뒤 접시에 담는다. 어떤 씨앗을 구할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재배와 매주의 관리, 수확과 조리까지 수많은 변수와 시간이 하나의 요리에 담겼다. 많은 것을 더하기보다 각각의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것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하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이용우 셰프의 설명처럼, 번들은 선명하면서도 직관적인 맛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터치 더 스카이의 박진우 셰프(좌), 번들의 이용우 셰프(우)
서울 다이닝 씬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두 셰프의 만남
이번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박진우 셰프 이용우 셰프가 한국에 들어와 패딩턴을 준비하던 시기에 서로 알게 되었어요. 비슷한 위치에서 각자의 레스토랑을 이끌며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어졌습니다. 언젠가 서로의 요리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이번 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용우 셰프 박진우 셰프 역시 길지는 않지만 호주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이후 박진우 셰프가 터치 더 스카이를 맡게 되며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메뉴를 준비 중인 터치 더 스카이의 박진우 셰프
협업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박진우 셰프 서로의 스타일을 억지로 섞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번들은 장작불과 발효, 직접 수확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보다 직관적이고 힘 있는 표현을 보여줍니다. 반면 저희는 정제된 구성과 섬세한 소스, 코스 전체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각자의 색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하나의 코스로 경험했을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용우 셰프 빨간색과 노란색이 만나 주황색이 되듯, 어느 한쪽의 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색이 함께 있을 때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협업의 포인트였습니다.
번들의 이용우 셰프
서로의 요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박진우 셰프 저 역시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용우 셰프는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요리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농장을 찾아가 재료를 재배하는 것처럼 재료를 대하는 태도, 장작불과 발효처럼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과정을 적극적으로 요리에 활용한다는 점이 번들만의 분명한 개성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우 셰프 제가 박진우 셰프의 음식을 처음 제대로 경험한 곳은 이전의 도멘 청담이었는데, 여러 재료를 화려하게 접시 위에 담아내면서도 각각의 재료가 만드는 하모니와 섬세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 셰프만의 프렌치의 섬세함, 그리고 맛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방식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메뉴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완성해갔나요?
박진우 셰프 먼저 각자가 가장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요리와 식재료를 정한 뒤, 전체 코스 안에서 순서와 흐름을 함께 조율했어요. 각자의 시그니처를 온전히 보여주는 요리도 있었고 한 셰프의 아이디어에 상대 팀의 재료나 조리법을 더해 발전시킨 메뉴도 있었고요. 테스트 과정에서는 개별 요리의 완성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코스 전체의 흐름을 함께 보면서 계속 수정했습니다.
이용우 셰프 메뉴를 구성하기 전에 서로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 행사 한 달 전부터 각자의 레스토랑을 번갈아 방문하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누가 어떤 메뉴를 전적으로 맡기보다는 저희가 함께 테스트하고 아쉬운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이후 소믈리에들과 함께 와인 페어링까지 맞춰가면서 전체 코스를 완성했어요.
터치 더 스카이의 박진우 셰프
두 레스토랑의 가장 흥미로운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진우 셰프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저희 모두 좋은 재료를 찾는 것이 요리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차이는 맛을 만들어가는 방식인데, 같은 프렌치 베이스의 요리라도 저는 정립된 구조 안에서 맛을 정교하게 쌓아가는 편이라면, 이용우 셰프는 정해진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맛을 풀어갑니다. 그 차이가 이번 협업에서는 오히려 재미있는 요소가 됐습니다.
이용우 셰프 두 레스토랑 모두 프렌치를 베이스로 하지만 박 셰프의 요리는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여러 재료를 사용해 재미를 만들어냅니다. 반대로 저는 하나의 재료를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요리에 접근하는 관점의 차이가 함께 메뉴를 준비하는 데 영감이 되었습니다.
터치 더 스카이와 번들이 함께 만든 두줄촉수 메뉴
하나의 생선, 두 셰프의 방식
이번 협업에서 서로의 스타일이 가장 잘 연결된 요리는 무엇이었나요?
박진우 셰프 두줄촉수(Goat Fish) 메뉴를 소개하고 싶네요. 맑은 브로스에 매운탕을 연상시키는 스파이스를 더한 생선 요리를 하자는 첫 아이디어는 이용우 셰프가 제안했고, 이를 실제 메뉴로 구체화하는 과정은 제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이용우 셰프의 아이디어를 더해 최종적인 형태를 완성했습니다. 서로의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오가며 만들어진 만큼 이번 협업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우 셰프 같은 생각이에요. 번들에서는 한 접시에 최대 네 가지 정도의 재료만 사용하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재료를 더하기보다 정확한 맛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 지금 번들이 추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잘 구운 생선과 생선 뼈로 만든 브로스, 대파 퓌레와 가니시, 대파 오일처럼 비교적 간결한 요소를 사용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을 만들고 각각의 재료가 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함께 의논했습니다.
터치 더 스카이와 번들이 함께 만든 두줄촉수 메뉴
두줄촉수는 껍질은 최대한 바삭하게, 살은 수분감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리했다. 여기에 릭을 타임, 버터와 함께 쿠킹포일에 싸 직화로 익힌 뒤 홍합 육수를 더해 곱게 간 퓌레를 곁들였다.
특히 두 셰프의 역할이 선명하게 교차한 부분은 브로스(broth)다. 두줄촉수는 새우를 먹고 자라는 특성상 구웠을 때 은은한 갑각류의 풍미가 나온다. 두 셰프는 이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끌어내기 위해 각자의 아이디어를 더했다. 박진우 셰프는 생선 뼈로 만든 브로스에 비스큐 육수를 더해 깊이를 만들었고, 이용우 셰프는 여기에 백후추와 페페론치노를 넣어 알싸함과 은은한 매운맛의 레이어를 추가했다.
대파는 박진우 셰프의 요리 스타일을 따라 여러 형태로 사용했다. 흰 부분의 점액질을 칼로 모두 긁어낸 뒤 가늘게 채 썰고 그 위에 쪽파를 올려 가니시를 만들었다. 초록 부분은 오일로 추출했는데, 그대로 사용했을 때 지나치게 알싸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숯에 훈연한 오일을 섞어 맛의 바디감을 높였다.
이 요리가 코스 중간에 놓인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앞선 코스에 크림을 사용한 요리들이 이어지면서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에, 맑고 깔끔하면서 매콤한 브로스를 곁들인 생선 요리를 배치해 흐름을 환기하고자 했다.
당근이 보여주는 맛의 레이어를 담아낸 터치 더 스카이의 ‘제주 구좌 당근’
각자의 레스토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접시
현재 각자의 레스토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를 하나씩 꼽는다면요?
박진우 셰프 현재 저희 방향이 담긴 대표적인 요리는 ‘제주 구좌 당근’입니다. 지금 터치 더 스카이에서는 재료의 본질을 정교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당근처럼 익숙한 식재료도 좋은 생산자의 작물을 찾아 서로 다른 조리법과 질감으로 풀어내면 전혀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인다이닝이라고 해서 반드시 희귀하거나 값비싼 식재료를 사용해야 할까요? 익숙한 재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맛과 경험을 끌어내는 것 역시 셰프가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구좌 당근을 버터에 조리하고, 주스를 농축해 잼으로 만들고, 라페와 퓌레 등 여러 형태로 표현해 하나의 재료 안에 존재하는 단맛과 향, 질감의 차이를 담았습니다.
다양한 채소와 불의 향을 담아낸 번들의 시그니처 요리, ‘강화도’
이용우 셰프 저희는 ‘강화도’라는 시그니처 채소 요리를 준비했어요. 이름 그대로 강화도 농장에서 키운 작물들을 장작의 잉걸불에 한 번 터치해 접시에 담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작물을 키우기 위해 씨앗을 구하고, 직접 키우고, 매주 관리하고, 수확해서 접시에 담기까지 정말 많은 변수와 노력이 필요해요. 지금 번들이 추구하는 철학은 ‘Be rare, but never unapproachable’, 즉 특이하지만 거부감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요리가 지금의 번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서로에게 새롭게 발견하거나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진우 셰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용우 셰프가 ‘시간’을 재료처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직접 재배하는 과정부터 발효와 숙성, 장작불까지 번들의 요리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맛이 존재합니다. 제가 그동안 맛을 정교하게 쌓고 정리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번 협업을 통해 조금 더 본능적이고 자연스럽게 맛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이런 요소를 어떻게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앞으로도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이용우 셰프 저는 큰 기업과 조직의 특수성 안에서, 함께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내는 박진우 셰프의 모습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셰프의 역할은 요리를 하는 것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이해하고 팀워크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에, 이런 부분이 크게 와 닿더군요.
터치 더 스카이의 다이닝 홀
각자의 색을 더욱 분명하게
박진우 셰프가 지금 가장 집중하는 것은 한국의 좋은 식재료다. “계절마다 좋은 생산자와 산지를 찾아다니면서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재료를 터치 더 스카이의 방식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 레스토랑에서 쌓아온 경험에 한국의 식재료를 결합해 저만의 요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 한 접시의 요리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터치 더 스카이의 요리이자 박진우 셰프의 요리다’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용우 셰프 역시 번들이 가야 할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번들이라는 이름처럼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장작불과 엮어 접시 위에 펼쳐내려고 합니다. 화려하기보다는 조금 더 알찬 내용, 그리고 ‘특이하지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번들이 되고 싶습니다.”
터치 더 스카이의 박진우 셰프(좌), 번들의 이용우 셰프(우)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그 사이에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맛을 찾아낸 두 셰프. 이번 협업은 터치 더 스카이와 번들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두 레스토랑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두 셰프가 새롭게 서울 다이닝 신에 전한 에너지처럼,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