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토양에서 길어 올린 로컬 감각과 글로벌 미학, ‘퀸토닐(Quintonil)’

‘미쉐린 가이드 멕시코’가 첫선을 보인 2024년, 호르헤 바예호(Jorge Vallejo) 셰프는 퀸토닐(Quintonil) 레스토랑으로 미쉐린 2스타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장르와 국적, 시간의 경계 없이 멕시칸 퀴진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페루를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 퀴진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가운데, 멕시코는 북중미에서 가장 뚜렷한 캐릭터를 드러내며 미식가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2017년 뉴 노르딕 퀴진의 거장,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 셰프의 노마(Noma)가 멕시코 툴룸(Tulum, 카리브해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 문명 유적지)에서 야슈나 날 틸 옥수수(Yaxunah naal teel corn, 화이트 옥수수), 페피타스(Pepitas, 호박 씨), 아이베스(Ibes, 흰 콩), 야생 벌 유충, 멜리포나 꿀(Melipona, 마야 꿀벌) 등 유카탄 반도의 토착 식재료와 현지 향신료를 적극 활용한 디시로 한달 간 팝업을 연 후 멕시칸 요리의 매력은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에서 멕시코시티에 자리한 엔리케 올베라(Enrique Olvera) 셰프의 푸홀(Pujol) 레스토랑이 집중 조명을 받으며, 멕시칸 요리가 파인 다이닝계에서 성장 잠재력을 갖춘 장르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미쉐린 가이드 멕시코판’이 첫 출간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다시 멕시코로 향했다. 

더욱이 이즈음 멕시코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은 ‘푸홀’만이 아니다. 같은 해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에 등극하고, ‘2024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2024)’에서도 7위(멕시코 레스토랑 중 최고 순위)에 오른 ‘퀸토닐(Quintonil)’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현재 예약이 불가능할 만큼 어머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다.

먼저 푸홀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바로 ‘몰레 마드레(Mole Madre, 수년 간 숙성한 어머니 몰레)’ 디시를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 ‘몰레(Mole)’는 멕시코 전통 소스로 다양한 향신료와 재료를 섞어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내는데, 푸홀에선 약 4년 전부터 매일 새로 만든 몰레를 기존 베이스에 보태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몰레 마드레’의 의미를 정립해 세상에 알렸다. 이렇게 푸홀은 디시 하나만으로 멕시칸 퀴진의 정수를 세상에 각인시켰는데, ‘퀸토닐’의 야심은 ‘푸홀’ 이상이었다.

이국적인 식재료와의 경이로운 만남, 곤충의 향연

먼저 퀸토닐에 들어서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전 코스가 인상적이지만,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건 역시 메인 디시다. 테이블 위의 식기가 일제히 사라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르티야를 중심으로 형형색색 8개의 접시가 이를 에워싸듯 차례로 등장한다. 이렇듯 화려한 시각적 연출은 ‘타코의 나라’가 지닌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각종 요리에 숨겨진 곤충 식재료를 찾아 볼 수 있는 디시, ‘곤충의 향연’

그러나 진정한 미식의 묘미이자 반전은 식사 후 건네받은 메뉴 설명지에서 시작된다. 이 코스명이 ‘곤충의 향연(Entomophagy Festival)’이었음을 알게 되고, 접시 위 장식처럼 보인 여러 요소들이 사실은 ‘식용 곤충’이란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낸 것임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으로 시야에 잡힌 건 테이블 한 편에 놓인 초리소 소시지(Chorizo, 멕시칸 현지 고추와 식초를 사용해 풍미를 내는 매콤한 돼지고기 소시지). 훈연 향은 코코파치(Cocopache, 멕시코 전통 식용 곤충인 메스키트 장님 노린재)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이어 붉은 살사(Salsa roja)엔 후밀레스(Jumiles, 멕시코 전통 식용 곤충)가 더해져 고소함이 살아 있었다. 특히 이 식용 곤충은 멕시코에서 전통적으로 신선한 토마토와 고추, 양파와 함께 으깬 다음 살사를 만들거나 굽거나 튀기거가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한편 메인 디시인 양고기 스튜 소스에선 메뚜기 특유의 산뜻한 산미가 느껴져 이국적인 감칠맛이 놀라웠다. 이렇듯 ‘곤충의 향연(Entomophagy Festival)’엔 멕시코 자연의 야생성과 풍요로움이 파노라마로 응축돼 있었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타코를 실컷 맛 본 뒤에야 비로소 ‘식용 곤충’이 식재료로 숨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전통과 현대, 세계가 교차하는 멕시코의 한 접시

‘푸홀’이 모던 멕시코 요리의 시작을 알렸다면, ‘퀸토닐’은 멕시코 미식의 새로운 지평을 써 내려가고 있다.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노마(Noma)’에서 수년 간 경험을 쌓은 뒤 ‘푸홀’에서 엔리케 올베라 셰프의 오른팔로도 활약했다. 조심스레 두 레스토랑을 비교하자면, ‘푸홀’은 직설적이면서 명료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반면, ‘퀸토닐’은 덧셈의 미학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일례로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멕시칸 전통 음식 ‘타말(Tamal)’을 컨템퍼러리 스타일로 재해석해 따뜻한 전채 요리로 내놓는다.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비롯해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서 오랜 세월 즐겨 먹은 ‘타말’은 옥수수로 만든 마사 반죽을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잎에 싸서 쪄내는 형태로 조리한다. 또한 속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고기와 치즈, 토마토 등을 섞어 채워 넣거나 소스를 더해 각 가구별, 지역별로 남다른 개성을 살리곤 한다. 

모던한 감각으로 서로 다른 멕시칸 전통 타말에 경의를 표하는 전채 요리 

사실 ‘퀸토닐’의 이 디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옥수수 크림 소스를 얹은 평범한 타말처럼 보이지만, 이 소스는 멕시코 서부 미초아칸(Michoacán) 지역의 향토 타말인 ‘체포스(Chepos, 다른 주에선 콘 타말로 불리기도 함)’에서 영감을 받았다. ‘체포스’는 부드러운 옥수수 반죽에 전분, 우유, 설탕을 넣은 다음 옥수수잎에 싸서 찐 달콤한 전통 음식이다. 그는 이렇듯 전통적 요소의 맥락을 소스로도 변주해, 다른 멕시코 전통 음식과도 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한 접시에 담아낸다.

또한 타말 속재료로는 마야 전통 방식의 피빌(Pibil, 고대 마야인들이 음식을 구덩이 오븐에 묻어 익힌 기술로, 흙 오븐에 천천히 익혀 만든 마야식 스튜를 뜻하기도 함)로 조리한 오리 고기를 쓰고, 바나나잎에 싸서 잘 쪄냈다. 완성된 요리를 한입 머금으면 오리에서 나오는 풍부한 육즙, 옥수수 반죽의 부드러운 텍스처, 옥수수 소스의 고소한 단맛이 어우러져 짭짤함과 달콤함이 교차하면서 오래 기억될 풍미를 남긴다.

퀸토닐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그린 커리에서 나타난 태국 요리의 철학과 전통, 멕시칸 요리에 담긴 몰레의 정신을 응축해 New 피피안(Pipián) 소스를 구현했다.

이밖에도 그는 다른 나라의 조리법이나 식재료를 활용해 이국적인 풍미를 살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차가운 전채 요리에 사용된 초록빛 피피안(Pipián, 고대 아즈텍과 마야 요리에서 유래된 멕시칸 전통 소스)이다. 이 소스는 전통적으로 채소 퓌레와 호박씨를 활용해 걸쭉하게 만드는데,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호박씨 대신 해바라기씨를 사용하고, 라임·바질·멕시칸 청고추를 더해 의도적으로 푸른 색감을 강조했다. 

이는 그가 태국에서 맛본 그린 커리에 대한 오마주로, “커리와 몰레는 모두 신선한 재료와 건 향신료를 섞어 만드는 소스로, 두 나라의 요리 철학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소스는 푸른색 옥수수로 만든 ‘블루 콘 토스타다(Tostadas, 옥수수 반죽(마사)으로 만든 토르티야를 바삭하게 튀기거나 구운 것으로, 그 위에 올린 재료까지 포함한 요리명으로도 쓰임)’ 디시에 곁들여진다.

또 다른 예로는 멕시코 전통 해산물 요리인 ‘아과칠레(Aguachile)’에서 출발한 디시도 있다. 본래 ‘아과칠레’는 멕시코 북서부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페루 전통 요리인 세비체와도 닮아 있다. 보통 날생선(필레)이나 새우를 칠테핀 고추와 라임즙, 소금, 오이 슬라이스, 적양파 슬라이스로 양념한 육수에 담가 먹는데, 재료가 지닌 산미와 매운맛, 바다의 신선한 풍미까지 함께 즐길 수 있어 차가운 에피타이저로 그만이다. 그런데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이 음식의 캐릭터인 청량한 매콤함을 일본의 고추냉이 아이스크림으로 색다르게 표현해냈다. 또 여기에 제철 참다랑어 사시미와 홍심무(수박 무, 빨간 무로 불리는 속이 빨간 작은 무)를 곁들여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우아한 이미지까지 구현했다. 

‘아과칠레(Aguachile)’에서 느껴지는 전통의 청량한 맛을 고추냉이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해, 호르헤 바예호 셰프만의 요리로 재탄생시켰다. 

멕시코 토착 식재료의 가치를 살리는 섬세한 디테일

퀸토닐의 디시를 교향곡에 비유하면, 테이스팅 메뉴는 계절마다 달라지지만 메인 디시인 타말과 토스타다로 구성된 요리들이 굵직하고 웅장한 악장을 이루며 무게 중심을 잡는다. 또한 이 사이사이엔 절묘하게 쉼표가 놓여 있어, 코스 전체의 흐름을 이끌며 밸런스를 완성한다. 특히 포션은 작지만 완성도 높은 한입 요리가 식사의 전환점을 만들며 리듬을 더해주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다.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홍합 타르트’의 검은 몰레 소스에 조개류를 듬뿍 넣어 이색적인 감칠맛을 구현해냈다. 

그중 ‘홍합 타르트(Mussel tartlet with mole de mar)’가 대표적이다. 옥수수 토르티야를 튀겨 만든 타르트 쉘 안을 숯불에 구운 홍합과 양파로 채우고, 반짝이는 검은 몰레 소스를 흘러내리듯 올렸다. 일반적으로 블랙 몰레는 견과류, 카카오, 향신료로 완성되지만, 퀸토닐은 여기에 조개류를 듬뿍 넣어 멕시코 바다의 풍미를 입체적으로 더했다. 그래서인지 강렬한 잔상이 메인 디시 못지않게 남는다.

또 다른 예는 팔레트 클렌저(Palete Cleanser)인 ‘선인장 셔벗(nieve de nopal)’이다. 선인장 줄기인 노팔(Nopal)로 청록빛 아이스 블록을 만들고, 초록빛 라임을 더해 산뜻함을 강조했다. 여기에 옥수수잎으로 훈연한 바다 소금 플레이크를 곁들여 달콤짭짤함과 산미가 입안에서 경쾌하게 터질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러한 미각적 자극은 입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며, 디저트 파트로의 연결을 이끈다.  

‘선인장 셔벗’은 팔레트 클렌저로서, 선인장 줄기인 노팔을 중심으로 과일의 단맛과 산미, 짭짤한 소금 플레이크가 입안을 산뜻하게 정리해 혀의 감각을 제대로 리셋한다. 

이밖에도 퀸토닐은 멕시코 식재료의 정수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이를 적절하게 조리해 이들의 가치를 한층 더 드높인다. 메인 디저트에서 환상적인 밸런스를 이루며 킥으로 나타난 ‘멜리포나 꿀(Melipona, 마야 꿀벌)’에서 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 디저트는 프렌치 요거트와 캐비어가 더해진 조합이었는데, 멜리포나는 북중미 지역에서 서식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벌로, 일 년에 딱 한 번 봄에만 소량의 꿀을 채취할 수 있다. 생산량이 극히 적지만 꽃 향기와 단맛이 진해 셰프들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식재료로 평가 받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2017년 노마(Noma)의 멕시코 팝업에서도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 셰프가 이를 사용한 바 있다.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이 귀한 꿀을 캐비어와 어우러지게 사용하고, 요거트의 산미로 밸런스를 잡아 독창적인 달콤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토착 식재료를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그만의 창의력은 여러 글로벌 셰프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캐비어와 프렌치 요거트로 이뤄진 디저트에 ‘멜리포나 꿀’을 더해 고급스러운 달콤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컨템퍼러리 멕시코 미식이 이끄는 새로운 흐름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자신의 뿌리인 멕시코 전통 음식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자신이 재해석한 요리를 통해 역사와 전통에 찬사를 보내며, 전국 각 지역의 향토 식재료와 길거리 음식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조리 기법과 플레이팅을 대담하고 다채롭게 시도해, 대중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멕시칸 가스트로노미의 세계로 이끈다. 

대중이 여전히 멕시코 요리를 길거리 타코에 한정할 때, 퀸토닐은 디시 하나만으로도 멕시코의 광활한 대륙과 시간, 깊은 요리 철학을 상기시킨다. 시장이나 골목길의 타코부터 화려한 파인 다이닝까지, 멕시코는 전 세계 미식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대를 충족시킨다. 

비옥한 토양과 무한한 식재료, 버라이어티한 식문화를 가진 북중미 대륙, 이곳에서 새로운 세대의 멕시코 셰프들이 빚어내는 미식의 흐름은 이제 글로벌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거센 물결이 되고 있다.

단락

Writer 장카이홍(章凱閎)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Translator 마비스(Mavis)
Photographer 장카이홍(章凱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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